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둘째를 낳으라는 불편한 걱정들

by 레빗구미


나와 아내는 아이를 낳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특별히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할 때, 집구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빌린 은행 대출을 갚아야 했고, 나름 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오다가다 만나는 아이들이 귀엽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아이가 필요할 거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결혼하면 아이는 무조건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최근으로 오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선택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점점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동학대 문제 등은 모두 아이를 쉽게 낳지 못하게 하는 장벽들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유행하던 소확행이나 욜로 같은 삶의 태도들은 더욱더 아이에 대한 희생보다는 현재를 좀 더 편안하게 즐기려는 인식을 높여놓았다.


나: 자기야, 혹시 소확행이라는 말 알아요?
아내: 아니오 뭐예요?
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의미예요. 요즘 작은 행복들을 찾는 게 유행이래요.
아내: 그래요? 나는 욜로는 알아요. 한 번뿐인 인생~!! 즐겨야죠~
나: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야죠. 일단 우리는 대출부터 갚고.
아내: 한 번뿐인 인생, 대출부터 갚고 보자? ㅎㅎ
나: 장모님이 요즘은 아이 낳으라고 안 하세요?
아내: 왜요. 하죠. 점점 심해져요. 어제는 점을 보고 왔는데, 다음 달이 좋은 달이라고요...
나: 우린 없어도 좋을 것 같은데. 자기는 낳고 싶어요? 우리 엄마도 하나는 있어야 된다고 계속 그래요.
아내: 모르겠어요... 나도 지금 좋은데..


우리는 그 당시 그 현실 속에서 적당한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놀러 가고 싶을 때 놀러 가고, 적당한 돈을 벌며 빌린 돈을 거의 다 갚아가고 있었다.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었고, 딱 그때의 마음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평안한 삶을 자꾸 흔들어 놓는 건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였다. 그냥 지나가면서 한 번씩 물어보고 툭툭 던지는 물음이었지만, 그 영향은 꽤나 강력했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그것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안 낳을 거야?”

“아이는 언제 낳으려고? 아이는 부부의 끈이야. 꼭 있어야 해”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 인생을 다 아는 거야”



나와 아내는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우리 인생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걸까. 아이가 없는 삶은 미완성의 삶일까. 아이가 있으면 그래도 아이가 주는 행복이 많지 않을까. 그럼 우리도 하나만 낳아서 길러볼까. 언제 낳는 것이 좋을까. 우리 마음속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아예 없던 마음은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그래도 해보자’로 결론지어졌다. 어쨌든 그렇게 고민하는 단계로 들어오고 나니 조금은 긍정적으로 아이가 있는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주변 사람의 말들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자기들의 삶도 아닌데, 인생의 큰 결정에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 자신들이 키워줄 것도 아닌데, 꼭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를 낳고 보니 그 말들이 예상보다 더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은 힘들다. 투입되는 자본도 많고,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일단 둘 다 일하는 입장에서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런 도움 조차 받지 못했다면 더욱더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맞벌이 부부들이 생후 3개월부터 어린이 집에 보내는 걸 많이 보게 된다.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부모 입장에서 작은 아이를 떼어 놓는다는 것에 얼마나 힘들까. 부모와 떨어지는 그 아이들은 얼마나 어색하고 힘들까. 아직은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한국의 시스템은 인색한 편이다. 여전히 남성주의적인 시스템은 여성에게 더 육아를 강요하고 남성들을 그저 일터로만 밀어 넣는다. 남성이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여전히 어색한 사회고, 여성도 일을 해야만 할 때, 아이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경험해야 한다.


아내: 한국은 왜 이렇게 일찍 어린이 집에 보내죠? 태어나고 3개월 만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가능해요?
나: 네 요즘은 정말 맡길 곳이 없어서 그렇게 많이 해요. 부모님들도 못 봐주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내: 그럼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모든 가족이 다 힘들잖아요. ㅠㅠ
나: 그쵸.. 중국은 4살부터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고 했죠?
아내: 네 우리는 최대한 늦게 보내요.
나: 거기는 맞벌이하면 누가 애 봐요?
아내: 가능하면 부모님 도움을 많이 받아요. 근데 거기도 둘 다 맞벌이하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건 맞아요. 대부분은 부모님에게 맞기고 나가요.
나: 음.. 비슷하네요.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도 상황은 비슷해 보였다. 결국 한국이나 중국이나 독박 쓰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 들인 것 같다. 엄마, 아빠들 역시 돈 버느라 눈치 보느라, 육아하느라 복잡한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와 아내가 일사천리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 익숙해지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또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한다. 그건 아이가 없을 때와는 또 다른 화살들이다.


“아이 키우니까 너무 이쁘지? 하나 더 낳아야지”

“맞벌이면 둘은 있어야 나중에 편해. 애들 크면 지들끼리 논다니까”

“혼자면 외로워 하나 더 낳아”

“아들 하나 더 있어야지? 딸 있으니까 이제 아들 하나 더 만들어~”


아이 하나 육아하는데 나와 아내는 온 힘을 쏟는다. 다 이해한다. 과거 부모님 세대들은 더 많은 아이를 낳아 길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어도 어떤 식으로든 키워냈다. 지금도 둘 이상의 아이를 낳으려는 수많은 가족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것에서 오는 행복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와 아내에겐 아니다. 하나로 충분하다. 하나로 이미 벅차다. 지금은 부모님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고 있다. 우리 스스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아내가 출장 가면 내가 연차를 쓴다. 내가 출장 가면 아내가 일을 조금 쉰다. 내가 퇴근 전에는 아내가 아이를 본다. 퇴근 후와 주말에는 내가 아이를 전부 챙긴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두 사람 다 이미 지쳐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아이에게 가능한 좋은 것들을 해주고 있는데, 아이가 둘이 되면 그렇게 해줄 자신이 없다. 낳으면 다 하게 된다는, 입으로만 쉬운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둘이면 더 좋다면, 사회 시스템을 먼저 바꿔 달라고 하고 싶다. 좀 더 키우기 쉬운 사회로,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회로, 육아 때문에 연차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로 먼저 바꾸고 난 후에 낳으라고 하면 안 될까. 그리고 정말이지 다른 사람의 가족계획에 관심을 그만 가져주면 좋겠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생각해 주는 마음과 안타까움을 담아 던지는 그 작은 걱정의 말들은 듣는 사람의 귀에 들어온 순간 작은 가시들로 바뀌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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