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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Sep 08. 2019

영화로 보는 근현대사 사건들



추석 연휴엔 가족들이 둘러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그 명절의 순간은 꽤나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특히나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게 되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주제도 굉장히 광범위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관심사, 경험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이야기는 현재에서 점점 과거로 이동하게 된다.


이 소중한 현재의 순간은 과거의 다양한 사건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에도 독재 체제 하에서 사회적 억압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피해자를 양산했고,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인식은 군부 독재와 폭력적 상황 속에서 점점 성장해갔다. 그러면서 체제에 대항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그것이 한국 사회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기도 했다.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다양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과학의 발달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식에 대한 기준을 다시 논의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과거에 다양한 세대가 경험한 일들은 현재의 한국을 만들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에 회자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다. 체제의 변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 그리고 노동자 권리의 변화, 각종 크고 작은 사건사고 등 여러 종류의 사건들은 다양한 근현대 한국 사회의 아픔이 담겨있다. 그 역사로 한국 사회는 발전했고,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지만, 역사가 늘 반복되듯 여전히 변하지 않고 발전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한국 근현대에 있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키워드로 분류해보았다. 추석에 가족들과 모여 이 영화들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없이 의미 있는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체제의 희생자]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처절한 전투



실미도(2003)

감독 : 강우석

출연 :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6.25 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더욱 극렬하게 치닫게 되면서 북한과 남한 간의 적개심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1960년대 후반을 지나 197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그 적개심은 사라질 줄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족들이 빨갱이로 취급받고, 북에서 어쩔 수 없이 넘어오게 된 사람들도 많은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는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 체제에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 기회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빨갱이 취급을 받다 이런저런 작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감옥에서 그저 사회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영화 <실미도>는 아버지가 월북한 이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지내던 인찬(설경구)을 중심으로 실미도 부대에 소집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로 범죄자로 구성된 실미도 부대는 684 부대로 불리고 김일성 주석의 목을 따오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실미도에 이들을 몰아넣고 강제로 훈련시켰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훈련을 참아냈지만, 참지 못한 몇몇은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사지에 내몰린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작전이 성공했을 때 주어질 자신을 위한 보상이나, 남은 가족에게 주어질 편안한 삶을 꿈꾸며 맹훈련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이들의 모집과정, 훈련과정을 하나하나 다룬다.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강제로 주어진 목표에 중독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들이 가진 목표는 충분히 그들이 중독 가능한 과장된 희망이었다. 결국 정부가 그 작전을 폐기하면서 그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은 끊기고 강제로 사지로 몰린다. 실제 역사에서 그들은 1971년 8월 23일에 버스를 타고 대방동 앞에서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인다. 정부는 그들의 존재를 무장공비라거나, 군 특수범의 난동 사건 등으로 분류하며 그들을 부정했다. 비록 범죄자였지만 그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았고, 사회 어디에서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0년이 다되어 김대중 정부인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야 비로소 국가 문서를 통해 그들의 존재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모집되고 활용되었던 그 체제의 피해자들은 30년이나 지난 시점에야 세상에 공개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져 대다수의 국민에게 알려졌다.




[노동자] 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자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감독 : 박광수

출연 : 문성근, 홍경인, 김선재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과거 60-70년대 노동자의 상황보다는 현재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는 말 그대로 노동만 하던 시절이었고 그나마도 적은 돈으로 착취당하는 착취 대상들이었다. 그 당시에 대다수를 차지했던 공장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우가 어떠하든 가족들을 먹어 살려야 하기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견디며 일을 해나갔다. 그 와중엔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멀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것은 과도한 노동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기간도 길지 않았다. 그 노동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저 노동의 노예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 인물이 있었다. 현대 한국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전태일 열사는 작은 봉제공장의 노동자였다. 하루 14시간의 공장 노동 상황 속에서도 그는 비슷한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그 당시의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주변에 알려나갔다. 그의 삶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그대로 담겼다. 김영수(문성근)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태일(홍경인)의 삶은 그가 왜 그렇게 분신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하나하나 쫒아간다. 전태일이라는 인물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가 겪은 노동현장의 현실은 어떠했는지를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노동현실은 과연 정당한 위치에 있는지를 한 번씩 돌아보게 한다. 


사실 현대에 노동문제가 나아진 것이 아닌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고 김용균 씨 같은 하청 노동자들이 처한 위치는 과거 전태일이 겪었던 상황에서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 그들은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죽어나가야만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전태일이 삶을 버리면서 시작한 싸움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근현대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현재 노동자로서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해준다. 



[시민사회]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난 순간



1987(2017)

감독 : 장준환

출연 :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1987년에 일어났던 박종철 고문 살해 사건은 아주 작은 사건이었다. 그것이 향후에 어떤 파급을 불러올지 그 당시 각 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왜 그렇게 데모에 참여해서 그런 일을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체제의 수호자였던 공안검사나 경찰들의 입장에서는 점점 커지고 있는 데모를 막을 수 있는 일종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사건이 벌어진 그 순간부터 일반인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였다.


