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은 내 안의 무언가를 쥐어짜 내는 느낌이다. 가능하면 내가 느낀 것을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려 애쓴다. 나는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대부분은 내가 자라면서 습득하거나 나이 들면서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주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되었다. 모두 242개의 글을 썼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글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여전히 모자라 보이고, 다른 사람의 글과 비교했을 때 별로 차별화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가진 태생적인 기질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력했는지 아니면 자라면서 그런 성향이 강해졌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 어른이 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순간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어리숙하고 자신에 대해 의심한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모자란 부분만 눈에 들어오고, 어디에도 좋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가지 플랫폼에 내 글을 올리지만 어떤 글은 조회되는 횟수 조차 많지 않다. 그렇다고 운이 좋아서 조회수가 많아진 글이 나오면 내심 기뻐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공감수나 공유수를 자꾸 보게 되고 조회수를 클릭하여 확인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서도 그 일 자체도 인정받으려고 하는 평생의 습성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솔직히 이런 자기 검열은 괴롭다. 이런 것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무기들은 이미 벌어진 상처를 자극해 더 큰 상처를 만든다. 그 상처는 나의 마음을 저 깊은 우물 어딘가로 끌어내리고 더 이상 올라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득한 구렁텅이로 떨궈버린다.
경쟁상황에선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가슴은 콩닥거리고, 결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도 잘하는 것이 없이 대부분 평균 언저리에서 머무르게 된다. 공부에서도, 업무에서도, 운동에서도, 운전에서도, 글쓰기에서도 특별히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는 없다.
글쓰기, 특히 영화 리뷰를 쓰다 보면 한 영화에 엄청난 리뷰가 쏟아질 때가 있다. 영화 기생충이나 곡성 같은 영화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시각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에 굉장한 부담감이 있다. 내가 보는 시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기 전부터 자신이 없어진다. 결국 리뷰를 써 내려가다 보면 생각보다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듯 하나의 글을 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나 자신의 만족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 리뷰들은 크게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워낙 좋고 훌륭한 리뷰들이 많다. 이건 경쟁상황이 아닌데도, 스스로 경쟁상황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 누워있는 형상이 된다. 그래서 괴롭다.
그동안 쓴 글을 어떤 콘테스트나 이벤트에 내보낼 때도 그렇다. 그런 경쟁상황이 솔직히 어렵게 느껴진다. 세상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많고, 어떤 사람들의 글들은 너무 좋아 마음이 절로 움직인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상이 주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그 과정 속에 시상에 대한 욕심도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일 것이다.
아예 SNS에 내 글을 공유하지 않고 나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글을 쓴다는 건 다른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것이니까, 대부분은 여러 가지 플랫폼에 같이 공유한다. 늘 글을 써 내려가며 절대 클릭수에 집착하지 않고, 매몰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내 삶의 태도는 쉽게 바뀌진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과 행동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어렵다. 쉽게 입술이 떨어지는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내가 쓴 글에는 내 삶이 잘 담긴다. 사회학을 전공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아주 디테일한 이론이나 사상가들은 모르지만, 사회를 보는 구조나 관점에는 대학교 때 배운 사회학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적 사고마저 없었으면 내가 글을 써나갈 수 있었을까. 사회 속에서 나와 타인의 삶을 구조화하며 바라본다. 특히나 영화를 보면서 그런 삶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보고 느끼고, 그걸 정리해서 손끝으로 키보드를 치는 순간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어쩌면 그런 느낌 때문에 글을 쓴 이후의 집착에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쓰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에는 나처럼 영화를 많이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모두 영화를 취미로 보고 단순한 감상평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눌 사람은 주변에 없다. 영화를 보고 나면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고,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는다. 내 주변엔 없지만 세상에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은 보는 행위뿐만 아니라 각자가 느끼는 생각들을 모두 글로 남긴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다양한 시각을 볼 때면 뭔가 그들과 교류하는 느낌도 든다. 어떨 때는 그들이 그렇게 글로 정리하는 능력에 질투가 나기도 한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글의 냄새가 분명히 느껴진다.
어쩌면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고, 공유하고, 뿌듯해하거나 괴로워할 것이다. 아침에 본 송충이는 부지런히 큰 대로변을 기어간다. 한 시간이 지나 다시 송충이를 찾았을 때 저기 목표로 하는 나무까지 절반이 더 남아있다. 그 송충이처럼 글을 쓴다는 건 금방 발전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느리게 꾸준히 부지런히 가다 보면 어느덧 목표로 하는 무언가가 보일지 모른다. 그 와중에 내가 가진 자기 비하의 습성은 계속 나를 괴롭힐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쓰레기라며 중얼거리거나, 이것도 못하는 바보라고 되뇌는 행동들을 완전히 떨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도 난 계속 써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발전하고 있으니까 좀 더 자신감을 가진 그 날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송충이처럼 저 멀리 보이는 목표점을 향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번에 성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송충이와 같은 애벌레의 단계를 거치니까. 꾸준히 움직이며 성장하다 보면 그래도 언젠가는 성충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