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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혼자 남겨진 한 달의 시간

by 레빗구미


결혼을 하기 전에는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냈다.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나 신나게 술을 마시다 집에 와서 혼자 쉬고. 집에 부모님과 남동생이 같이 있지만,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각자 방에서 생활했다. 아들 둘이 있는 집안의 분위기는 아마도 다른 비슷한 집과 서먹서먹 비슷할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많은 시간을 둘이서 보내게 된다.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산책을 한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가끔씩 혼자 남겨지게 되면 그 적막함이 어색하다.


아내: 자기야 나 이번 주말에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요.
나: 출장이요? 이렇게 갑자기요?
아내: 자기가 알잖아요. 우리 회사는 항상 갑자기야~
나: 흠.. 그래요. 그럼 비행기 시간 알려주면 내가 공항까지 데려다 줄게요. 혼자 주말을 보내야겠네.
아내: 자기가 친구도 만나고 재미있게 보내요.
나: 그래야겠다. 영화도 보고!! 친구한테 전화해야지(매우 밝은 표정^_____^)
아내: 으이구 입이 찢어지시겠네요.



아내가 처음 해외 출장을 가던 날, 그땐 참 신났다. 아내가 출발하기도 전에 친구에게 전화해 약속을 잡고, 오전에는 조조 영화를 여러 편 예매를 해뒀다. 그 잠깐 동안의 자유를 상상하며 아내가 출발할 날을 기다린다. 한 발 한 발, 아내가 출발한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까지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준비해서 친구를 만난다. 매우 즐겁고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집에 와서는 완전히 뻗어 침대와 하나가 된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집안을 둘러볼 때의 그 적막감. 아무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없는 그 적막감. 아내의 소리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 순간, 마음이 찌릿한 무언가가 파고들어 외로움을 더욱 느끼게 한다. 혼자 밥을 해 먹고, 혼자 산책을 하고, 혼자 집에 앉아 책을 보는 모든 순간에 무언가 빠진 느낌이 든다.



아내: 자기 잘 지내고 있나요? 오늘도 귀엽네요.
나: 귀엽긴 뭐가 귀여워요! 완전 머리가 산발이 고만. 번개 맞았네요. 거울도 못 보고 있었네.
아내: 왜요. 평소처럼 잘생깄구만요~ 뭐 하고 있어요?
나: 그냥 집에서 뒹굴 하고 있죠. 자기가 빨리 와요. 같이 놀자. 심심하네.
아내: 하하하. 없으니까 외롭지? 메롱~


아내가 돌아오는 날, 나는 공항에 꽃을 들고 배웅을 갔다. 작은 꽃을 든 나를 본 아내는 정말 활짝 웃었다. 그걸 보고 나도 활짝 웃었다. 그만큼 그 적막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식구가 한 명 늘어 당근이 까지 같이 지내게 된 우리. 아이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 더욱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같이 밥을 먹고, 아이도 밥을 먹이고, 같이 잠을 자고, 아이도 재우고, 산책도 세 명이 늘 같이 했다. 당근이는 아직 걷지 못하고 표현도 못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상 그런 당근이를 챙기느라 서로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물론 출산 후 얼마 기간 동안 장모님이 계셨지만, 가능하면 우리 부부가 당근이의 육아를 최대한 담당하려 애썼다. 그래서 그 기간이 더 힘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장모님과 처남이 심천으로 돌아가는 날, 아내와 당근이도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때도 아내의 첫 출장 때처럼 왠지 모를 들뜬 기분이 들었다.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신난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극장의 영화 시간표를 확인했다. 길다면 긴 시간인 한 달, 그 한 달 동안 당근이와 아내는 심천에서 내내 지냈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평일엔 회사에 출근했기 때문에 주말에 몇몇 친구들을 만났고, 어떤 날은 극장에서 영화 3편을 연달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자유를 신나게 만끽하다가 매일 저녁 8시에는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가 오면 받아서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나: 오늘도 별일 없죠?
아내: 별일 없어요. 엄마가 많이 도와주니까 참 편하네요. 역시 친정이 좋은 건가 봐요. 우리 집 좋다.
나: 그렇게 좋으면 계속 있으려구요?
아내: 그래도 자기랑 같이 있어야죠~ 근데 당근이가 더 크면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 음.. 가능하면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어요..
아내: 혼자 있는 거 편하지 않아요?
나: 신나는 것도 있죠. 자유롭긴 하고. 근데, 일주일만 지나면 또 외로워요. 집이 너무 조용해.
아내: 하하하. 여긴 엄청 시끄러운데. 자기가 마음껏 자유를 누려요. 그것도 얼마 안 남았네요~


