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모야 독립영화 만들기

2016년 2월 20일 _ 깡선생께서 못 한 '대부'이야기

by 이게바라

저번 주

지대넓얇은 <대부>를 했는데,

나도 '대부'를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대부'를 흉내낸 대부분의 영화를 싫어한다.

그만큼 '대부'는 독보적인 영화임이 분명하다.

(깡선생의 말씀처럼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비견될만 하다

_ 오히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오디세이보다는 마이클이 더 매력적이다)


마이클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조직의 보스로 성장하는데,

매형은 물론이려니와 친형 또한 응징하는 괴물이 된다.

그래서

깡선생께서 언급하지 않은 <대부> 3편에 가서 마이클은

가장 소중한 것을 눈 앞에서 잃는다.

(스포가 되니 말은 하지 않겠다)

그 장면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마이클의 절규소리조차도.


영화는 그에게 울부짖을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손에 묻힌 피에 댓가를 치룬 것이다.


제로섬 게임.

하나 주고 하나 받고.

네가 한 대 때리면 나는 칼로 찌른다는 식.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결국 <대부3편>에서 마이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랬기에 대부는 3편이 필요했다.

대부3편이 개망작인 이유는

(그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보다도)

대부시리즈를 통해 거장이 된 감독 코폴라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대부3'의 가장 중요했던 역할에 자신의 딸을 캐스팅하기에 이른다.

그 패착으로 그는 내리막을 걷는다.

'대부1편'을 찍을 당시 코폴라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현장에는 그를 대신할 감독이 항상 있었다니.. 코폴라 입장에서는 언제 암살 당할지 모를

꼴레오네와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같은 절박함에서 콜폴라는 원작을 늘 끼고 다니며 미친듯이 영화를 찍었다고 하니...

적당한 권력 없음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훌륭한 조건이었던 듯 하다.


감독에게 권력이 집약되자 영화는 개망작으로.


우리가 <대부> 3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권력도 언젠가는 꼬꾸라진다.


깡선생께서 질문한 그 보복의 타이밍에서 마이클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대부> 3편에서 마이클은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부> 1편의 엔딩 장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자신의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마이클의 따뜻하면서 강렬한 눈빛 말이다.


<대부> 3편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랑' 하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여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내와 딸에게 막 구박받으면서 말이다.

(허튼소리다. 그랬다면 나도 '대부'를 외면했을 테니깐)


마이클도 '사랑'의 방식을 찾았는데,

그것이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스의 사랑방식이다.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에게는 지옥이 된.


그게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대부>에 열광한다.

왜냐하면 <대부>는 현실을 반영하고, 인간이 어떤지 잘 보여주니 말이다.

나도 이 같은 영화에 환장한다.

하지만 삶에서는 노력했으면 한다.

그것이 현실에 없는 진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될테니깐 말이다.

그런 노력이 진짜 '용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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