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담는 방법

by 레빗구미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유년기라고 하면 생후 1년~6년 사이를 일컫는 말인데, 그 사이의 일들을 추억하는 사람도 많다. 각자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짓기도하고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떠올릴 장면들이 별로 없다. 아주 잠깐의 기억만 있을 뿐 유년기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단기 기억으로 입력한 정보들 중 일부만 장기 기억에 저장한다. 이 저장하는 패턴은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보가 선택적으로 저장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주 어린 시절까지 기억하는 반면, 그 반대의 사람은 좀 더 큰 이후부터 기억하기도 한다.


나는 전형적인 후자다. 유년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 왜 없는지는 모르겠다. 부모님이 필름 카메라로 찍어 인화한 사진들이 모여있는 사진첩에는 유년기 시절의 사진이 참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 내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은 거의 없다. 그때 나는 부모님과 행복한 추억이 많이 없었던 걸까. 그때의 기억 대신 더 중요하게 저장할 정보들이 있었을까.


너 유치원 때부터 길도 잘 찾고 엄청 잘 돌아다녔어. 정말 신나게 다녔는데. 아직도 그거 생각하면 신기해



어머니는 내 유년기 시절 이야기를 하실 때, 미소를 지으신다. 그때 내가 어땠는지, 무엇을 잘했는지, 뭘 좋아했는지를 주르륵 늘어놓으신다. 사실 그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는 없다. 그저 어머니의 말들과 사진으로 머릿속으로 그려 볼 뿐이다. 왜 나에겐 그 기억들이 없을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때의 기억은 나의 뇌 어디에도 저장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나의 머릿속에서는 초등학교 이후의 정보들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입학 즈음이었던 것 같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아버지가 뒤에서 잡아주시던 모습, 처음 학교에 어머니 손을 잡고 가던 모습, 동생과 같이 뛰어다니며 놀던 모습 등 다양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도 있고, 혼나서 속상했던 모습도 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주 울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혼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머리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기억들은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뚜렷해지고 종류도 다양해진다. 결국 우리는 그 기억들 가운데서도 필요 없는 정보들은 버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자신이 인지하지는 못하는 짧은 순간에 그 선택은 자동으로 반영되어 버린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들을 저장장치에 저장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몇 년 후 저장장치 안의 사진들을 볼 때면 그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큰 용량의 하드 드라이브에 여러 가지 정보들을 담아둔다. 그러면 담고 싶은 모든 장면들이 하나하나 저장된다.


5년 전, 내 추억보기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추억을 상기시켜줄 때가 있다. 내가 과거에 올린 포스트와 동일한 날짜가 되면 그때의 추억이라며 나에게 그 날 사진이나 글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하면 다시 공유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지금 시대는 많은 기억들이 대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 저장하는 시대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세대에는 그 모든 추억들을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저장된 것을 보며 즐길지 모른다. 과거 부모님 세대가 사진으로 추억을 남겼듯이 우리도 다양한 매체에 지금의 추억을 기록해둔다.


유년기 시절의 추억이 기억되지 않아도, 그 이후의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 이후에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이미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걸 떠올리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만약 더 많은 장면을 기억하고 싶다면, 그 순간들을 카메라로 담아 우리의 머릿속이 아닌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저장해 두면 된다. 그럼 언제든 차 한잔 마시며 떠올려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전의 추억이 없으면 어떤가. 지금 이 순간부터 담아두고 싶은 추억을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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