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마흔에 흰머리와 만나다

by 레빗구미


흰머리는 나에게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발견되는 새치도 적었을 뿐더라 머리가 아주 검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저 검은 머리가 평생갈 것처럼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늘 흰머리가 고민이었다. 장인어른이 젊은 시절 부터 새치가 많았기 때문에 아내는 자신의 새치를 정말 신경썼다. 그래서 흰머리에 좋다는 음식을 매일 챙겨먹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내 기억 속에는 검은머리로 기억된다. 부모님의 흰머리조차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어느 순간 부쩍 염색하는 날이 많아지던 부모님은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다가 이제는 염색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온통 하얀 모습으로 변해있는 두 분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그 모습은 사실 나와 아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계속 옆에 있었던 모습일 것이다. 단지 내가 신경쓰지 않았을 뿐.


거울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다가 흰머리를 하나 둘 세기 시작한다. 그러다 숫자가 점점 커지는 때, 세기를 그만 둔다. 나는 아직 20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모습은 어느 덧 중년의 모습으로 가고 있었다. 마흔의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흰머리를 발견한 때문인지 부쩍 늙어간다는 우울함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나: 나도 이제 늙나봐요. 흰머리가 정말 많아졌어요. 회사 사람들도 알아본다니까.
아내: 에이 많지 않아요. 나는 20대 때부터 흰머리가 많아서 고민했어요.
나: 그래도 자기는 나이가 훨씬 젊잖아요. 나보단. 흰머리도 별로 없는데?
아내: 아니에요. 나는 아빠를 닮아서 새치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좋다는 음식, 약 다 먹어봤어요.
나: 약까지 먹을 정도였어요?
아내: 그럼요. 나는 진짜 많이 우울했어요.
나: 나도 흰머리가 많이 보이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기분이 이상해졌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몇 주를 보낸 후 다시 거울을 보면, 어느 덧 티가 나게 많아진 흰머리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제는 회사를 가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다들 흰머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흰머리가 많이 나셨네, 염색을 하세요, 무슨 염색약이 좋아요. 이제 그 나이죠. 염색의 나이.


결혼 초, 아내의 새치를 뽑아 주던 생각이 난다. 멀게는 어머니의 새치를 뽑아 주던 생각도 떠오른다. 그때의 흰머리들은 그야말로 새치였다. 젊은 나이에 드문드문 나는 하얀색의 머리카락. 그건 늙음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몸의 실수 중 하나로 받아들이며 일일이 찾아서 뽑아냈다. 아주 간단하게 그 시절 흰머리는 어디론가 제거되었다.


새치가 나는 이유 도드라지는 그 한 가닥. (4).jpg



한동안 흰머리를 뽑아야 하는지,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정기적인 염색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뽑자니 너무 많았고, 그대로 두자니, 온통 머리가 희끗희끗해보였다. 염색을 하자니 나의 인생이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든 기분이 파고들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렇게 그저 생각만 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아내: 자기가 이번에 머리 자를 때, 염색도 같이 하세요.
나: 왜요? 염색 한 번 하면 계속 해야되는데요....
아내: 좀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요. 염색하는게 뭐 어때서요.
나: 왠지 이제 반 평생은 염색을 해야할 것 같아요. 벌써 늙어버렸다는 느낌이랄까.
아내: 에이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염색하면서 늙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기간이 시작한거라 생각해요. 어차피 완전 늙은건 아니잖아요~ 아직 한참 젊으면서!!


그렇다. 염색을 한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마흔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는 아직 4살이다. 흰머리가 늘어났지만 아직은 검은 머리가 더 많다. 이제 나이 듦의 초입에 서있다. 중년의 초입에 서있지만 아직 들어서지는 않았다. 요즘 중년은 좀 더 50대에 가까워야 하니까. 청년의 출구 어딘가에 내가 서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흰머리를 검게 염색할 때 이런 생각 끝에 결정한 것일까. 과거에 머리를 물들였던 경우는 딱 한 번, 대학교 때였다. 옅은 노란색 머리로 염색했었던 그 때는 좀 더 멋지고 개방적으로 보이려고 했던 거라면, 지금의 염색은 조금 변한 나를 원래의 생각하던 내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일종의 타임머신이자 직전으로의 회귀다. 그렇게 나는 미용실의 타임머신을 타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 간다. 내 인생의 첫 염색이라는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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