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비와 함께

by 레빗구미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모든 곳이 다 젖은 것 같다. 집 거실에 앉아 창밖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쏴아-하고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유리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보인다. 비가 쏟아져 내릴 때면 그 물방울은 큰 물줄기가 되고, 비가 수그러들면 다시 물방울이 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모양>(2018)에도 물이 모양을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버스의 창에 물방울이 하나둘 모여 큰 방울이 되고 이내 스르르 바람에 따라 창 뒤쪽으로 밀려나 사라진다.


비 오는 걸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엔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창문으로 흐르는 물과 빗소리를 듣는다.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원한 기분이 든다. 비를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카페에서 볼 때면, 가만히 앉아 사람을 본다. 각기 다른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취향의 우산을 들고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는 사무실에서 창밖을 보면 무수한 차들이 보인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가는 차를 보며 뭐가 그리 바빠서 그리 급하게들 가시나 생각한다.


비 내리는 걸 본다는 건 생각할 자유를 주는 것 같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비가 온다고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가 바로 옆 자리였는데 수업 중에 가만히 창 밖으로 비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운동장이 물로 가득 차는 것을 보다가 어느덧 하교할 시간이 다가온다. 교문 쪽을 보고 있는데, 우산을 챙기지 못한 자녀들을 위해 몇몇 부모님들이 우산을 가지고 교문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본 이후 계속 교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우산이 없었으니까. 혹시 어머니가 교문 앞에 서서 기다리실지 모르니까. 그런데 그날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왜 나는 그런 기대를 했을까? 어머니가 일 때문에 오시지 못한 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학생은 산만하고 수업에 집중을 못합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생활기록부에는 저런 평가가 쓰여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이 상담도 했다. 그저 비 오는 날 창문 밖을 본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평소에도 내가 산만한 학생이었을까. 어쩌면 그 당시 어른이었던 선생님 눈에는 그렇게 비가 올 때마다 창 밖만 보는 내가 못마땅해 보였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비 오는 걸 볼 때마다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집중이 잘 되었다. 더 능률적으로 일하게 되고, 공부를 할 때면 몰입도가 높았다. 한참 몰입하다가 비 오는 걸 잠깐 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느낌이다. 어쩌면 초등학교 선생님의 평가는 학생은 그래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이었을 것 같다. 다른 학생에 비해 나는 산만한 학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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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1957)에서 배우 진 켈리가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탭댄스를 추는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본 적이 있다. 비 오는 날 그렇게 멋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여러 번 그 장면을 돌려 봤었다. 영화 제목대로 사랑은 비를 타고 온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에서도 사랑과 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묘한 관계가 보인다. 비는 물이 되고 물속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그 물로 돌아간다. 나는 그 비를, 그 물을 보며 어머니의 사랑을 보고 싶어 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외로움은 나를 산만하게 하고, 비를 사랑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산만하다. 하나를 하다가 다른 걸 중간에 하고 또 다른 걸 하며 이리저리 하는 작업을 번갈아가며 한다. 몰입에 빠지면 외로움을 잊는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낄 때면 산만하게 이것저것 한다. 그러다 어느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비를 가만히 본다. 가만히 후두둑 내리는 비는 사랑스럽다. 비를 사랑하면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바란다.


그 외로움이 나를 만들었다. 그 산만함이 나를 만들었다. 그 비가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 여전히 내가 산만하다고 이야기해도 그게 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저 외로워서, 그 외로움이 비를 사랑하는 나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언젠가 나도 진 켈리처럼 우산을 들고 빗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다. 내게 가득한 외로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