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 전진한다. 어쩌면 우린 에스컬레이터에 탄 채로 자연스럽게 내일로, 또 내일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음날은 오고 그냥 그렇게 삶은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상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남북정상회담이 벌어지고 있다. 온 세상이 다 거기에 관심을 가진 것 같이 느껴진다. 인터넷 뉴스에도, TV 뉴스에도 정상회담 이야기가 가득 채워진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개개인의 삶은 똑같이 진행된다. 금방 바뀔 것 같은 호들갑에도 큰 변화는 없다.
1994년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TV를 보다가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 당시에 나에게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럼 이제 우리 통일되는 건가. 아니 전쟁 나는 건가. 뉴스를 보면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요란하게 뉴스에서 떠들 뿐이다. 그렇게 그 큰 사건도 그저 잊혀진다.
야 큰일 났어. 우리 전쟁 날 것 같아.
군대에 있었던. 2001년 9월 11일 내무반에서 작업 대기를 하고 있던 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TV를 틀어보라는 방송에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비행기가 미국의 빌딩에 부딪혀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미국도 테러를 당하는구나. 이제 우리가 전쟁 난 곳으로 파견하게 되나. 누군가 외쳤다. 이러다 우리나라도 전쟁 나는 거 아니야. 큰일 났네. 정말 큰일 난 줄 알았다. 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전역하는 2002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눈이 오면 치우고, 훈련을 받고 밥을 먹다 보니 그렇게 커 보이던 그 일도 잊혔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건에 무덤덤해졌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들이 실질적인 내 삶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궁극적으로는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걸 개개인이 느끼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니 어쩌면 그런 큰 사건들의 영향은 어디엔가 숨겨져 있다가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작년 대통령 탄핵 사태가 딱 그랬다. 그저 단순한 사건이었던 국정농단은 많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았고 결국 대통령을 새로 뽑게 만들었다. 사실 그것이 우리 삶을 그렇게 많이 바꾸진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우리의 삶을 걸어가다 보면 하나 둘 바뀌는 것들이 보일 것이다. 김일성의 죽음으로 북한과의 적대 관계가 꽤 오래 이어지다 현재는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911 테러로 많은 국제법들이 좀 더 안전한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안전하게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적폐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고 남북관계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직은 바뀌는 것이 없지만 몇 년 후 어쩌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 유럽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그 사건들은 우리의 삶을 바꿀 거야
어느 날 대학교 친구와 민주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렇게 힘들게 개인이 죽고 다쳐도 별로 변한 게 없네. 이런 사건들에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잖아. 그냥 우리 삶을 그냥 살아가도 괜찮은 거 아닐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에게 친구는 그 사건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이야기해줬다. 두고 보라고 결국 우리 삶에 언젠가는 영향을 줄 거라고.
그래서 늘 그런 소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떤 식으로 바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한 걸음 걷고 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10 걸을 걸으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 그 사건이 잊히더라도 그 사건은 사람들의 수면 아래서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적 사건 속에서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 전진하면서 그것이 주는 변화를 조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다음 걸음에 변화된 땅을 밟는다. 그렇게 새로운 땅을 밟으며 우리 각자의 삶을 만든다. 우리 각자의 사건을 만든다. 결국 그런 개개인의 사건들은 큰 사건과 함께 우리의 삶을 바꾼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큰 사건에도 눈을 떼지 못하겠다. 귀를 닫지 못하겠다. 그래서 오늘도 인터넷 뉴스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