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

by 레빗구미

부끄러움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나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럼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나 마음은 무엇일까. 위키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인간의 감정 중 하나로 큰 망신을 당했거나 열등감을 느꼈거나 잘못을 저질렀거나 주어진 일을 못해 양심에 가책을 느끼던가 떳떳하지 못한 것 또는 숫기가 부족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못하거나 어색한 것.


부끄러움이란 나쁜 감정일까.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신경 쓰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늘 신경 썼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어떤 순간이든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은 꼭 찾아온다. 늘 그런 순간은 예측할 수 없다.


거기 김동근 앞으로 나와


분명히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그렇게 나를 보며 불렀다. 그래서 주섬주섬 앞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계속 속으로 왜 나를 부를지, 아무 일도 없는데, 무엇 때문 일지 고민하며 나갔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 찰나의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앞에 나간 내 옆으로 다른 친구가 나를 지나쳐 선생님 앞으로 간다. 나를 부른 게 아니었다. 순간 아차 하는 느낌이 들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얼굴은 빨갛게 변해갔다. 너무 부끄러웠다. 수치심이 들었다.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길고 긴 순간, 얼른 칠판 옆 분필 박스로 가 분필을 하나 집어 들고 자리로 왔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을 것만 같았다.


한 번은 어머니와 슈퍼마켓에 갔다. 어린 마음에 풍선껌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 눈치를 보고 말할까 말까 고민만 했다. 왠지 불량식품이라는 생각에 껌을 사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슈퍼마켓 주인 몰래 작은 풍선껌 하나를 집어 들고 나왔다. 가게 주인이 못 봤다. 어머니도 못 봤다. 그렇게 집에 와 몰래 껌을 입에 넣으며, 한참을 멍하니 있으니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든다. 나 자신을 욕하고 꾸짖었다. 또다시 얼굴이 빨갛게 변해갔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 자신을 계속 질책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신입생들이 가득 모인 교실에서 각자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기 소개를 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앞에 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누가 알려준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다. 40명 정도의 학생 앞에 서서 나 자신을 소개할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연단 앞에 서서 땅을 바라보며 내 이름을 말하고, 살던 곳과 취미를 말하고는 무슨 죄라도 지은 것 마냥 서둘러 자리로 돌아왔다. 모든 신입생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쟤는 무슨 말을 한 거야. 이상한 애 아니야. 뭘 저렇게 땅만 보고 다니지. 그런 속삭임들이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 한번 얼굴이 빨갛게 변해갔다. 얼른 그 시간이 끝나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신입생 환영회까지 자리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빨갛게 변한 내 얼굴은 술자리 내내 그대로 였다.



삶은 부끄러움의 연속이야. 그걸 익숙하게 느끼고 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20대 후반의 어느 날 친구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사는 게 너무 부끄럽다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 친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늘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기의 말을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런 당당한 그의 모습을 계속 동경해 왔는지 모르겠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이후 그 친구는 자신도 부끄럽다고, 하는 일이 늘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그런 감정을 내뱉고 난 후에, 그는 우리 삶에서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고, 계속 경험하게 되는 어떤 것이라고 했다. 그것에 적당히 익숙해지고, 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도 했다. 그간 그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의 말은 한 동안 내 머릿속에 한참을 머물렀다. 늘 당당하던 사람도 이런저런 일로 부끄러움을 계속 느끼며 사는구나. 나만 이렇게 부끄러워 한 건 아니었구나.


그 뒤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될수록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물론 평생 동안 해왔던 그 눈치를 단번에 없앨 수는 없다. 그저 이전보다 덜 신경 쓰고, 덜 상처받고, 덜 부끄러워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양심에 찔리는 일은 하지 않고 지냈다. 한결 삶이 수월했다. 여전히 나 자신을 비하하고 비난하고 강력한 자기 검열의 행동을 한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그 빈도는 줄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선생님의 말을 잘 못듣고 앞으로 나갔을 때도, 껌을 훔쳤을 때도, 대학교 신입사원 자기 소개를 할 때도 아무도 나의 모습에 많이 신경쓰지 않았다. 그 상황 속에서 느낀 부끄러움은 나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더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부끄러움이 아예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나쁜 일도 서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사회는 마구 뒤엉킨 혼돈의 공간이 된다. 부끄러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 그것을 과도하게 인식하고 부정하게 되면 그것은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는다. 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낼 기회가 없어지고, 아주 작은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며 점점 자신의 존재를 땅 속에 묻어버린다.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 속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