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모성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나의 마더>(2019)

by 레빗구미


모성은 흉내 낼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감정을 넘어선 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키워낸다는 건, 고된 노동이지만 사회가 지탱할 수 있는 큰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 무수한 사람이 개입하고 무수한 놀이와 이론들이 아이의 머릿속에 주입된다. 그렇게 습득된 정보들은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을 만들고 다시 그 사람이 아이를 낳음으로써 다시 한번 비슷한 라이프 사이클을 보낸다.


물론 아버지의 역할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가진 이미지는 조금은 신성하고 믿음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나를 따뜻하게 지켜줄 거란 어머니랑 존재는 그 존재 자체가 아이에게 선물과도 같다. 아이는 그래서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따르고 그 따뜻함을 기억한다.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낸 자식을 안전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또 키워내는 것은 지금까지 어머니가 주된 역할을 맡았고, 최근에 점차적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나의 마더>는 그런 모성을 AI 로봇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담겨있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단 두 명이다. 세상의 멸망 후 벙커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클라라 루가드)와 영화 중반 이후 등장하는 외부인(힐러리 스웽크)과 함께 여자 목소리를 가진 AI 마더(목소리:로즈 번)가 등장한다. 어쩌면 실질적인 영화의 주인공은 AI 로봇 마더 일 것이다. 마더는 저장되어 있는 인간 배아 중 하나를 꺼내 키우기 시작한다. 그 여자아이의 육아는 모두 마더가 책임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인간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다.


자장가를 불러주고, 울면 분유를 타 주고, 책도 읽어준다. 같이 뛰어놀아 줄 수도 있으며, 숨바꼭질도 가능하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필요한 공부도 마더가 직접 할 수 있다. 온갖 시청각 자료를 이용해 아이의 교육과 놀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 음식도 모두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벙커에 있다고 해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이는 로봇을 마더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사실상 모성을 가진 로봇으로 보인다.


영화 내내 로봇 마더는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은 인간이 가진 모성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외부인이 등장했을 때부터 아이가 가진 로봇에 대한 신뢰가 의심되기 시작한다. 마더는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가 가진 모성은 진짜일까. 사실 우리 인간의 모성이나 부성도 종종 시험대에 오른다. 내가 정말 모성이 있는 인간인가. 왜 이렇게 아이에게 짜증이 나고 힘이 들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인내하며 견딘다. 그런 와중에 모성이나 부성은 은근히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이 가진 그 은근한 모성이 아이에게 의심되는 순간은 늘 존재한다. 아이는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고 금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 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외부인을 만나 다른 이야기를 듣고 독립을 꿈꾸는 건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


로봇 마더와 아이와의 관계는 진짜 모녀 관계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춘기 나이 즘으로 보이는 아이가 외부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강하고, 그것으로 인해 영화는 외부인과 마더 중 누구의 말을 더 믿어야 할지를 가지고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와 같이 관객도 흔들린다. 마더를 믿었다가, 외부인을 믿었다가, 다시 마더로 돌아온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심리의 변화는 계속 지속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다시 내용을 곱씹어보며 질문하게 된다. 모성은 흉내 낼 수 있을까. 복제된 모성은 진짜일까.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로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나의 마더>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서 자체는 AI가 위협인가 아닌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없이 반복적으로 봐온 이 식상한 기본 틀에 모성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더 많은 혼란을 주고 고민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 SF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