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만난 것은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부부나 커플들에게도 그런 우연이 운명을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 너무나 사랑하게 되어서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약속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결혼식을 통해 진행한다. 그건 그 둘의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연으로 이루어진 그 둘의 관계를 축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결혼을 기념하는 날, 결혼기념일은 매년 찾아오는 생일과 비슷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태어나 세상과 만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생일이라면, 결혼기념일은 두 사람이 만나 다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을 축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날로 생각하고 외식을 하거나 특별한 선물을 주고받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본인들의 결혼기념일을 잘 챙기시지 못했다. 기억 속에 가끔은 둘이 외식을 했던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직장 일이나 집안일, 또는 아버지가 챙기지 않아서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고 지나간 것 같다. 특히나 아버지가 결혼기념일에 대해 가진 생각은 분명했다. 그 날이 특별히 기념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 듯했다. 당연히 어머니는 서운해했고, 그 감정은 아마도 평생 동안 지속될 것 같다. 그런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어떤 해에는 내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챙기기도 했다. 내가 모은 돈으로 영화관 티켓을 끊어 부모님이 직장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티켓을 드렸다. 그런데 그 날 하필이면 업무가 늦게 끝나 영화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영화관으로 향하셨다. 두 분은 그때 저녁도 못 드시고 영화를 봐야 했다.
그 뒤로 다른 사람의 결혼기념일은 챙기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 정성 들여 준비한 그 날의 이벤트가 망가져버려 아쉬웠고, 무엇보다 타인이 만든 결혼기념일 이벤트에 급하게 따라오기 급급한 부모님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 뒤로도 어머니는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한 마디씩 했지만, 아버지는 늘 별 말이 없으셨다. 두 사람의 우연은 축하받지 못했고, 그들 스스로도 축하하지 못했다.
벌써 아내와 결혼한 지 6년이 되었다. 다시 한번 결혼기념일을 맞게 되었는데, 사실 점점 축하한다는 느낌은 줄어드는 것 같다. 여러 번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아내도 나도 약간은 무덤덤해졌다. 별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하루 전에 결혼기념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나: 우리 내일 결혼기념일인데 자기가 뭐 먹고 싶어요?
아내: 아! 우리 결혼기념일이구나. 나 뷔페 먹고 싶어요.
나: 그럼 뷔페 내가 찾아볼게요. 우리 편지지도 사야 해요!
아내: 맞아요. 작년에 써둔 편지 내가 챙길게요.
아주 간단히 식당을 정하고 매년 미래의 상대방에게 쓰는 편지를 챙긴다. 늘 그렇듯 작년에 각자에게 써둔 편지를 읽고, 지금 시점에서 내년의 상대방에게 편지를 쓴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보고, 이어서 미래를 예측하며 상대방에게 이야기한다. 미래의 편지에는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격려,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희망사항이 가득 적힌다. 늘 마지막은 아내나 나 모두 같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한 해동안 고생 많았어요.
우리는 중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어디에서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든 아이를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기념일이 나와 아내 둘 만의 기념일이기는 하지만 아이를 장모님이나 어머니에게 맡기고 가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매년 아이와 함께 세 명이 같이 보낸다. 아마도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계속 같이 기념일을 맞이할 것 같다.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는 상황 자체가 사실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엔 둘만의 애틋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외부에서 아이와 밥을 먹고 같이 데이트를 한 후,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운 이후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편지를 읽고 또 편지를 쓴다. 서로 말은 주고받지 않지만 그 적막이 너무나 따뜻하다. 서로의 볼펜 소리가 우리의 거실을 그득 채운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앉아서 편지를 쓰는 그 순간이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데이트 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 부모님처럼 결혼한 날짜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안다. 상대방과 새로운 세계에 다시 태어난 날, 그래서 꼭 축하해야 하는 날이다. 사실 축하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개개인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하는 것처럼, 결혼기념일도 매년 잊지 않고 축하해야 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결혼기념일에 아이 그리고 아내와 밥을 먹을 때, 아이가 묻는다.
아이: 아빠, 마미는 왜 이렇게 이쁘게 하고 왔어?
나: 오늘 아빠랑 마미랑 결혼한 날이라서 축하하려고 여기 온 거야. 그래서 이쁘게 하고 온 거야.
아이: 결혼기념일? 뭐야~?
나: 아빠랑 마미랑 평생 사랑할게요~라고 약속한 날을 축하하는 날이야.
아이: 그럼 나랑 만난 건 언제 축하해?
나: 그건 당근이 생일 때 또 축하할 거야.
아이: 와 신난다~~! 고마워~
나: 당근아 아빠도 고마워. 그리고 자기에게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