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꿈꾸고, 그것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수도 없이 생각한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진짜 시간 여행을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때를 선택해야 할까. 내 머릿속에서도 그런 상상의 나래가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진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별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가 특별히 즐겁지 않았고, 대학교 시절에도 늘 외로움을 느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행복함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우울했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었고, 주변인이었다. 그래서 그저 빨리 외로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몇 번의 연애 끝에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면서 과거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더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현재를 바꾸는 과거가 아니라 행복했던 순간순간들로 돌아가고자 하는 조금 다른 시간여행이다.
나: 자기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기가 있어요?
아내: 음.. 만약 갈 수 있다면, 나는 동생 어릴 때로 돌아가서 잘해주고 싶어요. 동생을 너무 막 대해서요.
나: 그렇구나. 다른 때는 없고요?
아내: 뭐,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 아이고. 공부가 취미라더니, 더 하면 하버드도 가겠네.
아내: 자기는 언제로 가고 싶은데요?
나: 음.. 난 특별히 먼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특정한 시기에 가서 그냥 잠시 머무르다 오고 싶어요.
아내: 응? 예를 들면요?
나: 예를 들면, 자기랑 처음 데이트 한 그 몇 시간, 아니면 결혼식 하던 그 순간, 신혼여행 갔던 시간들.. 뭐.. 그런 순간들이요.
아내: 바꾸고 싶은 거 없어요? 후회되는 거요.
나: 그런 게 있긴 한데, 그거 하나 바꾼다고 지금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요.
결혼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 수도 없이 데이트를 한 그 순간들, 결혼식 준비와 당일, 신혼여행의 순간들 그런 다양한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서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좋은 기억들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그런 순간들이 더욱 늘어난다. 수도 없이 늘어나는 순간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카메라로 다양한 표정과 순간을 남긴다. 그래서 사진과 동영상이 저장되는 용량을 커지고, 어쩌면 인생의 5% 정도는 디지털화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저장되고 있고 그것을 꺼내어 볼 때 새록새록 추억에 잠기긴 하지만, 그때도 어느 시기의 사진을 볼지 선택을 해야 한다. 모든 순간을 한꺼번에 다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은 최근 사진을 시작으로 빠르게 스크롤해서 가용한 시간 안에서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띄엄띄엄 본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시기를 찾아보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군가: 만약 지금 죽는 다면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언제예요?
나: 지금 죽으면요? 아..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누군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바로 1분 후에 죽는데 딱 한 순간만 돌아가서 5분간 있다 올 수 있어요.
나: 음... 그러면.... 나는 아내와 집에서 차마시며 식탁에 앉아 있던 순간으로 갈게요.
누군가: 응? 그냥 차마시던 때? 이벤트가 아니고 그냥 집에서 앉아있는 거? 왜요?
아내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죽음 직전에 5분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아내도 똑같이 나에게 물었다. 왜요? 내겐 그런 일상이 소중하다. 특별한 날의 이벤트도 즐겁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그런 조용한 일상이 내게 주는 의미는 크다. 내가 생각하는 아내와 차마시던 그 순간은 사실 대화하는 순간도 아니고, 각자 할 일을 하며 차를 마시던 시간이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지만, 거기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고, 차를 마시며 영화를 보고 있던 순간이 행복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정말 많은 순간의 일상이 있다. 그 일상을 즐기기 위해 최대한 빨리 퇴근하여 집에 오고, 일을 해야 할 경우 집에서 아이를 재우고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이와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아이와의 추억도 무수히 쌓여가고 있다. 아내가 얼마 전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내: 이제 당근이도 생기고, 자기가 죽기 직전이라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 아.. 나도 그 생각 자주 하는데, 너무 많아서 선택할 수가 없어요. 진짜 너무 많아졌어요 이제...
아내: 그래도 하나만 선택해야 된다면요?
나: 그럼... 난 우리 세명이 식탁 주위를 돌며 붙잡자 하던 순간이요.
아내: 엥? 겨우 그거예요? 역시 자기는 정말 일상이 소중하구나.
일상은 소중하다. 겨우 식구 세 명이 붙잡기 놀이를 하던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과 내 감정을 잊을 수는 없다. 그건 그저 아무 순간이 아니다. 내가 행복이 가득한 순간이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그 짧은 5분의 시간 동안 서로의 표정은 웃음으로 가득하고 붙잡기는 계속된다. 뱅글뱅글 행복이 돈다.
여전히 과거의 어떤 선택은 지금의 삶의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바꿀 수도 없겠지만, 바꾼 다면 지금의 내 삶은 모두 다르게 바뀔 테니까.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바꿨을 때, 자신의 아이 성별이 바뀌었는데,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결국 지금의 행복한 순간들을 과거로 돌아가 바꾼 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작은 순간들이 모여 어떤 행복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건 나 혼자 만이 아니라 내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일상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 직전까지 삶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