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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Sep 23. 2019

어둠 속에서 자각하는 나의 모습

-<애드 아스트라>(2019)




우리는 어둠 속에서 10개월을 보낸 후, 밝은 빛을 본다. 어두컴컴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몸을 성장시키는 동안에는 철저히 혼자다. 하나의 생명으로서 자라지만 그저 무표정하게 잠을 자고 좁은 공간에서 몸을 잠시 움직일 뿐이다. 때론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기분 좋음 혹은 나쁨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이때는 어머니의 몸과 연결되어 그 탯줄 하나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누군가의 어두운 뱃속에서 시작한다. 그 긴 어둠의 10개월을 보낸 대부분의 생명은 결국 긴 침묵의 시간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부터 탯줄을 끊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부모님과 첫 대면을 하고,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간다. 점점 자라면서 집보다는 외부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각자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그렇게 삶이라는 모험 속으로 뛰어든 수많은 아이 중에는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밝은 빛을 향해 계속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바라보는 삶의 지향점은 달라진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을 거쳐 다시 한번 진정한 세상 밖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그렇게 수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아가야만 하는 모험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근미래의 우주 탐험을 다루는 <애드 아스트라>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과학의 발달로 우주여행이 보다 용이해진 근 미래를 다룬다. 달과 화성에 기지가 있어 수많은 우주여행이 이루어지고, 아주 멀리 있는 왕성까지 유인 탐사선을 보낼 수 있는 시기다. 특히 영화가 집중하는 건 로이(브래드 피트)의 독백과 심리다. 영화 내내 무표정하게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는 그는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 클리포드(토미 리 존스)를 찾아 해왕성으로 향한다. 지구와 우주가 맞닿아있는 높은 탑에서 진행되던 프로젝트에 전류 급증 현상인 '써지'가 발생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그 첫 사고에서 로이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큰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로이는 전혀 흔들림이 없고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무표정하게 벌어지는 일을 보고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계속해 나간다. 로이는 아버지가 수행하던 '리마 프로젝트'가 '써지'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전달받게 되고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미션을 받게 된다. 그 미션을 받는 순간에도 로이의 표정이나 감정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그 이후 달 기지에 가고, 화성 기지로 향하면서 여러 가지 위협이나 공격을 받게 되는데 로이는 늘 너무나 침착하게 그 상황을 해결해 낸다. 마치 로봇처럼 감정이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이질감이 크게 느껴진다. 영화 내내 그는 주기적으로 행하는 심리 테스트에 전혀 흔들림 없이 통과를 해낸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 인물과 굉장한 거리감을 느끼며 그가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영화를 중반까지 보다 보면 로이가 왜 아버지를 그렇게 어렵게 찾으러 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로이가 아직 어렸을 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우주 모험을 떠난 아버지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건 영화 내내 이어지는 로이의 건조한 독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일찍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무표정한 주인공 로이


로이 자신도 그가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 하는지 확신이 없다.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는 힘든 삶을 살았고 그 자신의 삶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을 따라 그도 뛰어난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보냈고 그 결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은 지키지 못했다. 그가 검은 우주로 떠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의 주변에 관계를 맺던 많은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속으로 누르고 있던 로이는 어쩌면 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로이가 여러 난관을 뚫고 화성 기지에 도착하고, 그곳을 떠나 해왕성으로 향하는 우주비행선에 오르기까지 영화는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 영화는 그가 많은 사람을 거쳐 화성에 도착하고, 처음 아버지 클리포드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까지 로이를 아주 건조하고 비인간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화성에서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내던 로이가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로이는 전혀 다르게 묘사된다. 


감정을 드러낸 이후의 로이는 영화 전반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던 그는 화성에서 해왕성으로 혼자 이동하는 내내 외로워 보인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혼잣말을 하고, 혼자 몸에 영양분을 제공한다. 그의 손길은 분명 베테랑 우주 비행사의 모습이지만 그의 얼굴은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해왕성까지 가는 몇 개월의 순간 동안 그는 그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고, 헤어진 아내와의 일을 간간히 떠올린다. 그가 감정을 내보이기 전과 다르게 화성 이후의 그는 위기의 순간 맥박이 상승하고 당황한다. 


로이의 감정은 아버지가 떠남으로 시작된 혼란이다. 그 혼란은 그에게 지구를 수도 없이 떠나는 우주비행사로 만든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그저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하는 지구로부터 계속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비로소 정확히 깨닫게 된다. 태어나기 전에 어두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존재에 대한 자각 없이 10개월을 보냈던 것처럼 로이도 새까만 우주 공간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정리하지 못한 채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낸다. 마치 그런 의미를 가진 것처럼 우주선 속에서 영양분은 옆구리 쪽으로 튜브를 연결하여 공급한다. 자궁의 탯줄이 우주선에선 튜브로 대체된다.





긴 어둠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자각하다 


영화의 후반부는 로이가 아버지를 만나서 어떤 일을 겪는지가 표현되어 있다. 그가 결국 '써지'라고 부르는 현상을 해결했는지, 아버지가 정말로 살아있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면서 그가 겪는 감정들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영화 말미 로이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때 그가 느끼는 감정이다. '다시 태어난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주 속에서 몇 개월의 시간 동안 혼자 지내며 그 자신에 대해 다시 자각하고, 그가 맺은 관계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간다. 그리고 그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결국 그는 긴 외로움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난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그런 중년의 로이가 심리적으로 지구에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다. 


브래드 피트는 로이가 가진 외로움이 변해 가는 과정을 자신의 얼굴로 고스란히 담는다. 영화 전반부의 로이가 가진 표정이 무심함 쪽에 가깝다면, 후반부의 로이는 고독함을 절실히 느끼고 괴로워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인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건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브래드 피트는 아주 훌륭히 그 과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토미 리 존스가, 도널드 서덜랜드와 같이 무게감 있는 배우들은 비중은 낮지만 브래드 피트가 더욱 빛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준다. 토미 리 존스는 로이의 아버지를 자신의 탐험 정신을 끝까지 망각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물로서 잘 표현하며, 도널드 서덜랜드는 로이 아버지의 친구 프로이트 대령이 되어 로이의 심리적인 버팀목이 되어 준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진행되지만 SF 영화로서 볼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초반부 지구 최고도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달에서 벌어지는 차량 추격전, 해왕성 외부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등은 긴장감이 넘치고 꽤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훌륭한 정통 SF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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