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타지에서 외로움을 견딘 아내에게 주는 휴식

by 레빗구미


새벽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아직 깜깜한 하늘, 동쪽 끝에도 해가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와 아내는 분주히 세수를 하고 짐을 챙긴다. 북적대는 그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는지 당근이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전등이 밝은지 연신 눈을 찡그리며 비벼댄다. 그리고 시리얼을 찾는다. 결국 내가 당근이 옆에서 당근이를 달래며 진정시킨다.


나: 당근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도 되는데...
당근이: 일어났는데 마미가 없어, 나왔어요. 콘프레이크 주세요. 콘프레이크 먹고 싶어 해!
나: 알았어요. 있다가 같이 먹자. 지금 마미가 바쁘니까 조금만 있다가 다 같이 먹으면 어때요? 오늘 당근이 어디 가지?
당근이: 선전. 지금 콘프레이크 먹을 수 있어요? 지금 먹고 싶어 해! (울먹)
나: 어휴. 그래요. 지금 조금 줄게요. 근데 조금만 먹고 있다가 마미랑 아빠랑 같이 먹어요~
당근이: 응. 네~


겨우겨우 당근이를 달래도 나갈 준비를 마저 한다. 트렁크에 옷과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지퍼를 잠근다. 아내는 다시 한번 꼼꼼히 살핀다. 빠진 것은 없는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앉아서 아주 간단히 식사를 한다. 시간이 촉박해 겨우 사과 한쪽과 간단한 시리얼이 전부다.


집을 나서는 길이 차갑다. 부쩍 추워진 날씨인 데다 시간이 새벽 6시 전이니 더욱 얼음장 같은 바람이 분다. 짐이 많아 택시를 불러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텅 빈 새벽의 도로는 마치 광랜의 속도처럼 빠르게 지나갈 수 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는 검은 거리를 스치듯 뒤로 한다. 그런데 차 안에서 당근이가 운다.


당근이: 으아앙~~
아내: 왜 그래요? 당근아. 말해봐 왜?
나: 이거 멀미인 거 같아요. 자기가 비닐봉지 좀 챙겼죠?
아내: 나는 안 챙겼는데, 자기가 어젯밤에 챙겼잖아요!!
나: 맞다. 어디 놨지?
당근이: 마미 나 속이 불편해요 으앙~~
나: 아 여깄다. 여기여기.


다행히 먹은 게 별로 없었던 그 시간, 당근이는 비닐봉지를 채 준비하기 전에 아내의 옷에 조금 천사의 물질을 뱉어냈다. 특유의 냄새가 났고, 당근이의 옷에도 꽤 묻어났다. 공항에 도착하여 화장실을 가 옷을 갈아입고 좀 닦아 냈다. 그리고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붙인다. 출국 심사를 하기 전, 그제야 배가 고파진 우리는 근처 식당가로 가 허기진 배를 채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당근이와의 잡기 놀이, 내가 빠를까, 당근이가 빠를까. 한참 잡기 놀이를 사랑하는 시기인 당근이를 위해 적당한 속도로 뛰고 걷기를 반복한다. 당근이는 배꼽이 빠지게 웃으며 즐거워한다. 마치 그 순간의 즐거움이 모두 자기 것인 양 엄청난 웃음을 쏟아낸다.


이제 출국 심사를 받으러 갈 시간이다. 출국 심사 게이트로 들어간다. 아니 나는 가지 않는다. 저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 들어가는 아내와 당근이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아내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내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소중한 두 사람이 게이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을 본 후 발걸음을 돌리며 아쉬움을 느낀다. 터덜터덜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나는 3주 동안 혼자 보내야 한다. 아내와 당근이는 설 연휴를 보내고 그다음 주에나 한국에 돌아온다. 내가 설 연휴에 선전에 가긴 하지만 꽤 나 오랜 기간 다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늘 이런 일은 반복된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이렇게 떨어져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나: 아내와 당근이가 외가댁에 갔어. 한 3주 정도는 혼자 있어야 해.
친구: 그래? 완전 자유네~ 좋겠다!
나: 어... 음.. 처음엔 좋은데 좀 지나면 외로워~
친구: 그래도 그동안 못했던 거 할 수 있잖아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완전 신나겠는데~
나: 그런가... 하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를 즐겁게 누리라고 말한다. 맞다. 실제로 해방감과 자유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식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아는 친구를 만나고 4캔 만원 짜리 맥주 팩을 사와 집에서 마시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주말엔 하루 두 편씩 영화를 예매해 놓고 영화를 보고 돌아와 낮 시간에 리뷰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만약 당근이가 있다면 누릴 수 없는 낮 시간의 자유다.


하지만 그런 자유로움의 끝엔 늘 고독감과 외로움이 찾아온다. 퇴근 후 텅 빈 집안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올 때, 느껴지는 집안의 썰렁함은 마치 추운 겨울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는 듯 알싸하다. 늘 집안을 가득 채웠던 당근이의 웃음소리와 짜증 소리,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혼자 밥을 해 먹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써도 결국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 파 묻힌다.


나 자신이 외로움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고 혼자 무언가 할 수 있으면 자유로운 기분이 들지만 그것에 따라오는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를 테면 혼자 영화를 볼 때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다.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볼 때면, 늘 옆에 같이 보는 사람이 재미있게 볼지를 늘 신경 쓰면서 봤다. 하지만 혼자 보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엔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며 공유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늘 그랬다. 그 외로움은 십대 시절부터 줄 곧 나를 괴롭혀 왔다. 그래서 아내와 당근이가 중국 외가댁에 갈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가족이 없을 때의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터놓고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다. 대부분은 자유로워 좋겠다는 반응이 많으니까.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반면 아내는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국제결혼을 한 다는 건 한쪽이 자신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걸 뜻한다. 우리의 결혼에서 아내가 그런 선택을 했고, 아내는 그 외로움을 묵묵히 아무 말 없이 견뎌내고 있다. 어느 날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나: 자기는 집에 안 가고 싶어요? 여기 집 말고, 선전 집.
아내: 가고 싶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엄마가 해준 밥도 먹고 싶어요.
나: 그쵸. 자기가 여기서 친구도 없고 음식도 안 맞고 힘들 것 같아요.
아내: 힘들어요. 자기가 중국에서 일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이 중국 가게요.
나: 그러게.. 자기가 언제라도 장모님 댁에 가고 싶으면 가요. 가서 쉬기도 하고 2-3주 있다가 와도 돼요. 그렇게 해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아내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나와 결혼해 나를 친구로, 연인으로, 가족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며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늘 외로울 것이다. 만약 나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다투면 아내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친정에 가고 싶어 하며 가능하면 가라고 한다. 이제는 당근이와 같이 방문하니 장모님은 더욱 좋아하신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아내 모습도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 아내는 1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이라는 외지에서 외로움을 견뎠다. 내가 견뎌야 하는 외로움은 겨우 3주, 길어야 4주다. 그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이별이다. 국제결혼을 한 이상, 이런 잠깐의 떨어짐은 필수 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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