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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ug 07. 2018

#26.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보낸 9일



 내가 아프면 쉬면서 몸조리를 하고, 심하면 병원에 가면 된다. 아내가 아파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출산 이후, 최대한 아내가 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장모님 덕분에 아내는 편안하게 회복을 할 수 있었고, 옆에 멀뚱히 있던 나도 마음이 굉장히 편했다. 나도, 아내도, 장모님도, 처남도 출산 전후 기간 동안 감기를 앓거나 아프지 않았다. 무엇보다 태어난 아기에게 집중하느라 다들 본인이 아픈 것보다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더 신경 쓰던 때였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엄마의 항체를 그대로 받아서 태어나게 된다. 그 항체는 대략 100일 정도까지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 기간에는 특별히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지 않는다. 물론 열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갓 태어난 100일도 안된 아기들이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냥 가까운 소아과에 가면 될까? 이 사실은 어쩌면 대부분의 출산 후 부부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일 것이다. 나와 아내를 비롯한 모든 우리 가족들이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라면 당연히 건강하게 100일까지 잘 자랄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내: 자기야 지금 바쁘세요?
나: 아니에요. 지금 전화 가능해요. 있다 집에 갈 때 뭐 사갈까요?
아내: 아니오, 지금 큰일 났어요. 뭐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 무슨 일이에요? 당근이 다쳤어요?
아내: 지금 당근이 열이 좀 있어요. 아침에 미열이 좀 있었는데, 지금 거의 38.1도 정도로 올라가고 있어요. 소아과 데리고 가야 할까요?  
나: 앗! 병원 가야죠. 일단 집에 있어요. 내가 우리 부모님께 전화해서 차 타고 같이 가라고 좀 부탁할게요. 부모님이 일정이 없으셔야 할 텐데!
아내: 네네 알겠어요. 부탁드립니다. 전화해보고 알려주세요.


 급한 마음 때문에 애꿎은 전화에만 화를 냈다. 무슨 문제인지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얼른 회사 자리 전화로 가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부모님이 다행히 일정이 되어서 한 걸음에 옆 동네 우리 집으로 와서 새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셨다. 아내는 같이 가지 않았는데, 산후조리를 위해 한 달 동안 최대한 밖의 바람을 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장모님이 꼭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그 룰에 따르려고 노력했다. 비상 상황이지만,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처남을 같이 보냈다. 부모님과 처남이 가까운 동네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나는 일단 회사에서 초조히 소식을 기다리며 전화 앞에 앉아있었다.  


어머니: 애가 열이 나네요. 지금 태어난 지 17일밖에 안되었어요. 아까 열 재어보니 38.1도가 나와요.
의사: 한 번 볼까요? 음.. 열이 38.3도가 나오네요. 여기서는 안 되겠어요.
어머니: 네? 이 병원에서는 안된다고요? 그럼 어느 병원으로 가야 되나요?
의사: 원래 100일이 안된 아기들은 보통 열이 나지 않아요. 그냥 감기 일수도 있지만, 다른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작은 소아과에서는 볼 수가 없고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큰 병원 중에서도 영아들이 진료받고 입원할 수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열이 나니까 얼른 가셔요. 잘 못하면 아이를 잃을 수도 있어요.  
어머니: 알겠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니는 걱정되는 목소리와 함께 화를 내셨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고 한 말에 많이 속상하셨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하느냐며 화를 내셨다. 그래도 의사는 최대한 신경 써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급히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을 찾아봤다. 가까운 곳에 고대구로병원과 이대목동병원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대병원을 선택해서 그곳으로 가시라고 알려드렸다. 나도 급하게 회사에서 나와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17일 만에 열이 나다니, 혹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병원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계속 온갖 키워드로 검색을 하며 전전긍긍했다. 대체적으로 갓난아기에게 열이 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세균 감염이라고 판단되지만 간혹 뇌수막염 같은 큰 병일 수도 있어서 빨리 입원해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적지 않은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을 해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옆에 어머니가 안고 있는 당근이가 더 힘이 없어 보인다. 울 기운도 없어 보이고 눈도 잘 뜨지 못한다. 마음이 정말 급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전 보호자가 각종 서류에 동의 서명을 해야 한다.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처음 그런 동의서를 써봤다. 과거 어머니가 수술하셨을 때는 아버지가 보호자 동의 서명을 하셨다. 이제는 당근이의 각종 검사와 의료 시술, 부작용에 대한 서명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내가 서명한 서류를 사진 찍어 일단 아내에게 보내고 그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해줬다. 아무래도 전문용어가 많아서 직접 읽기는 어려운 문서였다. 서류 서명을 다 마치고 당근 이를 먼저 간호사에게 넘긴 후, 우리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보호자가 2명만 들어갈 수 있고, 면회 시간이 오전, 오후 각각 한 번씩만 주어진다. 그 외의 시간에는 생이별이다.  