영화 <1987>은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죽게 된 그 시점의 남영동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특히나 그 당시 권력자였던 박 처장(김윤석)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그 사람의 악독함과 단호함을  잘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인물은 박 처장이 유일한데 그가 이 사건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일종의 사악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비중은 적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영화는 사회적으로 생성된 절대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기관 혹은 개인이 모두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히 드러나는 인물은 연희(김태리)의 시각이다. 연희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는데, 그는 시위하는 다른 대학생에게 묻는다. 


‘시위를 왜 해요? 가족들 생각은 안 하세요?’ 


이것은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하는 생각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시위에 나가면 개인 삶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고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시위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박종철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러 기사가 퍼지고, 각종 입소문을 통해 전국으로 퍼진 항쟁은 결국 전반적인 사회를 변화시키는 촉발제가 된다. 일반인들이 서서히 변화해 가는 과정을 연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런 개개인의 시위 참여는 2016-17년에 나타났던 촛불 시위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리로 시작된 촛불 시위는 결국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위를 여러 번 하게 만들었고, 결국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이것 또한 1987 항쟁처럼 개개인의 참여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느껴진다. 영화 1987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지금의 소시민들에게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희대의 사건] 낡은 시스템을 파고든 연쇄살인마



살인의 추억(2003)

감독 : 봉준호

출연 :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박해일


한국의 근현대는 정치 사회적인 일들만 많았던 것은 아니다.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지는 어이없는 순간들도 있었고 다양한 사회 범죄들도 많이 일어났다. 특히나 한국은 강력범죄를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주먹구구식의 수사방식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형사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추적해 나갔고 그 방식은 과거부터 시행되어왔던 경험주의적 추리 방식이었다. 낡은 방식이지만 꽤 많은 사건들은 그 범주안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때때로 사건 현장은 훼손되었고 과거    방식의 추리만으로는 범인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였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군 태안읍에서 벌어졌던 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전통적인 수사방식을 쓰는 박두만 형사(송강호)와 과학적인 수사방식을 쓰는 서태윤 형사(김상경)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영화 내내 고전 방신을 쓰는 박형사와 서 형사는 갈등 하는데 그 갈등은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확연히 드러내게 된다. 직감에 의지하는 박형사의 관점에서 범인의 뒤를 쫓고, 그게 막혔을 때 증거에 의지하는 서형사의 관점에서 범인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이 사건의 범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았다. 영화 속 박형사와 서형사의 수사방식이 공조 형태로 합쳐졌을 때, 그 시너지는 최고조로 높아지고 곧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 장면이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없다.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수많은 담당 형사의 관점에서 범인을 잡지 못했던 그 안타까움만이 깊숙이 자리 잡을 뿐이다. 이 사건을 그 당시에 직접 방송매체에서 보아왔던 세대라면 그때의 공포심과 답답함이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여전히 미제로 남은 과거의 여러 사건들이 관객의 머릿속을 가득 채울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살인자에게 우리가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인을 보낸다.  



[과학 윤리] 과학의 발달에 못 따라가는 윤리 의식



제보자(2014)

감독 : 임순례

출연 :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류현경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 분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다. 과학이라는 분야는 너무나 전문적인 영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무언가 뛰어난 발견을 하기를 기대하게 된다. 가끔씩 어떤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유명한 학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뉴스 보도에서 나오는 그들의 연구에 우리는 환호하고 더욱 큰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높아진 관심은 그가 하는 연구에 물적 공적 지원을 집중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갑작스러운 관심에는 그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문제는 빠져있다.


근현대에 한국은 과학 분야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연구가 많지는 않다.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유명한 사람은 황우석 박사일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로 유명세를 알린 그는 2005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사회고발 프로그램으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 명의 제보자로 시작된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제보자>는 현실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각 인물들의 심리가 잘 담겨있다. 주인공 윤민철 PD(박해일)는 누군가로부터 제보를 받게 되고 사회 고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지만 한국의 저명한 학자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많은 국민들에게 항의를 받게 된다. 그 제보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믿을만한 증언과 심증이 있었기에 윤 PD가 취재를 하고 그 방송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황우석 사건과 전개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와 방송 취재윤리, 과학 윤리에 대한 부분이 담겨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누군가와 해당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내용이 많은 편이다. 이 사건은 그 당시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후의 과학윤리의 중요성을 학계에 퍼뜨리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한국 근현대에서 가장 충격적인 과학계의 이슈였고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일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직접 겪지 못한 관객들이라면 그때의 논란과 갈등들을 간접적으로 살펴보고 여러 가족들과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 스타의 청탁으로 작성되었으며, 오마이 스타의 기사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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