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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ug 21. 2018

#28. 아이 이름을 세상에 등록하다



 이름이라는 것은 개인이 태어나자마자 가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 중 하나다. 태어날 때부터 그 이름을 듣고, 죽음이 다가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이름은 서류나 전자 파일로 어딘가 기록되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그 이름을 한 번 등록하고 나면 세상에서 그 이름은 지울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물론 중간에 이름을 바꿀 수 있다. 이름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거나 개인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몇 번이고 이름을 바꾸는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이름을 여러 개 가질 수도 있다. 한국 이름, 중국 이름, 영어 이름 등 서류 상 등록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질 수가 있다. 



아내: 자기는 자기 이름을 싫어했던 적이 없어요?
나: 나요? 나는 별로 그런 적이 없어요. 음... 워낙에 누가 하라 그러면 그냥 하고, 별 의견이 없어요. 소심해서.
그런 성격도 있고, 이름이 싫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그게 내 이름이구나 하고 지낸 거죠.
아내: 그러시구나..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싫었어요. 너무 싫어서 남들이 부르는 거 싫어했어요.
나: 엥? 왜요 이쁜데, 귀여운데~
아내: 아니에요 내 이름은 중국 이름 중에 되게 흔한 이름이에요. 그리고 대부분 남자가 이 이름을 써요. 그래서 계속 싫어했어요. 바꿀 수 없어서 그냥 쓰는 거예요.
나: 이상하네 한국말로 듣기에 귀여운데. 자기 이미지랑 딱 맞는데, 탕웨이도 이쁜데. 
아내: 글씨가 달라요~! 탕웨이 못생겼는데~
나: 이상하네 한국사람들은 다 이쁘다는데.. 암튼!


 내 이름으로 지낸 지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내 이름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거나 크게 불편함이 없어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 반면에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놀림을 좀 받거나 오해를 받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남자 이름으로 많이 쓰던 글자여서 이메일이나 문자만 주고받은 경우, 남자로 오해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은행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 저 이 상품 해지하려고 하는데요.
은행원: 네 신분증 주시고요. (신분증 확인하다가) 음... 잠시만요.
아내: 네.
은행원: 죄송한데, 지금 고객님 이름으로 불법 송금한 건이 있어서 몇 가지 확인을 할게요.
아내: 네?? 불법 송금이요? 저는 그런 거 한 적이 없습니다. 
은행원: 여기 기록이 있어요. 자 여기 보니까 중국으로 불법 송금한 부분이 있네요.
아내: 음.... 죄송하지만, 여기 보니까 남자로 되어 있네요.
은행원: 어..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성별을 확인 못했네요. 그래도 이름이 같으니 다르다는 확인 서류를 작성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오해되는 일이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있었으니,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중국에서도 이름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내 공공기관에 신청하여 이름을 바꾸는 방법은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 바꾸는 것에 대해 장모님이 당연히 반대하셨다. 이 이름이 아내에게 좋은 이름이기 때문에 절대 바꾸지 못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이 이름을 계속 쓰고 있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에 신경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아이 수유와 재우기, 기저귀 갈기 등 번갈아 가면서 해도 해야 할 일이 쌓여있었다. 



 당근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센터에 가서 이름을 등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받은 출생증명서를 챙기고 주민센터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고, 인터넷에서 신고 절차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절차였다. 딸이 평생 쓸 이름을 등록하는 것인데, 신고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신고하러 가기 전부터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가 지은 이름이 마음에 않으면 어찌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꾸 상상하게 된다. "아빠 왜 이런 이름을 지어줬어요? 아빠 미워!!" 그런 딸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결국 "아빠가 미안해" 하고 있다. 내가 지은 이름에 당연히 의미가 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이 평생 쓸 이름이니까. 


처남: 제부(중국식 호칭) 나도 같이 가도 돼요?
나: 같이 갈까? 근데 가면 별로 재미는 없을 텐데. 집에서 가깝긴 해.
처남: 공식적으로 등록되는 순간인데 나도 옆에서 증인이 되고 싶어요. 
아내: 그래 두 남자가 같이 가봐요. 사진도 찍고, 당근이가 커서 보면 좋아할 거예요. 하하하.


 처남이 신고 현장을 보고 싶어 했다. 중국은 파출소에서 출생신고도 한다. 그 과정이 복잡하진 않지만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주민센터에 가면 아주 쉽고 빠르게 신고를 마칠 수 있다. 나는 서류를 챙겨 처남과 주민센터로 갔다. 조금 더운 날씨였지만 아주 신나는 마음으로 가서 신고서류를 작성했다. 또박또박 아이의 이름을 적는다. 그 세 글자가 틀리지 않았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다른 칸들을 채워나갔다. 순 한글 이름이기 때문에 한자란에는 이름을 적지 않고 성만 적었다. 찬찬히 내가 적은 내용들을 다시 확인하고 서류를 제출했다. 직원분이 컴퓨터에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을 보는 동안 처남은 내가 서류 적는 과정과 기다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신고를 마치고, 주민번호를 받아 들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보니 내 이름 밑에 당근이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주민번호 뒷자리가 4로 시작한다. 이 번호를 이제 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주민번호를 다 외우고 있다. 인터넷으로 뭔가 하고 싶으실 때 항상 나를 불러서 하곤 하셨는데, 각종 쇼핑몰, 서류 출력 등을 할 때 필요했던 주민번호를 내가 완전히 외워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새나 주민번호까지 다 외우게 되었다. 물론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내 머릿속에 입력이 되었다.  그 주민번호를 이용해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육아 수당을 신청하고 도서관에서 받을 수 있는 책 선물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공식적으로 이름을 가지게 된 당근이. 앞으로 최소 몇십 년 동안은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물론 당근이는 중국 이름도 가지고 있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중국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중국 이름도 이름이 이쁘다. 외우기도 쉬운 편이어서 아마도 중국 이름은 좋아할 것 같다. 반면 한국 이름은 약간 놀림이 될 것 같기도 한다. 그래도 이쁜 이름이긴 한데.. 좀 걱정은 된다. 태명이 아닌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어색하다. 하지만 계속 부르다 보니 입에 잘 붙는다. 왠지 아이도 그 이름을 좋아해서 부를 때마다 웃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그 이름을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섞여 그렇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으로 당근이가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름이라는 건 그 사람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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