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아이에게 잊혀질 거란 두려움

by 레빗구미



그런 순간이 있다.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순간. 어릴 적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 엄마가 화를 내며 버리고 갈 거라고 말할 때, 나의 존재가 지워질 것 같은 순간의 공포감이 가득 차는 순간. 그 순간은 그 어린 시절,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사실 늘 겁에 질려 살아왔다. 세상을 볼 때, 늘 나의 존재는 작게만 보였고, 곧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 같아 보였다. 그건 어쩌면 내 안에 자리 잡은 근원적인 공포감 일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 그 고민에서는 멀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거운 고민은 늘 내 옆에 있었다. 늘 나를 만나는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에 대해 확인받아야 했다. 물론 직접 물어볼 용기는 쉽게 나지 않았다. 늘 상대방의 눈치를 보곤 했다.


나: 난 나 자신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요. 내 존재가 참 못난 것 같아요.
아내: 아닌데요. 엄청 멋있으신데요. 그리고 뭐든지 다 잘하잖아요. 다 해결하고.
나: 아니에요. 잘 보면 난 아주 잘하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늘 사람들에게 잊혀질까 무서워요. 존재감이 없긴 하잖아요.
아내: 자기가 너무 자신감이 없어요. 내가 자기를 봤잖아요.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사람이구. 세상에서 나만은 잊지 않아요.
나: 고마워요.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가 날 싫어하거나 잊어버리면 어쩌죠?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아빠가 된 후, 내 존재를 각인시키려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쨌거나 엄마라는 존재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친밀해진다. 거기에 아빠가 들어가려면 회사 출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그렇게 충분한 시간이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그 짧은 시간들에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고,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난 아이의 눈치도 보게 된 걸까. 아이가 아내와 나와 떨어져 심천에 있을 때, 오랜만에 만나면 아이의 눈치를 먼저 본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이의 표정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나와 헤어질 때 아이의 반응을 본다. 보통 나와 헤어질 때, 택시를 불러 문을 열면 아이는 먼저 타려고 한다. 나와 같이 가려는 것처럼 서두르던 아이는 주변의 만류에 다시 내려 차에 탄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 당근아, 아빠가 내일은 이제 한국으로 먼저 가야 해. 외할머니랑 마미랑 같이 잘 있을 수 있지?
당근이: 아니야. (울먹이며)같이 가고 싶어 해...
나: 아빠는 출근해야 해서 먼저 가는 거고, 당근이는 조금 더 있다가 마미랑 같이 와. 아빠가 그때 공항에 나가서 기다릴게.
당근이: 응.


아이가 같이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할 때, 왠지 내 마음엔 따뜻함이 느껴진다. 아이도 나와 같이 가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데 결국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면 다시 먼 곳에 있는 아빠라는 존재가 되고 만다. 하루에 한 번 씩 하는 영상통화를 할 때, 아이는 관심이 없고, 잠깐 화면을 보던 아이는 어디론가 화면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아이와 아내가 돌아오는 날도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오후에 공항으로 도착하는 비행기 시간에 앞서 미리 공항에 도착했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상 시뮬레이션이 반복된다. 한참을 기다리다 비행기가 착륙했다는 아내의 문자를 받고 게이트 앞에서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린다. 여러 사람들이 나간 후, 저 멀리 아이가 보인다. 자리를 옮겨 좀 더 아이가 나를 발견하기 쉬운 곳으로 이동해 나오는 그들을 빤히 본다. 나를 발견한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팔을 벌린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자동적으로 아이를 안았다.


아내: 오래 기다렸어요? 아휴, 당근이가 화장실도 못 가게 해요.
나: 왜요? 어디 아파요?
아내: 아니, 빨리 아빠 찾으러 가야 된다고요. 자기가 아빠 찾는다고요.
나: 그래요? 내가 기다린다고 이야기했어요?
아내: 그럼요. 비행기에서 계속 이야기했죠. 그래서 나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얼른 나가야 된다고요.
나: 하하하. 귀엽네.


아이가 웃으며 뛰어 내 앞에서 팔 벌리는 모습은 아마도 내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때 느낀 안도감, 그러니까 아이에게 내가 잊혀지지 않았다는 그 느낌은 날 안심시킨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아이와 시간을 보내겠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에게 잊혀질 거란 두려움은 계속 나에게 찾아올 것 같다. 어쩌면 아이는 아빠인 나라는 존재를 잊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친구처럼 같이 놀고, 걷고 뛰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나를 아이는 기억할 것이다. 그 노력만큼. 그러니 그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은 좀 놓아둬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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