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맞는 순간은 무엇인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일출을 보러 가거나 특별한 장소에서 숫자가 바뀌는 그 순간을 축하하고 즐긴다. 나는 언제부터 해가 바뀌는 것을 즐겼을까. 아마도 수능이 끝나고 보냈던 해의 연말이었던 것 같다. 긴 시간을 시험 준비로 보냈던 나와 친구들은 그 해 12월 31일에 보신각에서 종이 울리는 것을 보며 새로운 해를 맞았다. 그때가 아마도 완전한 해방감과 기대감이 공존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나: 자기는 그동안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뭐 했어요?
아내: 특별하게 한 거는 없는데요. 그냥 집에서 있었죠.
나: 보통 밤 12시 전에 카운트 다운도 하고 그러잖아요. 술도 먹고, 해 뜨는 것도 보고.
아내: 해 뜨는 걸 왜 봐요? 그 추운 새벽에 나간다고요? 그러면 안돼요. 피부가 망가져요. 일찍 자고 7시간 이상은 자야 해요.
나: 엄.... 그... 그런가요? 나는 해 뜨는 것도 보러 가고 친구들하고 술 마시며 카운트 다운도 하고 그랬는데...
아내: 그러면 몸이 망가져요. No~No~
결혼 전 아내는 새해가 바뀐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물론 아예 그 순간을 즐기지 않는 건 아니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신정보다는 구정이 더 의미가 크다. 연휴가 길기도 하고 친척들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눈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신정에는 뭘 할까? 한국과 같다. 별거 없고, 젊은 사람들은 숫자가 바뀌는 순간을 즐기기 위해 다 같이 모여 그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아내는 그동안 새로운 해가 바뀔 때, 집에서 가족들과 보냈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씻고 10시나 11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새로운 해의 아침이 되면 가족, 친구들과 문자로 인사를 나눈다. "新年快乐! (신니엔콰이러!) 希望大家健健康康顺顺利利哦~(시왕다쟈지엔지엔캉캉순순리리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 모두 건강하고 순조롭길 빕니다." 이런 인사말들을 한참을 나누면서 한 해를 보낸다.
나: 새해가 되었으니 떡국을 먹어요.
아내: 떡국 먹기 싫어요.
나: 왜요? 싫어해요?
아내: 아니오. 한 살 더 먹는 다면서요. 나 이제 늙었어 ㅠㅠ
나: 하하하. 뭔 소리예요. 한국 적응을 다 하고 한국사람 다 되었네요. 가족들한테 인사나 해요~
아내: 자기도 보내요~ 이렇게 쓰면 돼요. (중국어로 알려준다)
결혼하고는 서로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복을 나눈다. 다들 웃는 이모티콘을 쓰고 신년 메시지를 적어 서로의 새해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그런 좋은 말들을 주고받는 훈훈한 새해다.
아이가 태어난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 해가 바뀌어 한국 나이로 4살이 되었지만, 아직은 새해가 뭔지 전혀 모를 나이다. 아이가 새해를 모르는 것처럼 당근이가 태어난 후에 '새해'라는 순간은 우리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첫 해엔 밤중 수유와 기저귀 갈아주기를 하며 밤을 보냈고, 두 번째 해엔 밖에서 조각 케이크를 먹는 것으로 기분을 냈다. 올해도 뭔가 특별한 것 없이 보냈다. 새 집으로 이사를 했고, 이삿날 열이 끓어오르는 당근 이를 간호하느라 지친 우리는 연말과 새해를 조용하게 보냈다.
새해 아침에 일어나 미리 사둔 떡국 떡을 꺼내 떡국을 끓여서 당근이 와 아내와 나눠 먹는다. 떡국이 아닌 한 살 더 먹는 아침 식사, 그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된다. 아이 밥을 먹이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 외출하여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놀러 가고, 다시 식사를 챙겨주고, 재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장난감을 가지고 같이 놀고, 샤워시키고. 끝없이 이어지는 이 일을 새해 첫날에도 반복했다.
어쩌면 신년을 맞는 좋은 마음가짐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하게 맞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첫 날을 보내고 나면,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육아에 파묻혀있을 수밖에 없는 부모들은 신년이라는 이벤트를 오롯이 즐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아이가 자고 난 이후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작고 소박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아내: 이제 신년인데, 자기의 소원은 뭐예요?
나: 우리 가족 안 아픈 거요. 그리고 낮잠 좀 푹 자보는 거.
아내: 주말에 당근이랑 외출했을 때, 당근이 잠들었을 때 자기도 옆에서 같이 엎드려 자요. 하하.
나: 어휴.. 얼굴에 자국이 깊게 생겨요. 심각하게. 자기 소원은 뭐예요.
아내: 돈 많이 벌기~~
나: 그래요. 돈도 많이 벌자~~
작은 잔에 와인을 조금 따른다. 창밖을 보고 마주 앉아 건배를 하고 드디어 만난 새해와 인사한다. 그리고 올해에도 이어질 육아를 상상한다. 당근이는 어린이 집에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새로운 장소에도 많이 갈 것이다. 신나 하는 당근이 뒤에는 나와 아내가 서있다. 안아주고, 손 잡고, 때로는 큰 목소리로 훈육을 하고 펑펑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육체적으로 많이 지치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우리의 눈을 보며 웃을 때, 그 힘듦을 잠깐 이나마 잊는다. 그런 상상으로 하며 새해를 맞는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