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내는 출장 중

by 레빗구미


아내는 중국계열의 무역회사에 근무한다. 기본적으로 메일이나 전화로 대부분의 업무를 진행하지만 출장을 갈 일이 많은 편이다. 중국 쪽에도 종종 가고, 한국의 남부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경우도 많다. 이동이 잦은 업무이다 보니, 출장 일정은 무척이나 빡빡한 편이다. 그래도 아내는 출장을 가고 싶어 한다. 공장과 업무를 많이 해야 하는 아내 회사의 특성상 약간은 험한 공장 출장임에도 가면 그 업계에 관해 많이 배우게 된다고 한다.


아내: 자기야 다음 주 또 출장이 잡혔어요.
나: 또요? 어디로 가요?
아내: 이번엔 북경으로 갔다가 그 옆 도시로 버스 타고 가야 해요.
나: 어이쿠 힘들겠네. 얼마나 가요?
아내: 3일이에요. 자기가 괜찮겠어요?
나: 음.. 일단 내가 회사 일정 확인해보고. 가능하면 2일은 연차 써야죠. 하루는 어머니께 부탁을 좀 드려야겠어요.
아내: 그래요.. 그래도 가면 배울게 많아서 꼭 갔으면 좋겠어요.
나: 알겠어요. 일단 내가 회사에 먼저 이야기해볼게요.


기본적으로 배우려는 태도가 몸에 뿌리 박혀있는 아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다. 나보다는 훨씬 더 일 욕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처음 리서치 회사에서 근무할 때, 다양한 한국 고객들을 만나고 야근하면서 힘들게 일을 배웠는데 그것 때문에 한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업무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부분을 많이 배웠다고 늘 이야기한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리서치 회사에 들어와서 야근과 한국적 분위기에 잔뜩 질려 퇴사하긴 했지만 거기서 뭔가 배웠던 점을 찾는 아내의 성향은 천성인 듯하다.


아내가 임신 중일 때, 홍콩으로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당근이가 뱃속에 머무른 지 7개월째 되는 달이었다. 거의 출산 3개월 전이라 출장을 망설였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하고 아내도 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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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 출장은 취소하는 게 좋겠어요.
아내: 왜요? 이번에 내가 꼭 가야 해요. 지난번 출장도 못 간다고 했는데요..
나: 그래도 이제 곧 출산인데 조심해야죠. 자기랑 당근이가 힘들까 봐 걱정이에요.
아내: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최대한 편하게 가면 된다고요.
나: 음......
아내: 그렇게 불안해요? 그럼 같이 갈래요? 어차피 주말이니까. 자기가 휴가 쓸 필요 없어요. 대신 자기 비행기 비용하고 호텔비는 개인 비용으로 해야죠.
나: 그럴까요? 같이 가면 좀 덜 불안하죠. 그렇게 해보자!!


결국 출장을 같이 갔다. 비행기 타고 3시간 반. 큰 문제없이 도착했는데 입국 심사가 길어졌다. 홍콩은 원정출산을 많이 오기 때문에 임산부는 심사가 매우 엄격했고 서류도 꼼꼼히 적고 가야 한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따로 불러서 내부의 사무실로 가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고, 사업 미팅이라는 것을 확실히 한 후 나올 수 있었다. 호텔로 갔다가 아내가 미팅하는 동안 나는 외부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 기간 내내 내 마음은 불안했다. 게다가 돌아오는 비행기는 밤 11시 반 비행기였다. 회사에서 예약했기 때문에 시간을 바꿀 수 없었는데, 아내는 그때서야 힘들었는지, 공항 게이트 앞 의자에 누워 잠시 잠을 잤다. 꽤 쌀쌀했던 내부여서 나는 옷을 벗어 아내의 손과 발, 배를 따뜻하게 덮어줬다.


무사히 돌아오긴 했지만, 아내가 출장 가면 늘 좀 불안한 느낌이 있다. 아내가 너무나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데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기 못해서다. 끼니를 잘 못 챙겨 먹거나 잠을 많이 못 자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온 아내의 표정은 늘 상글벙글하다. 참 내속도 모르고 말이다.


아내: 자기가 잘 있었어요?
나: 그럼요. 자기는 괜찮았어요?
아내: 이번 출장은 업무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사장님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나: 그럼 다행이네.
아내: 당근이는 괜찮았어요?
나: 당근이가 나랑 안 자려고 해서 힘들었어요. 자꾸 마미 어디 갔냐고요.. 결국 할머니랑 잤네요..
아내: 그래요? 자기가 당근이랑 좀 더 많이 놀아야겠어요.


문제는 아이가 생긴 이후,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재택근무를 하는 아내가 아이와 늘 같이 있기 때문에 당근이는 아내와 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먹을 때도, 잘 때도 늘 마미가 있어야 편하게 잤다. 그런데 어느 날 마미가 출장을 가서 밤에는 없으니 마미를 찾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출장 가기 일주일 전부터 아내가 언제 출장 가고 누구와 있어야 되는지를 계속 반복했다. 그러면 출장 후에도 당근이가 마미를 찾더라도 울거나 오래 찾지 않는다.


하지만 샤워를 시킬 때나 재울 때는 다르다. 아무래도 아빠인 내가 하는 것이 어색한지 많이 거부를 했었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할머니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출장이 몇 번 반복되고 좀 지나고 나니 당근이도 내가 하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밤에 잠을 잘 때도 잘 누워서 같이 잔다. 꼭 이야기를 하나 해달라고 한다. 아내에게 하는 것처럼.


오늘도 아내는 출장을 갔다. 대전에 있는 호텔 어딘가에 아내가 화장을 지우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당근이는 아침 9시에 집에서 나가 간단한 간식을 먹고 키즈카페에 가서 2시간을 놀았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잠시 카페에서 자장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실내 스포츠를 한참을 했다. 저녁에 샤워를 시키고 잠을 잘 때까지 모든 것을 다 해냈다.


어쩌면 아이가 불편해하는 활동들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아빠인 나는 아이에게 편하게 해 주고 잘해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아이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인내를 가지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내가 출장을 갔을 때, 즉 아이의 엄마가 없을 때가 아주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아이와 외부 활동을 하고, 실내에서 놀고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아이가 아빠를 의지하고 아빠 어깨에 기대어 잠들게 된다. 오늘도 아이와 잘 놀고 재웠지만 출장 간 아내가 빨리 돌아오길 소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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