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나와 아내의 가장 큰 바람은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거였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큰 성공보다는 삶 자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당근이는 걷는 게 좀 늦었다. 평균보다 늦었지만 나와 아내는 서두르지 않았다. 당근이를 채근하지 않고 그저 때를 기다렸다. 어쩌면 초보 부모로서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나: 돌이 다 되었는데 아직 당근이가 걸으려고 하지 않네요.
아내: 자기가 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 곧 하겠죠~
나: 그래도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너무 늦는 거 같아서요..
아내: 우리 엄마도 걱정하긴 하는데요. 때가 되면 다 걸을 거예요. 보니까 다른 친구 아이들도 걷기 시작한 게 다 다르더라고요.
나: 그래요? 그럼 좀 늦어도 괜찮은가?
아내: 자기가 생각해봐요. 사람이 태어나서 몇 개월을 빼고는 다 걸어 다니잖아요. 걷는 시간이 훨씬 많은데요. 기어 다니는 것도 잠깐이에요. 0.0000000001% 도 안된다고요.
나: 아.. 그렇겠죠.. 좀 더 기다려 보자.
사실 양쪽 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었다. 보통 이때 되면 다 걷는 거라며, 당근이가 빨리 걸어야 한다고 아이에게 걷는 걸 유도하시기도 하셨다. 그만큼 걱정이 앞서있었다.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당근이가 출산 후 6개월 정도부터 뛰는 걸 좋아했다는 거다. 앞으로 뛰는 게 아니고, 제자리 뛰기였다. 다리 운동하라고 양 옆구리를 잡고 살짝 세워 놓으면 계속 점프를 뛰었다. 물론 잡아주는 사람이 대부분의 무게를 지탱했지만 그래도 한참 잡고 있으면 힘들었다.
당근이는 지칠 줄 몰랐고, 좀 일찍부터 그렇게 뛰어 댔으니 당연히 빨리 걸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 뛰면서 다리 근육이 더 발달할 테니. 내가 퇴근하고 오는 저녁 시간이면 가족이 다 모인 가운데서 당근이가 뛰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쳐줬는데, 어떤 날은 깔깔대며 정말 잠들기 직전까지 뛰었다. 그 모습에 나와 아내는 완전히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뛰는 당근이 보다 돌아가며 잡아주는 우리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아내: 아 팔 아프다. 우리 보물이 참 잘 뛰네요.
나: 보물?? 아 당근이요. 하하하. 정말 잘 뛰어요. 이제 높이 들어주면 그걸 또 좋아하네요.
아내: 아무래도 당근이는 엄청 활발할 것 같아요.
나: 그래요? 활발하면 좋겠다. 신나게 뛰어놀면 더 밝게 자라지 않을까? 이제 금방 걷겠는데요.
아내: 또. 또. 또. 자기가 왜 이렇게 급해요? 언젠가는 금방 걸어요. 우리가 급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나: 어.. 알았어요. 얘가 하도 잘 뛰니까....
아내: 김 차장님... 그만..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마음이 급해지면 내 회사 직급으로 불렀다. 그렇게 하니 왠지 부모 상사가 된 느낌도 들었다. 가벼운 농담과 같은 호칭이었지만 덕분에 내 조급함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당근이는 그 뒤로 몇 개월을 계속 그렇게 뛰었다. 드디어 걷기 시작한 순간, 당근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집안 탐험을 시작했다. 걷기를 시도하게 된 건 정말 갑작스러운 순간이었다. 가족 모두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새나가 의자를 잡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부터 끈질기게 두 발로 일어나는 연습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이 익숙해지면 당근이가 당연히 여기저기를 뛰어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지날 때까지 당근이는 횡으로 뛰기보다는 제자리에서 뛰는 걸 더 선호했다. 그래서 침대 위에서 뛰고 거실 매트 위에서 뛰고 소파 위에서 뛰었다. 늘 그 옆에는 아내나 내가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지키고 서 있었다.
나: 당근이가 정말 점프 뛰는 걸 좋아해요.
아내: 왜 이렇게 좋아하죠? 나는 운동 안 좋아하는데...
나: 내가 농구하는 거 엄청 좋아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녀석 에너지가 엄청나요. 계속 뛰어~
아내: 자기를 닮아서 그런가 봐요~ 완전 잘 뛰어요. 유전자의 힘!! 눈썹은 완전 복사 붙여 넣기인데..
나: 뛰어노는 거 좋아할 것 같다. 집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내가 저 앞에 있는 트램펄린 카페에 데려가 볼까요?
아내: 오! 굳 아이디어. 한 번 데려가 봐요.
번쩍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트램펄린 카페에 가면 당근이가 정말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는 집에서 쉬라고 하고 당근이를 데리고 집 앞에 작은 트램펄린 키즈카페에 갔다. 당근이는 처음에 어리둥절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가 퐁퐁 점프를 뛰니 따라서 같이 뛴다. 처음에 어색했던 점프도 날이 갈수록 숙련되었다. 거의 매주 그곳에 방문해서 잡기 놀이도 하고, 점프도 뛰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
당근이의 점프 사랑은 자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유튜브로 노래를 들을 때, 계속 반복해서 듣는 노래가 'Five little monkeys jumping on the bed'였다. 그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며 매트에서 원숭이가 넘어지는 흉내를 냈다. 아무래도 본인이 원숭이 띠 인걸 아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점프를 좋아하고 원숭이를 따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 헉헉. 힘들다. 당근아 이제 자장 할 시간.
당근이: 아니, 한 번 더, 한 번 더
나: (five little monkeys jumping on the bed~~♪♪♪♪)
자기 전이면 늘 내가 노래를 부르고 아내와 당근이가 같이 점프를 뛴다. 불 끄기 전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야 겨우 잠들 수가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같이 뛰면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안에 웃음이 보인다. 아이의 행복이 보인다. 이렇게 작은 것으로도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그 작은 행복을 줄 수 있을 때 주고 싶다. 지금은 아이에게 그런 것을 해줄 때 아이가 좋아하고, 부모인 나와 아내도 행복하다. 아이가 점프를 사랑하면 부모도 점프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부모가 해 주는 걸 찾는 것이 단순하다. 아니 이렇게 단순하다고 느끼는 건, 적극적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전히 당근이는 점프를 사랑한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여전히 나와 아내도 아이와 뛰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그렇게 서로에게 행복을 준다. (five little monkeys jumping on the b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