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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Feb 07. 2018

#2. 의심에서 확신으로 마음을 얻다



 처음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시작한 이후, 어색한 한국말과 영어로 이야기 하던 중 바로 그 해당 주말에 약속을 덜컥 잡아버렸다. 왜 그렇게 서로가 금방 오케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내가 과거에 했던 연애나, 일반적인 연애라면 아마도 그런 식의 접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거나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직급이 과장이었고, 그녀는 신입사원이었으니,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내 직장 생활에서 처음으로 신입사원에게 관심을 보였던 그 순간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뀔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 : 이번 주 토요일 점심시간되세요?
그녀 : 과장님 주말이 시간을 벌써 알 수 있으세요? 저는 아직 확정할 수 없어서 모르겠어요.
나 : 그럼 확정되면 알려주세요.

다음 날...

그녀 : 토요일 점심 식사 괜찮습니다.
나 : 잘 되었네요. 그 때 광화문 역에서 만날까요?
그녀 :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의 생각에 맞춰도록 하겠습니다.


  약속은 정해졌고, 토요일 광화문역에서 그녀와 만났다. 가까운 파스타 집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그 쪽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다. 회사 안에서도 직접 대화 해본 적 없고, 회의 조차 같이 해본 적 없는 사람과 점심을 먹다니, 그 때 내 머릿 속엔 ‘내가 미쳤다’는 생각과 ‘떨린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데, 그녀는 잘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보통 여자분들이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를 주문 했고, 나는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하여 먹었다.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처음 부터 충격적이었다. 나이 차이가 7살이었다. 나는 80년생, 그녀는 87년생. 그 정도로 많은 나이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차이나는 사람을 연애대상으로 고려해본 적도, 만나본 적이 없다. 계속되는 대화에서 그녀의 고향이 중국 심천이고 홍콩 옆이어서, 굉장히 큰 도시라는 정도, 그리고 한국 대학원 유학을 와서 취업을 했다는 것 까지 알게 되었다.


 지금 아내가 된 그녀는 한참 지나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녀 : 나 처음 데이트 할 때, 크림 파스타가 너무 별로였어요.
나 : 응? 그럼 그때 왜 이야기 안했어요? 다른거 주문해줬을텐데...
그녀 : 나 그집에 처음 가고 어떤게 맛있는지 몰라서.. 그리고 처음 만났는데 까다로운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나 : 그래도 그렇지!! 싫어하는 걸 왜 먹고 있어요;


  그때 그녀는 파스타의 반을 남겼는데, 그때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던 걸로 생각했다. 실제로 배가 부르다고 이야기해서 그 말을 믿었던 내가 참 센스가 없다. :) 그녀의 한국어는 어색했지만,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대화가 잘되어서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되었다. 그녀의 외모는 전형적인 중국인의 모습이 아니고, 한국 사람의 모습이 더 많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으로 오해를 많이 하기도 한다. 그 날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한 잔 먹고, 청계천 산책까지 하고 내가 집에 바래다 주었다.


 그녀의 집은 석계역에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은 광명시 여서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지만, 잘 보이고 싶어 데려다 줬다. 가면서도 서로에게 호감을 잔뜩 표시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내 속에서 용기가 꿈틀꿈틀 커지는게 느껴졌다. 급기야 석계역에 내려서 그녀가 가기 직전에 아예 사귀자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 : 잘 들어가요. 이제 오빠라고 불러요.
그녀 : 네 오빠 집까지 배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 당시 배달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하하)
나 : 저기.. 혹시 제가 ooo씨 남자친구 해도 될까요?
그녀 : 네? (부끄러운 표정..)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나 : 아니 서로 호감이 있는 것 같아서요. 우리 시간 끌 필요 없이 한 번 만나봐요.
그녀 : (한참을 고민하다) 네... 그래요.
나 : (속으로만 환호성) 잘가요. 연락할게요!


 30년 넘게 소심쟁이로 살던 내게 타국의 여인에게 처음 만난 그날 고백을 해버리고 연인이 된 그날. 왜 그렇게 용기가 쉽게 났던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그 소심쟁이는 계속 되고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석계역에서 1일을 맞았고, 회사에서 비밀 사내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다. 실패자들이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그 사내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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