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 나오는 시대다. 19세기 말 프레드릭 테일러가 처음 만들어낸 과학적 관리법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늘리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이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이 과학적 관리법의 시스템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되었다. 공장의 반복 생산뿐 아니라 사람을 생산하는 교육 시스템에도 적용되어 사람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개별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 분유애 확산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량생산, 소비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은 점점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전제품, 새로운 컴퓨터, 새로운 핸드폰, 새로운 옷 등 오늘 산 물건이 내일이 되면 예전 것이 되어버린다. 부동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오늘 지은 건물이 몇 년 후에 재건축이 될지 생각하고 그 기간에 따라 집값이 들썩인다. 우리가 자주 왕래하는 도로도 마찬가지다. 그 도로가 언제 새로 지어질지, 주변에는 어떤 건물들이 들어설지 우리는 늘 궁금해한다.
최근에 제주도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직접 거주하는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사람을 끌어당겨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저곳 좀 더 깨끗하고 편하게 시설들을 정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비자림로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도로의 양 옆에 우람하게 들어서 있는 삼나무를 보며 지나는 동안에 그 자연 광경에 경외감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의 삼나무들은 이미 많이 잘려나갔다. 새로운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삼나무들을 베어내는 공사가 진행되다가 잠시 멈춘 상태다. 한편으로는 삼나무의 근원적 역사나 건강에 해롭다는 어떤 의견들이 그 공사가 진행돼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원래 있던 그 아름다운 광경을 이제는 더 보지 못한다. 이미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이미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많은 조직이 움직였다. 아마 다시 예전 모습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왜 새로운 것이 좋을까. 이미 우리는 과거의 많은 자연경관을 비롯한 많은 도시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는 우리가 추억할 만한 것, 마음을 울릴만한 것이 많지 않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속에 아주 따뜻한 만족감이 흐른다. 그 만족감은 2년이 지나면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새로운 핸드폰을 산다. 우리가 집을 새로 사거나 이사를 해도 새롭게 리노베이션을 한다. 집의 구조를 바꾸거나 인테리어를 바꾼다. 그렇게 다시 새집을 만든다. 이제 헌 집을 새집으로 뜯어고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새로운 것을 사려는 마음, 과거의 모습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려는 마음은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 사회에 잠시 지나가는 고민일 뿐이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구입하거나 바꾼다.
어쩌면 그게 현재의 삶에서 잠깐의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쉽게 바꾸고 개발하는 가운데 우리 주변에 있던 많은 자연과 과거의 것들을 이미 사라졌다. 더 이상 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누군가의 사진첩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에서나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누군가는 마음을 건드리는 과거의 모습을 지키려고 할 거다. 결국 그것은 사회의 갈등이 된다. 온갖 의견들이 교류되고, 심지어 투쟁을 벌인다. 그럼에도 과거의 것들을 점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미 제주도의 삼나무는 잘려 나갔다. 삼나무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개발한다는 명목 하에 많은 자연경관이 과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대량 생산/소비의 사회에 온갖 개발도 대량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제품을 소비하듯이 땅을 구입하고 새로운 캔디 바를 땅에 건설한다. 그리고 그 캔디 바를 누군가 구경하고 돈을 낸다.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고 하고 쉽게 버린다.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었던 따뜻한 것들을 조금씩 가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