2015년 11월 16일 _ 간절하게 참 철없이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까닭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조란 무지치의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다>를 보고 있자니 김수영의 '거미' 가 생각이 난다.
김수영의 '거미'를 보면,
처음부터 '내가'로 시작하여 '내가.. 나는.. 나는' 하며 설움과 입을 맞대고 헐떡거리는 '나(김수영)'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바라며 몸을 태우는 김수영의 모습은 그가 그렇게 강조했던 '나'이다.
그 나의 모습이 바로 저 그림 속의 사내가 아닐까?
그런데 그림 속의 사내는 '나는'으로 입을 떼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하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라며 마지막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다.
그가 말한 '우리'는 마지막 타들어가는 '나'의 자존심이 아닐는지.
그래서 작품 제목도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다'이다.
저 그림의 작품이 만약 '내가 마지막이 아니다'였다면 황량한 종말처럼 느껴질 것 같다.
조란 무자치는 작품으로는 완벽한 종말을 부르짖지만 교묘하게도 제목으로 희망을 얘기한다.
김수영도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지만, 그로 인해 몸이 까맣게 타 버렸지만,
앞으로 또 설움과의 키스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사람(나)은 심지어 몸이 까맣게 타 버린다 하더라도
그 무엇인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금 거창했다.
재수없었다.
하지만 비가 오고,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니까.
아... 영화 찍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