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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Oct 09. 2018

#35. 2년 동안 모유 수유를 하다



모유 수유에 대해서 출산 전에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기들이 태어나면 모유를 잠깐 먹고 대부분 분유로 바로 넘어간다고만 생각했었다. 나도 어렸을 적 모유보다는 분유를 위주로 키워졌고,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신문, 방송에서 모유 수유가 좋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내 머리 속에 저장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출산 직전에야 비로소 모유 수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내: 자기는 어렸을 때 모유를 많이 드셨나요?
나: 음.. 모.. 모유요?? .... 사실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이 안 나요. 그때가 벌서 39년 전인데요.. 내가 천재도 아니고... 당연히 기억 못 하죠.
아내: 한 대 맞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퍽. 등짝 때리는 소리)
나: 아야. 아프네. 하하하. 장난이에요. 내가 어머니에게 듣기로는 어렸을 때, 모유 수유는 잠깐 하고 분유 위주로 먹고 자랐다고 들었어요. 나뿐만 아니고 동생도 그렇다고 하네요.
아내: 아 짧게 드셨구나. 우리 엄마는 나는 1년 정도 길게 하고, 동생은 거의 못했데요. 그때 상황이 좀 좋지 않아서..
나: 그렇구나. 이제 당근이 나오면 모유 수유를 좀 해야겠네요? 분유도 좀 사놔야 하나?
아내: 내가 모유 수유를 최대한 오래 하려고요!


아내는 모유 수유를 최대한 오래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아마도 임신 초기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모유 수유는 무엇보다 아기에게 좋다고 한다. 엄마에게 적정한 영양분을 공급받고, 면역력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알러지 같은 것에도 방어기제로 작동한다고 한다. 또한 엄마 본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데, 산후 회복을 빠르게 하고 아이와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게 되며,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보들은 다 아내가 나에게 알려준 정보들이다. 아내는 벌써부터 출산 후 모유 수유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일이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아기가 배가 고프면 아내가 얼른 준비해서 먹이면 되니까 편리하고 수월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마음의 준비고 하지 않았고, 그냥 출산 후 바로 모유 수유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막상 직접 아내가 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보고 나니 생각보다 남편이 도와줘야 할 것도 많았다.


나:  당근이 울어요. 배고픈가 봐. 얼른 모유 주자.
아내: 네네 얼른 주세요. 지금 주고 나면 아마 새벽에 줘야 할 것 같아요.
나: 그래야죠. 새벽에는 자기가 혼자 할 수 있나요?
아내: 자기야. 혼자 할 수 있긴 한데, 그래도 자기가 도와주면 좀 더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벽에 아기 깨서 먹고 나면 안 잘 때가 많아요. 좀 도와주세요.
나: 아 그래요. 그럼 앞으로 나도 좀 일어나서 도와줄게요.


새벽 모유 수유할 때마다 같이 일어나서 수유를 했다. 아이가 깨는 시간도 있으니 같이 일어나 수유 자세를 잡아주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당근이가 울면 얼른 일어나 안고 재웠다. 1-2주 정도 지나니 서서히 익숙해졌다.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바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거의 군대 기상나팔에 반응하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당근이에게 갔다. 잠에 취해 몇 번 넘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모유 수유와 아기 재우기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참 피곤했다. 그래도 그 일련의 과정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최대한 모유 수유를 길게 하고 싶어 했다. WHO는 권장하는 모유 수유 기간을 2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도 모유 수유를 2년 동안 할 계획이라고 했다. 적지 않게 당황한 나는 아내를 한동안 설득하려고 했었다. 정말 모유가 좋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새벽 수유를 오래 해야 된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있었다.  그래서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 먹이거나, 몇 개월만 모유를 먹이고 분유로 바꾸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런 제안도 아내에게 했었다.


