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내가 날 쳐다보던 연애 초기를 많이 생각한다.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며 인사하던 아내의 눈빛에는 나에 대한 마음이 듬뿍 담겨있었다. 그런 눈빛으로 시작된 나와 아내의 만남은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소중한 인연이다.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금방 사랑에 빠지는 금사빠였던 나에게 사랑은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었다. 아내를 만나고는 내가 주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아내가 받고 싶은 것, 아내가 주고 싶은 어떤 것 등 여러 가지를 다 이야기하면서 맞춰 나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런 디테일한 조율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좋아한다는 그 사랑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전에 나는 그런 상대방의 반응을 느껴보지 못했다. 상대방의 눈 속에 나만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랑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력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도 담겨있다.
1년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하고 나서 6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와 아내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서 지속되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2-3년이다. 호르몬이 작동하는 사랑은 그만큼 강렬하지만 짧다. 아내에게 사랑에 대해 물었다.
나: 자기는 사랑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아내: 사랑이 변하진 않죠. 상대방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예요.
나: 음. 그런 나를 아직도 사랑하나요?
아내: 그럼요. 사랑 안 하면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죠. 바로 중국 가지.
나: 그럼 변한 건 없어요?
아내: 불꽃같은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사랑은 똑같아요~
나: 응? 뭐야 그럼 변한 게 있는 건데.
아내: 아닌데 똑같은데.
아내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불꽃같은 느낌이 빠졌다고 한다. 그럼 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사랑이 변하지 않길 원한다. 나도, 아내도 서로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어쩌면 정말 사랑이란 감정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렇게 믿거나.
일상을 보내다 문득 아내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근데 불꽃같은 느낌은 빠졌다. 생각해보면 그 불꽃은 아직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집에서 돌아와 아내를 보고 살짝 안을 때, 그 불꽃의 따뜻함을 느낀다. 아내가 힘든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달려가 아내의 눈을 마주칠 때, 그 불꽃의 따뜻함을 느낀다. 강렬한 불꽃의 감정은 이제 따뜻한 기운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 기운은 강렬하지 않지만 오래 지속된다.
나는 원래 아내와 걷는 걸 좋아했다. 손잡고 걸으며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그런 시간은 거의 없어졌다. 아이가 잘 때다 잠깐씩 이야기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아내가 일로 바쁘면 대화할 시간은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의 사랑도 미니멀해진다.
어쩌면 사랑의 속성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표현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면 버스 창문에 붙어있던 물방울들이 바람에 이끌려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이 나온다. 물방울이 주변의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의 모양으로 바뀌는 것처럼, 주변 상황에 따라 우리의 사랑은 모습을 바꿔간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속성, 구성물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래서 아내의 말이 옳다고 느낀다.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부부로 있을 동안에 우리가 가진 마음속의 사랑이 변하진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 주변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그 형태가 조금씩 바뀔 뿐이다. 과거보다 걷는 시간이 짧아도, 대화 시간이 짧아도, 메시지 주고받는 시간이 짧아도 늘 우리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 우리가 가진 사랑의 모양은 오늘도 주변 공기에 따라 조금씩 형태를 달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