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나는 오늘 아빠가 와요!

by 레빗구미


아이가 처음 태어나던 날이 아직 눈에 선하다. 오밀조밀 모든 것이 작았던 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표정 하나하나를 다 기억한다. 그렇게 작았던 아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커간다.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빨라서 가까이서 보면 모르지만, 짧게나마 떨어져 있다 보면 번개같이 빠르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가 ‘아빠’라는 말을 하고, 걷고, 뛰는 대부분의 순간에 나와 아내가 있었다.

특히 아내는 2년의 모유 수유를 하면서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으니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난 지 3년이 되어간다. 아이는 아내를 많이 찾지만, 내가 퇴근한 이후의 시간이나 주말에는 나와 노는 걸 아주 좋아한다. 아마도 평일 낮에는 아내가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서 많이 못 놀아주기 때문에 더욱 나를 반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아이를 외부에 맡길 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의 집이 있는 심천 지역에서는 아이를 3살이 지나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늘 아내는 좀 더 집에서 아이를 보고, 좀 더 큰 이후에 어린이 집에 보내길 원했다.


나: 이제 어린이 집에 좀 보내면 어떨까요? 자기가 일하느라 힘들기도 하고요.
아내: 음.. 아직 좀 더 집에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근이가 잘 적응할지도 모르겠구요. 아픈 것도 걱정이에요.
나: 당근이가 저렇게 활발하고 적극적인데 잘 적응할 거예요. 그리고 아픈 거는 어쩔 수 없어요. 친구들 만나고 외부 활동하면 감기 같은 거 잘 걸린다고 하네요.
아내: 그래서 불안해요.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나: 그래요. 웬만하면 보내고 낮 시간에 자기가 좀 편하게 일해요. 맨날 피곤해하잖아요.


꽤나 큰 논쟁이었다. 우리의 논쟁에는 문화 차이가 섞여 있었다. 한쪽이 설득되기 어려운 말들이 이어졌다. 만약 한쪽은 한국에서는 매일 치마를 입어야 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중국에서 무조건 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하면 서로 타협할 길이 없다. 무조건 각자 입고 싶은 것만 입으려 하기 때문에 쉽게 싸움으로 번져버린다. 이런 사안에는 누군가가 분명히 양보를 해야 한다.


많은 시간의 대화 속에 아내가 결국 손을 들었다. 신청 사이트에서 신청을 하고 대기를 하다 얼마 전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여러 서류 등록을 하고 준비물을 미리 챙겨놨다. 우리 부부가 정식으로 학부모가 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가 과연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되어 나와 아내는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해줬다. 나와 아내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곤조곤 반복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야기해줬었다. 특히나 아내의 출장 전에는 누구와 밥을 먹고 자야 하는지를 명확히 반복해서 이야기해줬다. 그러니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내: 당근아 너 다음 주부터 어린이집 갈 거야. 오전에 가서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놀고 오후에 집에 오는 거야~ 알았지?
당근이: 응.
나: 마미랑, 아빠랑 없어도 당근이가 잘할 수 있지? 거기 장난감도 엄청 많고 재미있어.
당근이: 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수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막상 당일이 되니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같이 가서 한 시간 정도를 머무르다 온 날부터 아이는 새로운 곳이라는 호기심에 울지도 않고 잘 논다. 괜한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이가 펑펑 울고 있는 동안, 아이는 인형과 장난감을 놀며 신나게 보냈다. 당근이는 매일 아침마다 일찍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뗴를 쓰는 통해 10분 정도는 일찍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주에 나왔다. 아내의 출장으로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하루 전에 수없이 반복해서 아이에게 이해를 시키고, 당일에 어린이집에 안고 갔다. 월요일 아침이었는데, 웬일인지 당근이가 펑펑 운다. 아마도 아빠가 회사에 출근을 안 하니 키즈카페나 놀이터에 가서 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괴성을 지르는 그 모습을 뒤로하고 얼른 어린이집을 나왔다.


밀린 업무를 집에서 처리하면서 계속 걱정이 되었다. 펑펑 울던 당근이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리플레이된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결국 아이가 잘할 수 있을지 늘 옆에서 조마조마하며 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조바심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10분 일찍 어린이집 앞에서 기다린다. 조금 기다리니 선생님이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소리가 나고 아이들 소리가 난다. 그때 당근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오늘 아빠가 와요!


오늘 마미가 없어 아빠가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데리러 온다고 했더니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엄마 보자는 소리에 자기는 아빠가 온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했다. 밖에서 그걸 듣고 있으니 알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이런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쿵 자리를 잡았다. 마치 녹음이라도 한 것처럼 계속 당근이의 목소리가 반복된다. 그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를 보고 웃으며 뛰어오던 아이의 모습도 꽤나 감동적이다.


아이는 훌쩍 자라 있다. 내가 출근하는 동안, 내가 한국에 혼자 머무르는 동안 훌쩍 자라 버린 아이는 이제 나와 아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다양한 상황을 인지한다. 그리고 자신이 떠오르는 것과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간단히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특히나 당근이는 무서운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일단 해보고 만나본다. 비록 조금씩 무서워하는 것이 생기고는 있지만. 그렇게 하나씩 변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옆에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봤으면 좋겠다. 비록 언젠가는 떨어져 있어야 할 지라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6. 아내에게 선사하는 자유로운 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