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다가 일어나서 펑펑 운다. 제일 가까운 위치인 소파에 앉아있던 내가 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이가 앉아서 펑펑 울고 있다. 혹시 어디가 아픈지 다친 데가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아이에게 괜찮은지 묻는다. 왜 그렇게 울고 있냐고. 무슨 일이냐고. 아이는 말한다.
"아빠 아니야! 아니야! 시러!" (퍽퍽)
사정없이 손으로 내 뺨을 내려친다. 몇 대를 한 참 맞고 나니, 화가 난다. 도대체 왜 때릴까.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안정이 필요할 때 아빠가 들어가면 왜 거부할까.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당근아. 아빠도 맞으면 아파. 아무리 화가 나도 아빠 그렇게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아빠도 엄청 아파."
아이가 대답할 새도 없이, 아내가 방으로 들어오자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자리에 눕는 아이는 내가 방에서 나오자 금방 잠이 든다. 아이는 늘 밤에는 아빠인 나를 거부한다. '아무래도 엄마와 같이 자는 것이 더 안정적이겠지. 늘 옆에 있었던 엄마가 더 친숙한 건 당연하겠지.'라는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바로 이거다.
"내가 좋은 아빠인 걸까"
다시 아침,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다시 아빠를 찾는다. 아침을 같이 먹고, 붙잡기 놀이를 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조금 보다 보면 어느덧 출근할 시간이다. 아침 내내 엄마보다는 아빠인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도 비슷하다. 주로 집 밖으로 나가는 주말에는 내 손을 잡고 나가자고 명확한 의사를 표현한다. 엄마에게도 그런 요구를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다. 늘 외부 활동과 내부 놀이는 나의 몫이다.
어쩌면 아이는 이미 어떤 상황에서 아빠 혹은 엄마를 찾아야 하는지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구분하고 있다. 아빠와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고 하고 엄마와는 안정감이 필요할 때 많이 찾는다. 기본적으로는 엄마가 옆에 없으면 일단 계속 확인을 한다.
당근이: 아빠, 마미 어디 갔어?
나: 마미 출장 갔지. 3일 자고 나면 와요.
당근이: 응.
나: 이제 뭐하고 놀까?
당근이: 응. 코코몽~ 아빠~ 근데 마미 어디 갔어? 마미 보고시퍼해~
나: 마미는 출장 가서 3일 있다 와요. 그동안 아빠랑 놀고 자고 씻어야 해요~
꼭 아내의 출장기간이 아니더라도 아이는 늘 엄마를 찾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의 출장 기간에는 엄마를 덜 찾는다. 중국 심천 장모님 댁에 있을 때도, 아이는 장모님의 말을 잘 듣고 잠도 장모님과 잔다. 한국에 나와 있을 때도, 내 말을 잘 듣고, 잘 때도 나와 잘 잔다. 아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순간부터는 잠잘 땐 무조건 엄마와 자야 한다.
아이 나름의 어떤 구분 짓기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아빠와는 같이 놀 수 있고, 키즈카페나 놀이터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외출할 때, 유일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아빠인 것을 안다. 반면에 엄마는 샤워를 시켜주고, 옷을 입혀주고, 잠을 재워준다는 것을 안다. 평일에는 밥 먹을 때도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엄마가 같이 놀아주지 않더라도 옆에 있으면 안정감이 생긴다.
아이가 나에게 심술 낼 때, 아이는 때리거나 큰 소리로 운다. 아내에게 할 때도 있지만, 나에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내는 생활 습관이나 간식 등에 대해서 혼낼 때가 있다. 반면에 나는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우 더 많이 화내며 혼내는 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내가 훈육의 빈도가 조금 적긴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아빠를 좀 더 만만히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아이가 나에게 짜증 낼 때마다 아이의 눈을 보며 계속 이야기한다.
"아빠도 때리면 아파. 아빠도 때리면 안 되고, 다른 누구도 이렇게 함부로 때리면 안 되는 거야. 당근이도 맞으면 아프지? 아빠가 이렇게 때리면 아프지? 당근이가 아픈 것처럼 아빠도 아파. 그리고 당근이가 다른 사람을 때려도 그 사람도 많이 아파. 그러니까 함부로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늘 아이에게 설명한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아이니까. 이렇게 설명해도 다음에 또 똑같이 행동한다. 그러면 다시 눈을 보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를. 길을 걷다가 아이가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고 한다. 한참을 안고 있다 보면 도저히 더 못 안고 있을 순간이 온다. 그러면 아이를 내리고, 다시 설명한다. 왜 아빠가 더 못 안는지, 왜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지.
아이가 정말 알아듣는지는 모른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알게 되지 않을까.
아이에게 아빠인 나는 친구다. 아내는 엄마다. 아이에게도 아내는 엄마다. 집에서 엄마의 말은 어떤 절대적인 힘이 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잘 따른다. 아내는 지켜야 하는 룰을 명확히 이야기하고 그에 따르도록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혼내는 순간도 많이 있다. 아이는 결국에는 엄마의 말을 따른다. 엄마의 말이 절대적이다.
아빠인 내 말도 영향이 있을까. 아이에게 늘 많은 설명을 해주고 가이드를 주는데, 내 말대로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아이는 아빠인 나도 믿고 의지 한다. 물론 여전히 자다 깬 아이를 위로하러 가면 손으로 밀쳐낸다. 그렇게 나를 한 없이 미워하는 것 같던 아이는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에게 장난을 친다.
중국인인 아내에게 아이는 중국말로 이야기한다. 한국인인 나에게 아이는 한국말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를 대하는 행동을 결정하는데 언어의 영향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어 속에 담긴 중국문화와 한국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담겨있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도 받아들여 본인 나름대로의 구분을 짓는 아이. 결국엔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도 구분 짓기 시작할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각기 다른 사람이다. 다른 성향을 가졌고, 다른 성격을 가졌다. 선호하는 음식도, 선호하는 취향도 다르다. 아이는 그 속에서 아빠와 엄마를 구분하여 행동하고 자기 자신도 구분하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은 이런 구분 짓기는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필연적인 것이다. 아이가 거부하는 순간에는 아빠가 싫어서 라기보다는 아빠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고 아이는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빠는 계속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아이가 생각하는 모든 영역에서 아빠가 등장해도 문제가 없는 그 순간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아빠가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