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가득한 영화
시계태엽오렌지.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이 영화를 뒤늦게 보게 되었다. 시계태엽 오렌지에는 다채로운 색감이 있었고, 다채로운 메세지가 있었다. 보는 동안 흥미로웠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준다. 이 영화가 1971년 작이라는게 참 놀랍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이 기술이 발전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별로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어느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사회에 대한 성찰과 고민은 어느 정도 비슷한 교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인공이 악동으로서 자유로운 범행을 하는 부분과 개과천선 실험에 자원하여 괴로움을 겪다가 회복되는 부분, 이렇게 두 부분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알렉스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알렉스는 말 그대로 마약, 폭행, 강간을 일삼는 악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스가 감옥에 들어가서 어느정도 조용히 생활하는 부분에서 부터는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가 개과천선 프로그램인 '루드비코' 실험에 자원하게 되면서 부터는 그에게 측은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그는 실험에 자원하여 폭행, 강간 등 도덕적으로 좋지않은 행동이나 생각을 하게 되면 구토나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그는 사회로 돌아와 예전 자기가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무시당한다. 언뜻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감옥의 교화기능을 떠올리게 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감옥이라는 곳은 교화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만 출소 후 개개인의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많은 영화에서도 보여지는 부분이며 특히 쇼생크 탈출(1994)에서 비슷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살에 이르게 되는지를 잘 봐왔다. 비록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 되겠지만 대부분은 알렉스 처럼 고통 받을 심산이 크다. 어쨌거나 알렉스가 조롱과 고통을 받는 장면이 일부분 통쾌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는 범죄자 였으니까.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하는 범죄자
하지만 알렉스는 부모도 잃고 친구도 잃고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모두 잃어 버린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적 도구가 되어버린다. 과거 자기가 강간했던 부인의 집에 자기도 모르게 찾아간 알렉스는 죽은 부인의 남편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남편은 알렉스를 자살하게 하여 정부의 정치세력과 맞서는데 이용하려고 한다. 알렉스는 이때부터 철저하게 정치적 도구가 된다. 정작 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눈앞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마치 현대사회의 우민(愚民)과 같다. 정치세력들은 그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만 국민들은 자신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어쩌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악랄한 거라고 할 수 있다. 대중 민주주의는 원래 그런 걸까. 우민들을 이끄는 정치인이 아니라 우민을 이용하는 정치인 이라니... 이런 것은 현재 시점에서도 유용하게 취해질 수 있는 논리라는 점이 크게 와닿는 면이 있다.
이용하든 어떠하든 정치인은 목적을 달성하고 대중들의 목적도 일부 이루어진다. 반면 영화 속 알렉스는 결국 회복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여론이 악화되자 루드비코 실험을 없애고 정부의 장관이 직접 알렉스를 찾아와 사과한다. 그 와중에도 알렉스는 야한 상상을 하며 자기의 회복을 즐기고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 졌다. 과연 알렉스를 회복 시켜도 되는 걸까. 알렉스는 개과천선한걸까.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내가 품고 있는 동정심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알렉스는 자유롭게 살다가 감옥에서 응당한 처분을 받고 빨리 출소하기 위해 실험에 자원하지만 결국 사회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알렉스>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혼란이 왔다. 첫번째로 주인공에 대한 측은감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 두 번째로 과연 인간의 자유를 어디 까지 보장해줘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내 머리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생각해 봤을 때 알렉스는 절대 측은감을 느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 자신은 별로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비록 그가 감옥에서 얌전히 생활하였다고 해도 그건 단지 감옥에서 빨리 나갈 방법을 찾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출소 후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부분에서는 측은감이들만 했다. 그 자신도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으며 그런 일을 늘상 겪고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써 가능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자유란 무엇일까. 인간은 자유를 어디까지 누려야 만족할까. 모두가 만족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알렉스는 비록 자유를 찾은 듯 보이지만 영화 이후의 자유가 과연 어디까지 일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처럼 적극적 자유일 수도 있고 자기절제를 바탕으로 하는 소극적 자유일 수도 있다. 개인의 적극적 자유와 한도초과된 자유는 결국 법과 국가가 판단하는 것 같다. 물론 공론화 과정을 거친 용인된 판단이겠지. 결국엔 현대 사회에서는 적극적 자유는 실현될 가능성이 낮은 것 같다. 비록 애매하긴 하지만.
시계태엽 오렌지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적 재미도 있으며 화면색감의 현대적인 감각에 놀라게 된다. 초반의 극악무도한 장면만 지나가면 잔인한 장면도 별로 없다. 누구나 보고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하나에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넣을 수 있다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참 기발하고 애매하게 만든 영화라고 할까. 1970년대의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고, 해결이 안되었다는 건, 여전히 정치와 대중과의 관계가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