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

by 레빗구미


주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익숙 해진 건 아니다. 단지 혼자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없어졌을 뿐이다. 지금 한국은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해져가고 있는 나라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간다. 과거에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혼자 무언가를 한다. 이제는 혼자 무언갈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땐 무엇이든 같이 했고, 또 헤어지면 혼자 해나갔다. 결혼하고 나서는 많은 것을 같이 했고, 혼자 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혼자 하는 한 가지가 바로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 아내는 외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의 극장에 가도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내는 주로 집에서 중국어 자막과 함께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리고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둘 다 집을 비울 수가 없다. 그래서 주로 혼자 극장에 가는데, 아이가 잠든 이후에 집을 나서 극장으로 향한다. 이때 극장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한결같이 가볍다. 이때는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가족들은 집에 있기 때문에 초조하거나 두렵지는 않다. 곧 다시 돌아가서 그들을 볼 테니까.


매일 아내와 아이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렇게 출근을 했다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그들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선다. 이 정해진 일정은 나에게 한 없는 안정감을 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집 현관으로 향할 때, 점점 크게 들려오는 아이의 소리와 아내의 목소리가 집에 왔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삑삑삑삑' 도어락을 눌러 문을 열면 집의 저 안쪽에서 아이의 소리가 들린다.

"아빠다! 아빠~!"


아이의 환한 인사 뒤로 아내가 나와 눈을 맞추며 나를 반긴다. 집에 왔다는 안도감,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다는 반가움이 내 몸을 감싼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본능, 귀소본능은 동물인 인간들도 느끼는 것임을 정확히 마음으로 깨닫는다.


아이와 아내는 장모님 댁에 갔다. 집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 옆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린다. 몸을 일으켜 방문 밖을 나가도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싱거운 공기가 싫어 음악을 켠다. 그렇게 혼자 시작한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며 뒤 돌아본 집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 싱거운 공기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향한다.


퇴근하고 돌아와도 변한 건 없다. 그 익숙한 싱거운 공기가 나를 맞고 그 속에서 컴퓨터를 켜고 즐겨보던 미드를 크게 틀어놓고 소파에 몸을 기댄다. 혼자 있는 것이 참 싫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영화 보러 갈 때의 그 안정감과 즐거움은 없다. 어쩌면 나는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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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약간의 구속을 동반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참아야 하고, 상대방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같이 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도 그렇겠지만 아이가 있을 때면 더욱 아이에게 맞추어야 한다. 아이와 외출을 하면 아이가 좋아하는 키즈카페나 공원에 가야 한다. 내가 즐기기보다 아이가 즐기는 것을 찾아간다. 그게 어느 정도 반복되면 내가 무언가 하고 싶어 하던 그 욕구는 쌓이고 쌓인다. 결국 그것을 하게 되었을 때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근데 참 이상한 건 그렇게 구속받다 잠깐의 자유를 맞았을 때, 그 해방감은 잠시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집에서 나를 맞는 건 그 싱거운 공기뿐이다. 아이와 화상통화를 해도 아이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무언가에 더 집중을 한다. 아직은 통화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는 순간순간 자주 화면에서 사라진다. 내가 보는 화면은 정지 화면처럼 장모님 댁의 책장을 가만히 비춘다. 결국 그 화면에서도 싱거운 공기만을 보다 통화 중단 버튼을 누른다.


혼자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무겁기만 한다. 물론 영화를 본다는 건 내 평생의 큰 즐거움이지만, 왠지 싱거운 공기가 주변에 가득 찬 것 같다. 가족의 구속을 받는다는 것이 어쩌면 행복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옆에서 아내의 잔소리도 듣고, 아이의 짜증을 듣는 것도 싱거운 공기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자기랑 같이 삼겹살 먹고 싶다"

"자기랑 같이 훠궈 먹고 싶다"

"자기랑 같이 맥도널드 햄버거 먹고 싶다"

"자기랑 같이 있고 싶다. "


거기에 아주 명확한 답변이 아내로부터 온다.


"자기랑 같이 심천에 있고 싶다. 한국말구"


나는 아내와 같이 나누었던 무언가를 갈구하며, 같이 있고 싶다고 했지만, 아내는 특정 지역에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한다. 어쨌든 둘 다 같이 있고 싶어 한다. 그게 어떤 장소든, 어떤 행동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같이 있고 싶다는 것. 아이가 표현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어디서 같이 살게 될지, 무엇을 같이 하게 될지 모른다. 언젠가는 중국 심천으로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혼자 싱거운 공기와 함께 해 나가야 할지 모른다. 그저 최선을 다해 이 싱거운 공기를 피해 나갈 뿐이다. 나도, 아내도, 아이도 결국 같이 있고 싶으니까.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혼자 무언갈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 혼자라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외로움은 더욱더 상대방을 사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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