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자기야 혹시 결핵에 대해 잘 아세요?
나: 아니오? 중국에 아직도 결핵 환자가 많아요?
아내: 시골엔 좀 있죠. 도시에는 그래도 많이 없어졌어요. 우리고 애기 때 예방접종을 해요.
나: 우리도 예방 접종을 해요. 그래서 한국에는 거의 없어요. 한국 의료가 좋잖아요. 지금은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내: 그래요? 당근이가 결핵 예방접종을 다음 주에 해요. 그거 하고 나서 좀 지나야 항체가 생긴다고 하네요. 자국도 남는데요.
나: 맞아요. 그걸 한국에서는 불주사라고도 불러요. 주사 자국이 남아요. 당근이는 일반 병원에서 맞으니까 네모난 점 모양이 여러 개 이겠네요.
결핵은 한국에서 이제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질병이다. 최근에 다시 반짝 증가 추세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리 막을 수 있는 질병이어서 이에 대한 정보는 아이가 예방접종을 맞을 때나 잠깐 찾아보는 정도이다. 태어나고 먼저 하는 예방접종 중 결핵 예방접종을 가장 먼저 하는 것 같다. 보통 가까운 소아과에서 진행하게 되어서 우리도 그 접종을 3주가 되던 때 막 했는데, 그때 아내와 결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중국에는 여전히 결핵이 많이 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는 약간이나마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우쭐함이 있었다. 그래서 예방접종만 다 하면 결핵에 대한 걱정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했었다. 당당히 이야기를 하면서 소아과에 가서 당근이에게 결핵 예방접종을 시켰다. 결핵 예방접종은 BCG라고 불리는 백신으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경피용과 피내용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아래와 같이 모양이 조금 다르다. 새나는 경피용을 했기 때문에 아주 작게 오돌토돌한 자국이 남아있다.
당근이가 퇴원을 하고 난 후, 우리 가족들은 최대한 아이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노력했다. 집의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고 아이가 울면 바로 안고 달랬다. 다행히 먹는 것도 잘 먹어서 한시름 놓고 있을 때였다. 결핵 예방접종을 하고 당근이가 안정화가 되어 안심하고 있을 때, 긴급 속보로 아래 내용이 전달되고 있었다.
00 병원, 간호사 결핵 중환자실 이용한 신생아 160명 특별조사
딱 당근이가 입원했던 기간과 겹쳤다. 당근이가 입원했을 때 오다가다 몇 번 마주쳤던 간호사였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절차를 물어보고 어찌해야 하는지 물었다. 병원에 내방해 결핵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놀라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태어난 지 한 달이 겨우 되었는데, 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긴 대기 시간 끝에 먼저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3kg도 안 되는 작은 당근이가 엑스레이를 촬영하려면 차가운 금속판에 잠시 올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옷을 다 벗기고 특수한 장비로 촬영을 한다. 차가운 판 위에서 당근이 옷을 하나하나 벗겨 낼 때, 나와 아내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결국 당근이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내: 엑스레이 찍으면 갓 태어난 아기한테 방사가 남을 거예요.
나: 방사선이요? 조금만 쓰는 거니까 큰 영향이 없을 거예요.
아내: 아니에요. 내가 찾아보니까. 갓난아이한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하네요!! 제발 한 번만 찍으면 좋겠어요.
나: 에이 방사선과 의사가 괜찮다고 하잖아요. 한 번은 괜찮을 거예요.
엑스레이를 찍고 소아과 의사와 만나 첫 번째 검진을 받았다. 엑스레이 상으로 결핵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결핵이 발병하는데 잠복기가 있기 때문에 5주 정도가 지난 후 다시 한번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결핵이 발병되었을 때를 대비해 결핵약을 한 달 동안 매일 복용해야 한다는 믿기 힘든 말도 들었다. 그걸 듣는 나와 아내는 정말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의사의 설명을 한참 듣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내: 저희가 다음 주에 중국 친정에 아이를 데리고 갈 거예요. 큰 문제는 없을까요?
의사: 약을 매일 먹이시면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언제 들어오세요?
