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아기가 생긴다는 건 모두가 바빠진다는 것이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도 준비할 것이 많아진다. 차에는 꼭 아이를 위한 카시트가 있어야 하고, 유축기, 기저귀, 티슈 등등 챙겨야 할 물건들이 많아진다. 집에 있을 때도 바쁘게 아이를 챙겨야 하지만 한 번 외출하려고 하면 나가기 전 준비와 들어와서 정리하는 것은 큰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출을 최소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기회가 되면 나갔다. 물론 아내의 몸조리가 어느 정도 된 이후에는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닌 편이다.
나: 근처에 잠깐 나가 볼까요?
아내: 좋아요. 동생이랑 같이 가요. 새나도 데리고 잠시만 다녀오자.
나: 그럽시다! 근데 새나 이렇게 데리고 나가고 될까?
아내: 조심은 해야겠지만... 안될 건 또 뭐래요?
나: 아니 이렇게 나가다가 감기 걸릴 수도 있고, 아플까 봐 걱정이네요.
아내: 사실 나도 좀 걱정돼요. 근데 자꾸 조금씩 데리고 나가야 해요. 이런 것에도 적응을 해야죠. 대신 아직은 좀 조심하자.
자주 밖으로 나와 걸었다. 그냥 동네 한 바퀴 도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당근이가 큰 문제없이 나나 아내의 품에서 잘 안겨 있었다. 자기도 하고, 눈떠 주위를 보기도 하고 왠지 적응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처남은 당근이가 너무 귀엽다며 본인이 안고 산책을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침에 혼자 조깅을 하고 돌아오다가 특이한 이야기를 했다.
처남: 누나 내가 달리기하고 오다가 맥도널드에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사 먹는데, 매일 가는데 거기 직원이 나에게 말 걸어.
아내: 그래? 그럼 말 받아봐. 재밌네~
처남: 아니 내가 영어 쓰니까 처음엔 이야기 못하더니 다음 날 완전히 외운 표현으로 나한테 말 걸더라고.
아내: 그래? 뭐라고 그래?
처남: 전화번호를 달래.
나: 처남, 받아와.... 국제 연애 어때?
장모님: (처남을 째려보며) 안돼!!
처남: 내 문제에 왜 다들 난리야? 나 잠시 당근이 안고 산책 다녀올게.
그렇게 나간 처남은 당근이를 안고 맥도널드에 가서 직원에게 아이를 보여주며 결혼했다고 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과감히 그 여자분의 대시를 당근이 와 함께 거절했다. 그렇게 다양한 시간에 우리는 당근이 와 밖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장모님의 비자 만료 날짜가 다가왔기 때문에 곧 심천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근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는 장모님과 처남의 비자 기간 동안 같이 있고, 장모님과 처남이 돌아갈 때 당근이 와 아내도 같이 가서 한 동안 그곳에 있다고 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당근이였다. 아직 태어난 지 2개월 남짓된 작은 아기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것이 괜찮은지 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결정 전부터 출발하기 전까지 계속 검색을 했다. 정말 가도 괜찮을지, 너무 무리가 되지는 않을지. 대부분의 글들은 너무 어린아이를 비행기에 태우는 것이 아이에게 너무 힘든 일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역시나 어려우려나. 우리는 소아과에 갔을 때, 이런 문제를 의사에게 물어봤다.
나: 선생님, 저희가 중국으로 아이를 데리고 아내 친정에 다녀오려고 하는데요. 괜찮을까요?
의사: 아 그러세요? 혹시 지금 모유 수유하시죠? 비행기 이착륙 때 기압 때문에 아기 귀가 아플 수 있으니까. 그때는 모유 수유해주시고요. 다른 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비행기 타도 괜찮습니다.
아내: 정말 괜찮을까요? 인터넷에는 안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서요.
의사: 아기가 힘들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어른하고 큰 차이가 없어요. 아기가 울면 모유 수유 꼭 해주시고 잘 안아주시면 돼요.
