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지친 몸을 기대어 쉴 수 있는 집이 있다. 그 집이 자가이든, 전세이든, 월세이든 돌아가 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집이다. 늘 그렇듯 평생 내 집은 하나였다.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 사는 곳, 학교가 끝나고, 누군가의 약속을 마친 이후에는 반드시 그곳으로 돌아가 씻고 잠을 청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 곧 집이었다. 아주 부끄럼이 많고 소심했던 학창 시절의 나에겐 집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피해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일종의 안식처였다. 고등학교 시절이든, 대학교 시절이든, 어떤 순간에도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관계를 맺고 지낸다는 것이 일종의 스트레스였다.
그런 스트레스가 극심해질 때마다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은 집이었다. 하나뿐인 집. 그 집, 방으로 들어가 종일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봤다. 사회생활을 하고 독립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질 때에도 집은 하나였다. 결국 내 생활을 정비하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고,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이사를 여러 군데로 다녔지만 그럼에도 어딜 가든 집은 집이었다. 지역이 바뀌고, 건물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뀐다고 해서 집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사를 하는 그 순간도 집안에 있는 그 안정감을 그대로 들고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부모님과 동생이 있어서 집이라고 느낀 것일까.
아내는 중국에서 태어난 이후, 거의 한 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 이사를 한 번 한 이후에는 계속 한 동네,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여전히 장모님은 그곳에서 생활하신다. 그래서 아내는 그 집에 대한 애정이 특히 더 깊다. 실제로 장모님 댁에 방문하면 과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그대로 있고, 예전 어렸을 적 사진들이 그대로 벽에 걸려있다. 과거에 쓰던 침대나 가구들도 모두 그대로 있다. 아내가 배우던 피아노도 버려지지 않고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나에게 집은 내게 친숙한 사람, 부모님과 동생이 있는 공간의 성격이 강했다면, 아내의 집은 사람과 함께 과거의 기록과 기억들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더욱더 아내는 그 집에 애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심천 장모님 댁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하루 전에 아내는 표정이 굳는다.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커튼 속에서, 침대 위에서, 창가 옆에서 자신이 왔다는 기록을 남긴다. 자기 전에는 눈물이 조금 맺히기도 한다. 아내에게 집은 단순히 위안을 얻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그 삶 자체인 것 같다. 그 집에서 자신이 겪었던 무수한 기억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곳을 떠나 먼 곳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섭섭할까.
아내와 결혼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다시 새로운 집이 생겼다. 나와 아내 만을 위한 우리의 집. 집을 계약할 때도 공동명의로 등록하고, 집안 곳곳을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구성했다. 나에겐 부모님에게서 진정한 독립을 해, 다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든 것이고, 아내에게는 앞으로의 기억을 곳곳에 묻어 둘 공간을 만든 것이다.
내가 사람을 중심으로 집이라는 개념을 생각해서인지, 이제는 부모님 댁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와 아내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생활하는 공간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아내는 나와 함께 있는 집도 우리 집이지만, 장모님 댁도 집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수십 년을 살아온 공간으로서, 그 삶이 있는 그 공간도 아내에게는 집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아내는 한국의 집에 있으면서도 늘 심천의 집을 그리워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는 우리 집에서도 생활하고,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도 생활하고, 외할머니 집에서도 생활해왔다. 그렇게 다양한 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생활했던 경험 때문인지, 아이는 자주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자고 졸라댄다. 최근에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집은 어디야?"
"음... 우리 집이 뭐야?"
"우리가 사는 곳이 어딜까?"
"음. 나는 집이 세 개 있어. 할머니 집도 내 집이야, 마미 아빠 집도 내 거야! 마마(외할머니) 집도 있어!"
"우와 당근이는 집이 많네~!"
"응~~"
놀랍게도 아이는 나와 아내가 같이 사는 집뿐만 아니라 할머니, 외할머니 집을 자기가 갈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늘 그 집들을 가고 싶어 한다. 부모님 댁에 가도, 장모님 댁에 가서도 다 잘 논다. 그게 한국이든, 중국이든 아이에겐 자신이 생활할 수 있고, 놀 수 있는 집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일종의 놀이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이 달라지니까.
내가 과거 할머니 댁에 가면 새로운 느낌이긴 했지만 불편함이 더 컸기 때문에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어 특별히 그곳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그곳들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아마도 아이가 느끼는 집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놀던 공간과 기구들이 있고,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것인 것 같다.
아이도 성장하면서 집에 대한 느낌이나 개념도 바뀔 것이다. 한국에서 자라든, 중국에서 자라든 어느 장소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또 아이에겐 각각의 집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가능하면 길게 자신의 집이 세 개라고 느끼면 좋겠다. 그렇게 느낀다는 건 아이가 각각의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고, 어떤 장소든 잘 적응하며 생활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무엇보다 그곳에 있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심천에서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새벽 6시에 나를 깨운다.
"아빠, 일어나, 아빠~ 빨리 일어나~놀자~"
아이 소리에 눈을 뜨면 내 이마 위에서 거꾸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그 광경에, 다시 한번 나에게 집이란 사람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나는 앞으로도 나의 가족들과 함께 나의 집을 만들어 갈 것이다. 아내도, 아이도 그들 나름의 집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자의 집은 어쨌든 공통의 작은 역사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