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뜻밖의 사랑고백

by 레빗구미


누군가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았던 일이 별로 없다. 늘 내가 먼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는 쪽이었고, 상대방으로 부터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받아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20대 시절에는 그렇게 사랑받기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받고 싶어서였는지 나는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면 그 감정을 말로 표현했다. 어떤 사람은 부담스러워했고, 어떤 사람은 좋아했다. 그 반응에 따라 내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사실 상대방의 반응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말로 내 마음을 아내에게 표현한다.


"사랑해요"


이 특별한 한 마디는 이제는 아주 평범한 말이 되었다. 나의 사랑한다는 말에 아내 역시 사랑한다는 답을 준다. 말로 사랑을 주고, 다시 말로 사랑을 받는다. 과거에는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며 그 말을 던졌다면, 지긍은 그 대답보다는 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 말을 던진다. 아내가 바빠 미쳐 대답을 하지 못해도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사랑은 이미 상대방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은 한동안 그 사람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머무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내 마음도 한동안은 따뜻할 것이다.


사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자랐다. 아마 대부분의 30-40대들은 비슷할 수 있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족끼리 주고받는다는 것은 왠지 낯간지럽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꼬마 시절에도 못하던 말을 성인이 되어서 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가끔 사랑한다는 말을 하신다. 작은 생일 기념 편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그 말은 따뜻하게 다가오지만 그렇게 받은 사랑의 말을 나는 다시 상대방에게 내뱉지 못한다. 그래서 그 따뜻함은 그저 내 안에만 머무를 뿐 어머니를 따뜻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저 작은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꽤 감정 표현을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겐 한없이 어색할까.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살았던 40년 가까운 시간의 더께가 너무 두꺼운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매일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 대한 사랑도 커졌던 것 같다. 매일 아내가 샤워하는 시간은 아이와 내가 노는 시간이다. 평일에는 퇴근 후 그 시간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 시간이다. 아이는 그저 신나게 장난감을 가지고 나와 놀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아이에게 말을 한다.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요"


사랑의 말을 전달하면 다시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아이는 그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노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매일 그렇게 아이와 놀다가 불쑥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아이의 반응은 늘 같다. 계속 놀거나, 동영상을 본다. 아마도 그 말을 받아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아이가 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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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해외 출장으로 내가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과 마중을 나가야 했던 날이었다. 오후에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다, 열린 문으로 아이가 나오는 걸 본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렇게 달려와서 내 손을 잡고 놀러 가자고 말하던 아이는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


"나 아빠 좋아해요"

"어? 어? 어 아빠도 당근이 좋아해요"


뜻밖에 사랑고백이었다. 무언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한 아이는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해 좋아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올곧이 표현한다.


할머니 집에 가서 "할머니 나 할머니 좋아요".

할아버지 옆에 가서 "나 할아버지 좋아요".

아내 옆에서 " 나 마미 좋아요".

그렇게 아이는 뜻밖의 사랑고백을 주변 사람에게 던지기 시작한다. 그 따뜻한 말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자리한다. 역시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다. 그렇게 말을 던지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 마음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에게 내가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방식의 말로 언젠간 표현할 시간이 오길 빈다.


며칠 전, 아내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샤워를 하고 있을 때, 거실에 있던 아이가 내게 다가와 두 다리를 잡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아빠 사랑해요"


아이에게 처음 듣는 제대로 된 사랑고백이었다. 매일 내가 전달하는 사랑의 말들을 어쩌면 아이는 다 듣고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듣고 본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다. 왠지 아이의 그 마음은 초록 빛깔 일 것 만 같다. 계속 성장하고 있는 아이, 푸르른 그 마음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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