결국 그 말을 들은 아내와 나는 심천행 티켓을 예약했다. 그러고는 당근이 여권에 쓸 사진을 어떤 방식으로 찍어야 할지 고민했다. 출국하려면 아기도 여권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여권 사진의 기준이 일반 성인과 똑같다. 귀는 무조건 보여야 했다. 매번 움직이고, 우는 아이의 정면 사진을 찍는다는 게 참 힘들었다. 어떤 각도로, 어떤 식으로 찍어도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처남이 나서서 본인이 찍어 보겠다고 해서 당근이를 침대에 두고 거실로 나왔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우리 가족 단체 채팅창에 사진 하나가 왔다. 당근이의 정면 사진을 보냈는데, 여권 사진의 기준과 얼추 맞다.
나: 우와! 이거면 될 것 같은데요. 역시 처남 대단하네!
처남: 형, 당근이가 말을 잘 들어서 찍었어요. 역시 내가 최고네요.
나: 하하하. 그치, 처남이 최고야.
아내: 아이고 두 남자들 못 말리네....
정말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찍은 사진을 가지고 여권 신청을 하니 5일 후 여권이 나왔다. 새나의 첫 여권. 그리고 심천 갈 때 필요한 비자도 신청해서 같이 받아두었다. 내심 속으로 너무 걱정되어 계속 검색만 했던 나는 비행 날짜 직전까지 시간만 나면 아기/비행기/결핵 등을 검색했다. 내가 아닌 내 딸이 하는 첫 경험을 내가 너무 걱정하고 있었다. 내 주변에서 가장 연약한 작은 존재를 내가 나보다 더 걱정하기 시작한 시점인 것 같다.
비행 출발 당일, 새벽같이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나는 직장 때문에 한국에 남고 장모님, 아내, 처남, 당근이 이렇게 4명이 심천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떠나는 날 수속을 마치고 출국 심사장 옆 카페에서 앉아 커피를 마실 때, 당근이를 안고 이야기했다. "아빠 잊어버리면 안 돼. 아빠 매일 전화 걸게. 비행기 무서워하지 마 마미가 지켜줄 거야"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잘 가고 있는지,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당근이가 비행시간 내내 우는 건 아닌지, 혹시나 긴급 상황이 생기지 않을지, 머릿속에는 온통 걱정과 근심뿐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도 걱정되는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집에서 3시간 넘게 한참을 기다리다 전화가 울렸다.
아내: 자기야. 우리 잘 도착했어요. 지금 집에 들어와서 정리다 했어요.
나: 잘 도착했네요. 당근이는 어때요? 많이 울었어요?
아내: 아니오. 하나도 안 울고 잠도 잘 자고 모유도 잘 먹었어요. 이착륙 때 잠깐 울먹했는데, 모유 주니까 그냥 자더라고요.
나: 그래요? 다행이네. 불편한 건 없었고요?
아내: 팔이 좀 아파요. 계속 안고 있어야 했어요. 비행기 맨 앞 칸이라 앞에 아기 바구니를 설치해 주더라고요. 근데 당근이가 좀 불편해 보여서 못 놓고 그냥 안고 있었어요.
나: 에고 힘들었겠네. 자기가 고생이 많았어요. 얼른 정리하고 일찍 쉬어요.
무사히 3시간 반의 비행을 마쳤다. 당근이도 울지 않고 잘 도착했다는 말에 그제야 안심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첫 비행기를 탄 당근이는 그 후로도 비행기를 자주 탔다. 그래서인지 당근이는 비행기를 탈 때 울거나 보채지 않는다. 그저 자기 만의 공간만 주면 그 공간 안에서 놀고, 먹고 잔다. 어쩌면 그 비행에 익숙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개월 수가 적은 아기들과 외출을 꺼린다. 밖에 온갖 세균과 나쁜 것들이 있어서겠지만, 어차피 그것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물론 세균이나 질병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자주 같이 외출을 하면 아기도 그 외출 환경에 익숙해지고 덜 보채게 된다. 챙겨야 할 짐이 많고 바쁘게 준비해야 하지만, 그렇게 나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외출 육아는 좀 편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 이동이나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과감히 가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의외로 인터넷 상에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다. 한참을 검색해도 좋은 이야기는 열에 한 두 개가 나올까 말 까다. 이게 정말 안 좋다기보다는 아기의 울음으로 인한 불편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어쩌면 외출에 익숙해지고 비행기를 종종 타면 아기가 익숙해져 덜 보채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당근이는 비행기와 외출에 익숙해졌다. 아기와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하기 전의 엄청난 고민은 기우였다. 못 탈건 뭐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