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른다. 머리가 금방 자라는 편이라 한 달 정도가 되면 미용실에 잊지 않고 가야 마음이 놓인다. 머리를 깎을 때, 의자에 앉아 내 머리를 어떤 방식으로 자를지 설명하는 시간이 가장 떨리는 시간이다. 가슴은 두근대고 침이 마른다. 미용사가 다가오고 이렇게 저렇게 잘라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잘 이야기 한 건지, 실패하지 않을지 마음속에는 후회와 격려의 목소리가 오간다. 안경을 벗고 있기 때문에 미용사가 잘 자르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을 믿을 뿐이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안경을 쓸 때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 이번에도 망했구나.
후회를 하며 계산을 한다. 이렇게 이야기할걸, 아니 정우성 스타일로 잘라달라고 할 걸. 온갖 마음의 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머리 스타일에 실패하고 나올 때도 나는 늘 웃으며 인사하며 떠난다. 속에서는 후회의 감정이 계란 노른자가 터지듯 퍼진다. 미용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중간 즈음되면 다시 슬며시 괜찮다는 목소리가 강해진다. 앞으로 30일 동안 머리를 더 기르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니까 그때 다시 잘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그깟 머리 스타일 즘이야 그냥 남들 시선 무시하고 지내면 되는 거야. 늘 그렇게 내 머리와 이별한다. 과거의 머리카락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난다.
살면서 무언가와는 작별을 해야 한다. 작별을 함으로써 내가 견뎌야 할 부끄러운 내지는 감정적인 어려움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삶의 어떤 지점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 보내기도 한다.
어머니가 암투병으로 항암제를 맞고 계실 때였다. 어머니는 독한 항암제 덕분에 순식간에 머리카락과 이별을 하셨다. 아무 힘없이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기만 해도 많은 머리카락이 빠졌다. 항암제를 맞고 며칠 만에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리고 민머리가 되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생이별이었다. 그 이후 어머니는 여느 비극적인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털모자를 계속 쓰고 계셨다. 어머니가 머리카락과 이별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작별할 시간이 오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집안일을 하고, 간호를 했다. 어느 날 어머니와 병상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병원 밥, 나는 컵라면. 그때 어머니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일상적인 식사 시간 이후에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작별, 그 죽음은 내가 만들어낸 불안이었다. 그 짧은 식사 시간, 그 시간 동안 어머니의 평온한 표정을 봤다. 어머니는 나보다 덜 걱정하고 계셨다. 아니 어쩌면 표정을 감추셨던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눴던 일상적인 대화들. 내가 그 작별을 준비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저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평상시처럼 지내면 되었다. 어머니의 빠진 머리카락도 다시 자라겠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건강도 괜찮아지겠지. 어렵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거야. 그럼 다시 선택할 시간이 올 거야
내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맞는 머리 스타일을 찾았다. 그리고 나의 머리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주는 훌륭한 미용사도 찾았다. 매달 머리카락을 자르면 나는 멀끔한 사람으로 재탄생한다. 매달 머리를 자른 후 후회하고 민망해하던 모습도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의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다. 어머니는 여느 아주머니들이 많이 하시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고 많은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고 계신다. 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것과 혼자 작별을 준비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에 후회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이 결정된다는 생각, 감정은 사실 조절하기 힘들다. 순식간에 우리 마음속을 뒤흔들어 놓는다. 마치 마음속 악마와 천사의 대화처럼 엄청나게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내부의 갈등은 오히려 나 자신을 위축시킨다.
그런 감정이나 생각 따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마음속의 상처는 아물 것이며, 좋은 생각은 다시 마음속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머리카락도 다시 자란다. 우리는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다. 그것도 여러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