아내: 저희가 한 달 정도 있다가 올 거예요. 그때 와서 다시 검사받으면 되나요?
의사: 네 그때로 제가 잡아드릴게요.
나: 약을 꼭 먹여야 하나요? 지금 결핵이 확진된 건 아니잖아요.
의사: 네 혹시 결핵이 발병하면 매우 위험할 수 있어서 먹이시는 것이 좋아요.
병원을 나오는 우리의 표정을 그때 누군가 봤다면, 어디 전쟁이라도 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당근 이를 재우고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때 중국인이던 아내의 가족들과 한국인이던 우리 가족들의 의견이 갈렸다.
아내: 이 약은 나는 안 먹였으면 좋겠어요. 찾아보니까 결핵 약을 조금씩 먹여도 간독성이 있어서 안 좋다고 해요.
나: 아니 그래도 의사가 먹이라고 하잖아요. 큰 부작용도 없고 혹시 라도 결핵 보균일 수 있으니까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거잖아요.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먹이자.
장모님: 이거 먹이면 얼마 동안 먹여야 되는 거야?
나: 최소 5주는 먹여야 해요. 매일 아침에 모유에 타서 주면 된다고 하네요.
아내: 아니에요. 나는 절대 먹일 수 없어요. 한국 사람은 왜 아프면 바로 약을 먹어요? 그래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나: 한국 사람이 아프면 꼭 약 먹어야 빨리 낳는다고 생각해요. 그게 맞는 때도 있어요. 그런데 당근이는 감기도 아니고 결핵이잖아요. 가능하면 의사 말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내: 아니, 그래도 이렇게 작은 아기한테 이렇게 독한 약은 못 먹여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공부하기 시작했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부터 학술 연구 논문 사이트까지 검색해서 영아들의 결핵에 관한 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뚜렷한 결론이 없었고 몇 가지 의견들이 있었지만 확실한 결론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결핵 예방접종을 한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체가 만들어지기 전에 결핵 환자와 접촉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 항체가 만들어지는지, 항체가 만들어지면 결핵 약을 안 먹어도 되는지, 발병이 막아지는지... 너무 많은 것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찾은 정보들을 서로의 채팅창에 보내면서 각자의 말이 맞다고 계속 우기고 있었다. 사실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다. 나나 아내가 아픈 것이 아니고, 제 3자인 아이가 아픈 것, 그것도 말도 못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너무나 결정이 힘들었다. 중요한 결정을 부모인 우리가 대신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다시 물어봤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결국 약을 먹이라는 것.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며, 약에 어떠한 부작용도 없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던 선생님이었다.
긴 난상 토론 끝에 우리는 약을 먹이지 않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결핵 약이 간에 독성이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찾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아내와 장모님이 그렇게 쉽게 약을 먹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안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맞다는 보장이 없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마지막으로 결핵 약에 대한 글을 보고는 그 약을 먹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5주가 지나고 다시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결핵이 보균되지 않았다는 확정을 받았다. 두 번째 엑스레이를 찍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엑스레이 촬영 후 당근이가 먹은 것을 다 토하기까지 해서 나와 아내의 표정은 역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기사에서 이 결핵 사태로 약을 먹기 시작한 몇 명의 아이들의 몸이 이상해 입원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어떤 식으로 해결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병원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이 병원은 다시는 가지 않았다.
일련의 사태 속에서 나와 아내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약을 먹는 것에 대해 홍콩과 가까운 중국 지역 사람들은 쉽게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감기에 걸렸을 경우 약의 힘을 거의 빌리지 않는다. 과거에 홍콩/광동지역에서 사스가 유행한 적이 있다. 수백 명이 죽었다. 그래서 쉽게 감기약을 처방해 주지 않으며, 감기 정도는 스스로의 면역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인식은 바꾸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병원에 자주 가고 약도 아주 쉽게 먹는 편이다. 그렇게 약을 먹고 빨리 낳는 것이 더 좋은 거라 믿고 자라왔다. 이 괴리는 꽤 크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그때마다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당근이는 건강히 아무 문제없이 이 혼란을 잘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