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모야 독립영화 만들기

2016년 3월 17일 _ 은퇴식은 없다

by 이게바라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나기는 싫지만...)

나는 세 가지 직업군을 생각한다.

첫째가 파이터다.

피 터지게 옥타곤, 링 등에서 싸우다 죽는 거다.


둘째가 포르노 배우다.

거대한(?) 남근을 뽐내며 땀이 범벅이 되어 섹스를 하다가 죽는 거다.


마지막 세 번째는 댄서다.

흐르는 음악, 비트에 맞춰 나의 관절에 무리를 가게 하다가 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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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직업군의 공통점은 몸을 최대한 빠르고 격하게 소비한다는 거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복싱을 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이제 복싱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링에서 기절도 해봤고, 코피도 나봤고, 안와골절도 당해봤다.

물론 상대편에서 피가 터질 때 느껴보는 쾌감도 경험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 검도를 하면서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검도는 확실한 보호장비를 갖추고 대련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실제 칼로 상대를 가르는, 혹은 내 목이 떨어져 나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에 반해 복싱은 매우 현실적이다. 상상하기 이전에 타격하고 맞는 느낌이 바로 전해지니 말이다.


내가 복싱을 좋아하는 이유는,

복싱장엔 계급이 없다.

1단이니, 2단이니.. 혹은 검은 띠니 뭐니 해서 계급을 매기지 않는다.

그때 가장 열심히 하는 놈이 센 놈이다.

게을리하면 그 순간 링에서 버틸 수 없는 게 복싱이다.

그렇다고 해서 복싱이 싸움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

철저하게 기본기가 중요한 스포츠다.

싸움을 못 하는 나도 링에서는 등에 용문신이 있는 조폭을 이길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어깨가 벌어진 아저씨와 링에서 만난 적이 있다. 라운드가 거듭되자 아저씨와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러자 그 아저씨 입은 흰티가 젖어 등에 달라붙으며 등짝 전면에 그려진 용문신이 드러났던 기억이 있다. 무서웠지만 이미 승기는 내가 잡고 있었다. 그때의 쾌감이라니...ㅎ)

또한 복싱은 철저히 혼자 하기 용이한 스포츠다.

링 아래에서는 거울이 곧 내 스승이다.

두 주먹을 내지르는 간단한 동작을 수차례 반복하는 복싱은 그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주먹으로 치는 것만을 인정하는 매우 엄격한 격투기인 것이다.


그동안 샌드백을 두드리며 체력을 유지했다.

언제고 촬영현장에 나갈 수 있게 말이다.

영화를 하려면 체력은 필수다.

영화현장에 피 토하는 천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틈만 나면 복싱을 했던 내가 복싱을 관둘까 고민했다.

(지난 4개월간 복싱을 하지 않았다)

체력도 많이 저하 되고 복싱도 늘지 않으니 말이다.

(링에 오르는 것이 이제는 싫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복싱장을 처음 찾았을때 처리 되지 않은 것이 여전히 있다

아직도 응어리져 있다.

그래서 아직은, 아직은 샌드백을 두드려야 하겠다.



아직 은퇴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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