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미니멀리즘의 삶 속으로 한 걸음

by 레빗구미


결혼 전 내 작은 방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책상과 침대, 그동안 샀던 책들이 책장에 가득했고, 5평 남짓한 방안은 뭔가 복잡했다. 책상은 노트북과 키보드를 놓으면 무언가 더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보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방은 좁았고, 보관해야 할 것은 많았다. 사실 부모님 댁에 살면서 큰 방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학교를 지방으로 가게 되면서 작은 방을 쓰던 동생과 방을 바꾸게 되었다. 나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방을 얻어 독립된 생활을 했다. 그때 처음 내 살림을 장만한 셈이다.


하지만 역시나 몇 평 안 되는 방안에 필요한 것들을 욱여넣으면서 방은 언제나 엉망이 되었다. 몇 개월을 그렇게 살고 나니 그런 난장 속에서 그것이 난장이라는 것을 잊고 살게 되었다. 그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냥 그렇게 생활을 계속 해 나아갔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놓고 어디엔가 보관을 했다. 사실 그중에는 매번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한 번 쓰고 쓰지 않는 물건도 많았다. ‘언젠가 쓰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그 물건들을 모두 어딘가에 쌓아두게 만들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아내가 살던 전셋집에 간 적이 있다. 아내의 집도 나의 자취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먹을 간식거리들이 주방 수납함에 가득했고, 냉장고도 뭔지 모를 음식들이 가득했다. 많은 옷들이 꽉 차 무거워 보이는 옷장과 방의 각종 가구들은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나: 와. 자기도 짐이 많네요.
아내: 좀 어지럽죠? 나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 우리 결혼할 때 이거 다 가져갈 건가요? 다는 못 가져갈 거 같은데.
아내: 아마 몇 개는 버려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이사할 때 좀 버리죠.
나: 근데 좀 아깝다. 다 버리지 말고 가져갈 방법을 찾아요.
아내: 그러시죠!


결혼하고 전세 집을 얻게 되면서, 집안을 채워 넣을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살펴보니 별로 살 것은 많지 않았다. TV와 냉장고는 결혼 선물로 받았고, 세탁기는 아내 집에 있던 것을 가지고 왔다. 아내 집에 있던 가구는 대부분 버리고, 주방 도구와 그릇들만 챙겨 가지고 왔다. 그렇게 하고 나니, 전셋집이 크지 않았지만 꽤 넓어 보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나와 아내 모두 집안에 큰 가구나 물건들을 사지 않기 시작했다. 무언가 살 때 아내와 한참 이야기를 해서 사용 빈도가 높지 않으면 과감히 구입을 포기했다. 한 번 쓰고 말 것이라면 그건 우리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나: 이제 우리 집도 새로 샀고 이사를 가야 되겠네요.
아내: 네 우리 이사할 때, 안 쓰는 거는 다 버려요. 일단 옷부터요.
나: 그럴까요? 그릇도 우리가 딱 필요한 것만 챙겨가고 나머지는 다 버려요. 옷은 자기 것이 훠얼씬 많으니까 자기가 골라내세요.
아내: 자기도 안 입는 옷 많은데요? 촌스러운 옷들도 다 버려요~
나: 촌.. 스럽긴요. 아닌데... 암튼 그럼 처분 이사 불러야겠네.
아내: 처분 이사요?
나: 네 이사할 때 중고로 팔 것들은 사가고, 버릴 것은 버려주는 이사 업체가 있어요.
아내: 오 좋아요!


처분 이사 업체를 불러 이사를 다 마치고 새집에 들어와서 짐 정리를 끝내고 나니 그제서야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침대, 식탁, 책상, 소파 등의 가구들은 모두 이케아에서 구입한 아주 심플한 가구들이고, 붙박이 장이 있어 옷장은 따로 없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책들도 모두 버렸다. 나와 아내는 이제 전자 책이나 핸드폰, 아이패드 등을 이용해 책을 구입해 읽는다. TV는 없는데, 대신 작은 프로젝터를 하나 구입해서 영화 볼 때, 그리고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여 줄 때 쓴다. 주방기구들과 그릇도 딱 필요한 양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엌의 수납장은 많이 비어있다. 덕분에 집에는 큰 공간을 차지할 것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집은 꽤 넓어 보인다. 무엇보다 아이와 뛰면서 장난치며 놀아도 무리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 어딘가에는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이제 많은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필요한 것만 산다. 만약 한 번 쓰고 몇 개월 쓰지 않는다면, 그 물건은 과감히 버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제는 그런 생활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아내와 그런 문제로 논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이사할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 나는 책을 가능하면 가지고 오고 싶어 했었다.


아내: 책은 다 버려요. 자기가 언제 봐요?
나: 그래도 이 책들 좋은 책들인데요..
아내: 잘 생각해보세요. 이 책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예요?
나: 음..... 대.. 대학교 때?
아내: 그 뒤로 본 적 없죠?
나: 지금 방금 봤어요. 너무 좋아. 너무 재밌어. 너무 유익해.
아내: 버리세요. 나중에 아이패드로 보시면 되잖아요.
나:.... 네 알겠습니다...


무수히 많은 책들이 기부되거나 버려졌다. 버릴 때는 안타까움이 컸는데, 막상 버리고 나니 잘했단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볼 수도 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전자책을 찾아서 구입해 읽어도 된다. 어쩌면 미니멀리즘과 디지털 생활과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책이 이미 온라인 상에 존재하고 작은 핸드폰 하나면 여러 책을 다운 받아 읽을 수 있다. 물론 예전 같은 아날로그 감성, 책의 질감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도 모바일 기기에서 보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점점 더 미니멀리즘의 생활로 들어가기가 쉬워지고 있는 것 같다.


나와 아내의 삶의 행태가 바뀌면서 아이가 입는 옷이나 물건들도 많이 사지 않는다. 아이 장난감은 누군가에게 사용하던 것을 받거나, 특별한 날에 하나씩 사줬다. 그래서 역시나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앞으로 나와 아내는 이런 삶을 계속 유지할 것 같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고, 청소가 용이해서 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 이 삶 속으로 한 번 들어오고 나면 다시 그 복잡함 속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많은 것을 버린 이후 삶의 질은 꽤나 많이 높아졌다. 누군가 많은 것을 버려서 아쉬운 것이 없냐고 묻는다면,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Simple life 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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