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무대에 서는 걸 잘하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가장 처음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유치원 즈음 발표회일 것 같다.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 앞에 나아가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춘다.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막상 시작되고 나면 신나게 공연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사람 앞에 서는걸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주고 손뼉 쳐 주기 때문에 작은 실수를 하면서도 앞에 나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이사를 많이 다녔던 어린 시절 전학을 가서 새로운 학교에 등교를 하면 첫날은 항상 앞에 나가 인사를 해야 한다. 유치원 때도 아무 거리낌 없이 앞에 나가 이야기를 했던 당돌했던 아이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다.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 없는 초등학생이 되어 앞으로 쭈뼛쭈뼛 나가서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후다닥 자리로 돌아온다. 뭐가 그렇게 자신 없고 부끄러웠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존감은 낮아졌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졌다. 말 수는 더 줄어들었고,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학교에 가서도 비슷했다. 조금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면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자기소개할 때면 그냥 이름과 인사 정도만 하고 마무리했다. 앞에 나가면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자리로 들어온 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늘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발표 잘하는 사람을 동경했다. 특히나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보컬은 경외 로운 마음으로 보곤 했다. 왜 그렇게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을까. 아니 주위엔 그렇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도 앞에 나가길 어려워했고 싫어했다. 아마도 우리가 한국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서 인지 모른다. 우리는 초중고 교육을 받으면서 질문을 자유롭게 하거나 발표를 하는 분위기에서 자라지 못했다. 오히려 선생님이 시켰을 때, 틀린 답을 말하면 벌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꼭 정답만을 말해야 하고, 뭔가를 이야기할 때는 대단한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담감은 우리들을 모두 무대 공포증으로 만들어 버린다.
대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직접 발표를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어느 수업시간 딱 마음을 먹고 발표를 하기 위해 앞에 섰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수업 시간이었고, 교수님의 눈에 띄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주 훌륭하진 않았고, 목소리도 모기만 했지만 그래도 앞을 보면서 발표를 잘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어지던 질문시간에 오히려 내가 교수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발표 잘 들었죠? 여러분, 발표자도 언제든지 질문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순간이 내 인생을 꽤 많이 바꿨다. 교수님은 내 질문에 세세히 답변을 해주셨고, 발표도 만족스러워하셨다. 그렇게 보였다. 어쩌면 나 자신의 만족한 마음을 다른 사람의 표정에서 읽으려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 날 이후 여전히 발표나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계속 시도했다. 먼저 내 생각을 정리하고 말할 것을 적어 놓고, 앞에 나가서 이야기했다. 더듬더듬 말하기도 하고, 실수도 했지만 계속 그냥 했다.
용기를 내 노래 동아리에 들어가 공연도 해봤다. 역시나 무대 공포증 때문에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공연을 마치고 바로 화장실에 가서 헛구역질을 했다. 위가 엄청 아프고 쓰렸다. 그 정도로 많은 인원 앞에서 뭔가 한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했다. 직장인이 돼서도 그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 남 앞에 서고 이야기했다. 좋은 이야기만 듣지는 못했다. 승진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떤 고객은 나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하길 원했다.
이제 공연 무대에는 오르지 않는다. 밴드에 들어가 노래도 불러보고, 축가도 여러 번 불러봤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뭔가 설명을 하는 프레젠테이션은 계속한다.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계속 뭔가를 설명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어떤 경우에는 설득을 해야 하기도 한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남들 앞에서 내가 파는 제품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한다. 전화로도 하고, 미팅에 가서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영어로 설명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내가 하는 모든 발표가 완벽하진 않다. 그저 그냥 하는 거다. 여전히 누군가의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피하고 싶다. 그런데 대학교 때의 그 수업 이후로 해야 한다면 일단 한다. 그런 기회에 도전하지 않으면 결국 계속 두려워하다 끝나버린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스릴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면에서 보면 올바른 관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남들 앞에 잘난 척하고 싶은 DNA가 분명히 있다. 20대 때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나도 나의 능력을 뽐내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해주고 싶다. 이게 연륜인가. 나이 먹으면,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까. 다른 걸 다 떠나서 무대에 나가 이야기하거나,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냥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은 드러나지 않고, 그저 어둠 속에 머문다. 우리 모두가 전문 프리젠터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 이야기를 하면 된다. 사람들은 앞의 사람이 말을 잘하든, 못하든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 발표가 하나씩 모이면 어느 순간 우리 삶을 바꿔 놓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