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가족은 같이있어야 가족

by 레빗구미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은 자유롭지만, 외롭다. 밖에서 못 만났던 친구를 만나고, 모임에 나가고, 술을 마셔도 집에 오면 그 빈자리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텅 빈 집에 들어설 때, 맞는 차가운 공기, 어두운 조명, 선명하게 깨끗하게만 느껴지는 소리. 그래서 더욱 다시 만날 그 순간을 기대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3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설 연휴가 다가오기를 마음속으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주중에 못 나갔던 모임에 자유롭게 나가면서도 아내와 당근이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건 잊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출국 전날에는 짐을 챙긴다. 평소에는 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번엔 혼자만의 짐이라 간단히 끝나버린다. 짐을 챙기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든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챙긴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 차가운 새벽 공기가 나를 맞는다.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이번엔 티켓팅과 출국 수속을 나 혼자 받고 들어간다.


나: 자기야 나 이제 공항 들어왔어요. 잘 잤나요?
아내: 우린 잘 잤어요. 당근이가 아빠가 보고 싶은가 봐요. 아빠를 찾으며 울먹하네요.
나: 잊어버린 거 아니고요?
아내: 에이 잊을 리가 있어요. 당근아~~ 이리 와 봐~ 아빠야.
당근이: 아빠~ 아빠~ (전화가 끊긴다)
나: 잉? (전화를 다시 건다)
아내: 당근이가 끊어버렸네 하하하.
나: 내가 얼른 갈게요. 있다 착륙해서 문자 할게요. 걱정 말고 쉬고 있어요.


한국이 구정을 큰 연휴로 생각하는 것만큼 중국에서도 구정은 큰 연휴다. 현지 사람들은 거의 10일 가까이 휴식을 취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만큼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사람도 많다. 그중엔 나도 있다. 한국의 공항 인파만큼 중국의 공항도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이들도 그동안 못 봤던 가족을 보러 수만 킬로미터를 이동할지도 모른다.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를 이야기하면 기사는 집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준다. 중국의 내비게이션도 많이 발달해서 음성으로 주소를 이야기하면 정확히 그 지점으로 안내한다.


택시에서 내려 아내와 당근이를 보러 가는 그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기대감과 걱정이 섞인 그 감정은 그들이 내 곁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느꼈던 것이다. 다시 보면 느껴진 반가움과 내가 잊혀질 거라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그 마음은 결국 나를 가족으로 이끈다. 벨을 누르고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 그 앞에 서있던 당근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한참을 멍하니 보던 당근이가 나를 부르며 안아달라고 한다.


당근이: 아빠~ 아빠~ 아빠 이리 와봐!
나: 응 당근아 아빠 왔어. 거기 뭐 있어?
당근이:저리 요 마이~
나: 응? 뭐라구?
당근이: 저리 요 마이~~
아내: 아~ 여기 개미가 있데요. 중국말로 하는 거예요.
나: 아쿠 중국말이구나. 말이 많이 늘었네요~
당근이: 아빠 얼른 와봐. 개미 좀 봐요~
나: 그래 한 번 보자~


날 잊지 않았다. 아마도 이 느낌은 모든 기러기 아빠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음에도 나를 알아보고 같이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아마도 더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면 서서히 잊혀질 지 모른다. 아빠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 같은 느낌일 것 같은 기러기 아빠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더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중국어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빠르게 습득한 중국어들로 대화를 하고 있는 당근이를 보니 참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장모님 댁에서는 나만 한국어를 쓰는데, 나와 있을 때는 한국어를 써준다. 당근이가 배려해주는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본능적으로 되는 거겠지만. 당근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놀이터도 가고 아이들이 타는 작은 놀이기구도 타니,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만큼 나도 행복하다. 그래서 작은 초콜릿 과자를 사서 아이와 나눠 먹는다.


장모님의 신년 맞이 음식


이렇게 다시 가족을 만나 진정한 신년을 맞는다. 장모님이 해주시는 각종 중국 요리들이 내 뱃살을 더욱 늘려주고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게 한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새해를 맞는다. 한국에서 새배를 하고 돈을 받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어른들이 홍바오를 준다. 빨간 봉투에 돈을 담아 나눠 주며 서로를 축복한다. 장모님이 우리에게 주신 홍바오는 모두 당근이가 가져갔다. 다 자기 것이라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가족들 모두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올해도 이 느낌 그대로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짧은 이별의 경험을 한 후, 누군가가 떨어져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면 좋지 않나고 이야기하고 싶다. 조금 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금방 내 존재는 잊혀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가득 차버리면 그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며 감정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중에 기억되는 몇몇 순간들은 평생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는 선물이니까. 결국 가족은 같이 있어야 가족이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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