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보단 주관식 같은 삶이 좋아

by 레빗구미


온통 시험으로 가득찬 세상이다. 평생 우리는 몇 개의 시험을 겪게 되는 걸까. 사실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는 공식적인 시험이랄 것이 없다. 그저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먹고 약간의 지식을 배운다. 물론 최근에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 시험을 보는 사례가 더러 있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큰 시험이 없다.


시험은 두렵다. 부담스럽다. 언제부터 시험이 이렇게 부담스럽게 다가오게 된 걸까. 왜 우리는 시험에 얽매여 살아야 할까. 초등학교까지는 그렇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다가오는 대입 입시 때문에, 조금씩 부담이 더해진다. 한 문제 한 문제 풀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점수가 나오는 날에는 가슴을 졸이며 성적표를 받아 든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 각 과목 점수를 확인하고, 등수를 확인하면서 원하는 점수가 아닐 때의 절망감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실망감보다는 두려움이 크다. 그 성적표를 부모님의 손에 건네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 앞에서도 한참을 벨을 못 누르고 서성였다. 집에 들어가면 뭔가 큰 사단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일은 매 시험마다 반복되었다.


객관식은 좀 더 쉽잖아. 좀 잘 찍어봐. 좀만 공부하면 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객관식 문항이라 더 쉽다고 했다. 부모님도 조금만 공부하면 정답이 쉽게 보일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교과서를 외우고, 참고서를 풀고 많은 객관식 문항을 풀었다. 실제로 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다 보면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공부가 재미없어서인지, 매일매일 피곤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잠은 계속 쏟아졌다. 그렇게 시험을 보고 나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결과가 나오면 절망이 반복되었다.


그 뒤로 공부를 반쯤 포기했다. 2018년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있다. 대부분 자신은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그들이 공부에 소질이 없는 걸까. 획일화된 교육 환경은 다양한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생각을 외우게 만든다. 그만큼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 객관식 문항에서 정답을 찾다가 원하는 인생을 찾지 못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 시험에서 객관식 문항의 정답을 최대한 많이 맞히기 위해 공부한다. 대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객관식 문제를 푼다. 취업을 위해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준비를 하고 또 무수한 객관식 시험을 치른다. 심지어 운전면허 시험도 객관식이다.


하지만 세상에 정답은 없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도 어떤 발견이나 연구로 인해 바뀌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지구가 네모라고 믿었다. 그건 그들에게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 진실은 지구가 둥글다는 발견 때문에 바뀌게 된다. 그렇게 바뀐 진실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가 매번 정답을 찾는 객관식에는 진짜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렇게 확실하다고 믿어지는 정답들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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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식 문항이 편해. 그게 왜 정답인지 내 생각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잖아.


대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적응했을 3학년 무렵부터 성적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전공과목인 사회학 관련 과목을 많이 들었는데, 꽤 재미있게 배웠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시험 때가 되었을 때, 공부를 한다고 열심히 외우는 것보다 필기한 것을 여러 번 읽고 이해했다. 그리고 시험날에 텅 빈 시험지를 받았다. 문제는 덩그러니 3개가 있고, 배운 내용을 토대로 내 의견을 쓰는 형식이었다. 배운 내용을 기초로 해서 내 주장을 정리하여 썼다. 한정된 시간 내에 하얀 시험지를 글씨로 가득 채웠다.


누군가 물었다. 넌 객관식이 좋아 주관식이 좋아. 당연히 주관식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대부분 객관식은 정답을 맞힐 확률이 높기 때문에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말 그게 정답일까. 우리가 정답이라고 외워서 맞추는 것이 맞는 걸까. 그게 맞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주관식으로 쓴다고 해서 그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틀린 답을 적고 있더라도 그런 것이 내 생각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주관식이 더 공평한 시험인 것 같다. 암기를 못하더라도, 이해를 한다면 멋진 답을 쓸 수 있고, 좋은 점수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 삶도 그렇다. 몇 개의 보기 가운데 선택하는 것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답을 선택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삶. 남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삶보다는 내가 내 선택을 설명할 수 있는 삶. 그래서 모두가 계속 주관식에 답을 쓰며 살아가면 좋겠다. 더 이상 객관식 시험에 목메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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