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가득했던 그들

by 레빗구미


외할머니는 참 따뜻한 분이었다. 먼 부산에 살던 분이었는데, 가끔씩 서울에 오실 때나, 내가 부산에 갈 때면 늘 내가 먹는 양보다 많은 음식을 항상 준비해 주셨다. 어렸을 때는 왜 그런 챙김이 싫었을까? 기억 중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병상에 있던 모습이다. 약한 치매 증상과 다른 질병으로 가시기 전까지 요양원에서 지내셨었다. 병상에서 가면 힘없이 앉아계셨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외할머니의 눈빛은 잠깐이나마 밝은 생기가 돌았다.


"우리 OO이,XX이 왔나?

"네, 할머니 몸이 좀 어떠세요. 많이 힘드시죠?

"아이다, 내는 괘안타. 밥은 묵었나?

"먹고 왔어요.

"여기 이걸로 맛난 거 사 묵어라.

"아니에요 할머니.. 저희 이제 돈 있어요.


그때 외손주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얼마 되지 않았던 꼬깃해진 뭉치 돈을 필사적으로 마다하는 내 손에 쥐어주며 뭔가 줄게 있다는 것에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한 동안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외할머니를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정사진으로만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언제가 이별이 될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오늘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일 죽기도 한다. 아프다고 해서 바로 죽음이 다가오는 건 아니다. 유방암으로 죽는다고 했던 어머니도 아직까지 건강히 살아계시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언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불확실성이 우리를 현재에 잘 살아갈 수 있게 붙잡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 소방관 두 명이 세상과 작별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택한 그들은 철저한 봉사정신에 가려져 있지만 심각한 우울증이나 심리치료가 필요한 이도 많다고 한다. 받는 월급도 적고, 근무는 힘들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그들의 일. 그 일을 하다 몇몇은 세상과 작별하기도 한다. 소방관들의 평균 수명은 55.8세라고 한다. 일반인의 평균수명이 80세가 넘는 것과 비교해 보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물론 그들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든 가족들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영화 미션임파서블-폴아웃을 보면 영화 속 영웅인 이단 헌트는 그 자신의 선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선의를 택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길을 택한다. 결국 그 자신만 가질 수 있는 개인 삶을 포기하면서 그 선의를 계속한다. 소방관이 하는 일들의 모든 것은 선의에서 비롯된다. 그야말로 선의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선의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줄 때, 자신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상황에서도 선뜻 나서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손에 쥐어주던 꼬깃한 돈뭉치가 생각난다. 외할머니의 가진 전부일 수도 있었던 그 돈뭉치, 외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선의를 나는 두 손에 받아 들었다. 나는 그녀는 가족이었다. 가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의였지만, 주검으로 돌아온 두 소방관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선의를 사용했다. 자신의 직업적 위치나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인을 위해 작은 선의를 건넨다. 그 선의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고 어려움을 치유해 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을 위해 그들의 남은 선의를 주지 못했다. 내가 받았던 가족의 그 작은 성의가 소방관들의 가족에게도 전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이상하게 그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평소에 늘 주기만 하던 그 모습, 내가 투정 부릴 때도 늘 웃으며 알았다고 할머니가 잘못했다고 하시던 외할머니,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주시다 한 순간 먼 하늘로 돌아가 버리신 외할머니가 왜 내 머리 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포기한 채, 선의만 베풀었던 그 모습이 겹쳐 보였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볼 때 힘들기만 한 소방관이라는 직업, 그리고 그 직업을 택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 일 자체에서 어떤 성취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우리가 일하면서 느끼는 그런 성취감, 선의를 실행하며 느끼는 성취감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 모른다.



순직하신 소방관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