나: 모유 수유는 이제 곧 끊어야겠죠? 자기 일도 해야 되고...
아내: 무슨 소리세요? 나 2년 동안 꽉 채워서 할 거예요. WHO에서 2년 동안 하는 걸 권장해요. 모유 수유가 아기에게 얼마나 좋은데요!
나: 엥? 2년이요? 너무 길다. WHO에서 그렇게 오래 권장한다고요? 찾아봐야겠네.. 진짠가..
아내: 진짜예요. 찾아보세요.
나: 아니, 그래도 자기가 이제 일도 해야 되고 중간중간 어렵잖아요.
아내: 일해도 모유 짜는 기계 사서 미리 저장도 좀 해두면 돼요. 밀봉 팩에 넣어서 냉동 보관했다. 살짝 녹여 온도 맞춰서 먹으면 돼요.
나: 어이쿠 복잡한데.. 그럼 혹시 분유와 모유 번갈아 먹는 건 어때요? 아니면 기간을 좀 줄여서 아예 분유로 바꾸면요? 요즘 분유도 잘 나온데요.
아내: 자기가 귀찮아서 그러죠? 어차피 수유는 제가 하는데요~ 저 꼭 2년 채울 거예요. 일하거나 출장 가도 가능하면 할 거예요. 어쩔 수 없으면 분유 스틱으로 된 거 사놓고 그거 타 주면 돼요.


아내는 모유가 좀 많이 나오는 편이어서, 자주 모유 수유를 했었는데 낮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밤에는 모유가 꽉 차서 모유를 짜서 저장을 해둬야 했다. 그래서 새벽에 당근이가 깨지 않으면 둘만 살짝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 모유를 짰다. 처음엔 수동 유축기를 이용해 짜서 30분 이상 걸렸지만 중간에 자동 유축기를 구입해서 시간을 조금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모유까지 짜서 팩에 넣어 냉동에 넣고 나면 잠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해졌다.


그래도 그렇게 짜서 보관해 둔 모유는 낮에 유용하게 쓰였다. 아내가 출장 갔을 때나 외부 회의로 늦을 때 그걸 녹여 35도 정도의 적정 온도로 데워 당근이에게 줬다. 아내는 3개월 정도 휴직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미팅이나 출장을 갈 때 유축기를 가져가 꽉 찬 모유를 주기적으로 짜내야 했다. 모유를 짜내지 않으면 그 유방에 부담을 주어 유선염이 생길 수 있다. 아내도 어느 순간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유방이 딱딱하게 뭉쳐서 유선염 직전까지 갔던 것이었다. 다행히 아주 심한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무척 아프다는 아내의 말에 많이 걱정했었다.




당근이의 개월 수가 더해가면서 이빨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는 당근이가 유두를 깨물기도 해서 약간 찢어진 적도 있다. 다행히 몇 번 그러면 안된다고 이야기해서 그러지 않았지만 아내는 꽤 아파했다. 당근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잠을 잘 안 잘 때, 아플 때 모유 수유를 하면 신기하게 안정이 되었다. 그때마다 '이게 엄마  모유의 힘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참 신기해했었다. 모유 수유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면서 수유 횟수는 점점 줄어든다. 당근이가 이유식,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는 하루에 몇 번 안 먹는다. 그리고 모유도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그래도 모유 수유 시간이 되면 당근이가 즐겁게 뛰어가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꽤 고생했지만 그렇게 아내는 원하는 2년을 채웠다.  아내는 2년 동안의 모유 수유를 채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당근이는 지금 모유 먹는 방법을 잊어버렸지만, 나와 아내의 머리 속에는 그 수유 과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부모로서 모유 수유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아기도 모유 알러지나 거부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이유식이나 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에도 모유 수유를 병행하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2년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요즘 분유들이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모유를 대체해서 먹여도 특별히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무조건 모유가 좋다고 모유를 고수하기보다는 모유 수유를 오랜 기간 하기 위한 주변 조건들이 좋은지를 먼저 살피고, 주변 사람과 같이 논의하여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모유를 선택하든, 분유를 선택하든 부모들의 마음이 편하고 아기가 문제없다면 어떤 방법이든 괜찮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2년의 모유 수유 기간 동안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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