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구석에 있던 박스 안 카세트 테이프

by 레빗구미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보면 주인공 피터 퀼이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도 주인공이 죽은 해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다른 친구에게 전달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카세트 테이프가 한참 사용되던 90년대에는 그곳에 음악을 담고, 목소리를 담아 서로 공유를 했다. CD 플레이어가 유행하기 전까지 카세트 테이프와 카세트 플레이어는 그 당시의 감성과 유행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기기였다.

어느 날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작은 박스 하나가 나온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그 자리에 있었던 박스인데, 처음엔 무엇인지 몰라 한참을 생각했다. 창고에서 칼을 꺼내러 가는 동안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던 찰나, 문득 과거에 구입했던 카세트 테이프와 CD가 떠올랐다. 가져온 칼로 봉인된 테이프를 잘라 내고 박스를 열어 보니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카세트 테이프와 CD가 나왔다. 고등학교 때 카세트 테이프에서 CD로 음반과 기기가 전환되던 시기였지만, 집에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나는 계속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했었다. 결국 CD 플레이어를 사용해 보지 못하고 바로 MP3 단계로 넘어갔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때 나느 여전히 Panasonic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CD보다는 카세트 테이프가 더 많이 보였다.

박스 안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앨범이 이상우 3집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라는 노래가 히트했던 1991년, 당시 어머니가 이상우의 다음 앨범인 3집을 사다 주셨다. 그게 내가 처음 받은 대중 가수의 앨범이었다. 그 당시 가지고 있던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온종일 그 노래들만 들었었다. 그때 들었던 이상우의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가사 하나하나가 다 기억날 정도로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그 외에도 보이는 여러 가수들의 앨범들, 신승훈, 김민종, 더 클래식 등 대부분은 발라드 가수의 앨범들이다. 그때 무수히 들었던 발라드 음악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댄스 음악은 많이 듣지 않았고,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도 신나는 음악보다는 조용한 음악을 혼자 듣는 시간이 많았다.

그 당시는 큰 카세트 플레이어 덱에 공 테이프를 넣고 있다가 라디오에서 원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해서 듣기도 했다. 앨범을 하나 살 돈도 없던 그때, 그런 녹음을 하면서 나만의 앨범을 만들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네이버 뮤직에 만들어 놓은 나만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으로 치자면 불법 다운로드 일 수 있겠다.

그런 감성 하나하나를 내게 전해줬던 그 카세트 테이프들이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방 한 구석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편으론 아련한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 카세트 테이프의 내용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먼 옛날에 그 기기는 단종되었고, 보유하고 있던 기기는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대부분의 음원은 인터넷 상의 음원 사이트에 다 업데이트가 되어 있다. 한 달에 얼마의 돈을 내면 원하는 대부분의 노래를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결국 발견한 그 카세트 테이프들을 버리기로 했다. 박스를 다시 밀봉하고 쓰레기 분류장으로 들고 가 살며시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오래된 친구에게 작별하는 듯한 느낌에 마음이 아릿하다. 나의 정서를 만들어 주었던 그 음악들, 비록 지금 그 음악을 아주 쉽게 핸드폰으로 들을 수 있지만 '딸깍' 하며 카세트 테이프 덱을 열고 테이프를 넣고, 다시 덱을 닫고 플레이 버튼을 눌러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던 그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진 않는다.

오래된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아니 버려진다. 아니 그냥 이별이라고 해두자.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3을 보면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방치하고 같이 놀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장난감들은 자신들이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같이 놀던 그 친구가 성장했고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겼을 뿐이다. 같이 놀던 기억을 다 잃어버린 건 아니다. 그 추억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영화 말미에 그 장난감들은 다시 다른 친구를 찾는다. 내가 버린 카세트 테이프는 비록 새로운 주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테이프들과 보냈던 추억은 여전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인터넷 플랫폼으로 내가 들었던 음악을 듣고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플랫폼을 바꾼 그 음악들은 다시 누군가의 추억이 된다. 이제는 방 한 구석에서 잊히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