딱 일주일. 일주일 동안 할 것을 다하고 나니, 또다시 그 적막함이 느껴졌다. 집에 사람 소리가 안 난 다는 것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을 파고들어 그리움을 대량 생산한다. 아내는 나름대로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 돌아가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자신이 자라온 그 고향에 돌아갔기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편안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가 출산 후 산후조리의 또 다른 연장선에서 아내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준 것 같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씩 당근이의 사진을 보냈다. 그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당근이가 하는 행동과 표정, 몸짓을 봤다. 몇 번이고 돌려보는 나를 보니, 어쩌면 그때부터 딸바보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자고 일어나서 느껴지는 적막함을 그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달랬다. 그게 꽤나 효과가 있었다.


술을 먹고 뻗어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에도, 늘 머리 한켠에는 아내와 당근이가 돌아오는 그 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시 셋이 되는 순간. 그 짧은 한 달 동안 그 장면을 머릿속을 몇 번이고 그리고 그렸다.



드디어 그들이 돌아오는 날!


아내: 자기야! 오늘도 마중 나오셨네요~
나: 그럼요. 당연히 와야죠. 자기가 애도 있어서 혼자 못 와요. 차 막힐까 봐 일찍 나와있었어요.
아내: 하하하. 역시 내 남편이시네요.
나: 푹 쉬다 왔어요?
아내: 네 잘 있다 왔어요.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살쪘어요?
나: 그대로 고만 뭘 살쪄요. 그리고 살 좀 쪄도 괜찮아. 너무 말랐어.
아내: 거! 짓! 말!
나: 당근아 잘 있었어?
당근이: 응애~~~~ 응~~~ 애~~~~


아내와 인사를 하고, 당근이에게 인사하는 그 순간부터 당근이는 울기 시작한다. 꽤 오래 당근이가 울었다. 아마도 떨어져 있는 한 달 동안 나에 대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익숙해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떨어져 있었던 만큼 더 안아주고, 가능하면 많이 놀아주려 애썼다. 그래서 힘들긴 했다. 거의 잠을 잘 못 잘 정도로. 그래도 다시 그들이 돌아오고 나서 집에는 사람 소리가 들린다. 숨소리, 우는 소리, 웃는 소리, 요리하는 소리. 적막함은 이제 멀리 가버리고, 다시 소리들로 가득 찬 집이 좋았다.


앞으로 또 그렇게 떨어져야 할 시간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다. 특히나 나는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 종종 찾아온다. 아내의 고향이 비행기로 3시간 반 거리이기 때문에 쉽게 왕래가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여러 번 방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가능성일 뿐이다. 최대한 그 가능성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가족은 떨어져 살면 안 된다. 그 짧은 경험으로도 그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혼자 느끼는 적막함은 곧 서먹함으로 바뀌고 결국에는 어색함이 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바로 거리, 떨어짐이다.


혼자 편한 시간에 영화를 보지 못해도, 밥을 먹다가도 아이한테 달려가도, 밖에서 팔이 아파 떨어지도록 아이를 안고 있어도, 아내와 둘이 데이트를 하지 못해도... 역시 아이와 아내와 같이 하면서 고생을 같이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혼자 남겨진 그 시간 동안 그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역시 가족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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