간호사: 면회시간은 오전, 오후 한 번씩이고요. 보호자분은 한 번에 2명씩만 들어오실 수 있으세요.
나: 그래요? 다른 시간은 전혀 볼 수 없나요?
간호사: 네 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제한을 두고 있어요. 그리고 보호자분들은 들어오실 때 보호복을 다 착용하셔야 해요.
나: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아기에게 세균 감염이나, 이상 여부를 알기 위해 여러 검사를 할 거예요. 그중에는 뇌수막염 검사를 위해 척수액도 뽑을 거예요.
나: 척수액이요??? 그거 엄청 아플 텐데……
간호사: 저희가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해서 아기가 안정되도록 할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중환자실에서 힘들게 모유를 먹던 당근이


 당근이는 결국 척수액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세균 검사를 위해 피검사나 소변 검사도 했다. 나중에 검사 결과는 원인 모를 세균 감염이었다고 나왔지만, 그 당시는 정말 내 속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 안에는 입원한 다른 아기들도 좀 있었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아기도 조금 있었다. 그 아기들을 보기 위해 보호자들은 면회 시간에 맞춰 중환자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도 매일매일 오전 오후 면회 시간에 맞춰 방문하여 줄을 섰다. 봐야 할 식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나와 장모님, 어떤 날은 처남과 우리 어머니 등 돌아가면서 당근이를 면회했다.  


나: 자기야, 자기도 좀 가봐야 하지 않아요?
아내: 자기야, 나도 가고 싶은데 최대한 나는 30일 동안 안 나가려고요.  
나: 그래도 한 번은 가봐야죠. 당근이가 엄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
아내: 그래요. 한 번은 갈게요. 나도 너무 가고 싶은데요. 가능하면 최대한 산후조리 잘 하고 싶어요.  
나: 알았어요. 내가 최대한 가서 어떤지 알려줄게요. 동영상이랑 사진 많이 찍을게요.


 아내와 나는 이때 약간의 언쟁을 했었다. 나는 아내가 병원에 당연히 매 번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길게 의견을 나눴는데,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아내는 최대한 평생 한 번뿐일지 모를 산후조리를 가능하면 원칙대로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가 당근이를 걱정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상의 괴리 때문에 아내는 그때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결국 아내는 몇 번이나 당근이를 보러 갔었다. 도저히 걱정돼서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내가 아내를 몰아붙여 나쁜 엄마를 만든 건 아닌지 후회가 된다. 아기 엄마도 매번 간다고 해서 다른 특별한 걸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무엇보다 속이 더 타들어가는 건 아내 본인 마음이었을 텐데 말이다.


 보통 면회를 가면 아기에게 분유나 모유를 준다. 그때 당근이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작게 태어난 아기인데, 그 당시에는 아파서인지 뼈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모유를 짜서 담아가면 잘 빨지를 못했다. 그래도 30분의 짧은 면회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먹이고 나왔다. 기저귀도 직접 갈고, 침대에 불편한 곳은 없는지 체크했다. 장모님은 그 병원의 치료 시스템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셨다. 여러 가지 불만을 이야기하셨는데 당근이가 너무 걱정돼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간호사들에게 당근이에게 모유를 꼭 챙겨주고, 젖은 담요는 갈아달라는 부탁을 더 할 수 있었다.  


 당근이는 입원한 지 9일 만에 퇴원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바로 병원으로 갔고, 면회시간에 늦으면 죽어라 뛰어서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 당시 나와 아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빨리 나으라는 기도뿐이었다. 모유를 주고, 챙기는 것 밖에는 더 해줄 것이 없었다. 다행히 당근이는 그것을 찬찬히 극복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마른 상태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모든 가족들이 안심했다. 비록 큰 병은 아니었지만 정말 마음 졸이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많은 신생아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을 면회 온 보호자를 보면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 아기들도 얼른 나아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모두 주사 튜브를 꼽고 있다. 그런 모습은 잠깐 이면 충분하다. 모든 아이들이 심하게 아프지 않고 컸으면 좋겠다. 지금도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는 면회 시간에 맞춰 아기를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보호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곧 괜찮아지면 좋겠다.


 그때 앓고 나서 인지 한 동안 당근이는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지냈다. 그런데 병원과의 인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외부의 큰 사건으로 우리는 당근이와 함께 그 병원에 다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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