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처음 한다는 것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에 흥분되고, 기쁘면서도 두렵다. 처음 자전거를 두 발로 타던 순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집 밖으로 나가 보조 바퀴를 떼었다. 아버지가 잡아준다는 그 안정감 속에 처음을 도전했다. 아버지가 손을 놓던 그 순간, 잠깐의 균형을 잡을 때 두려움과 기쁨의 감정이 한순간에 찾아와 금세 고통으로 바뀌었다. 몇 번이고 넘어지고 나서야 두 바퀴로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자전거뿐만 아니다. 처음 학교를 갈 때, 처음 놀이공원에 갈 때, 처음 친구를 만났을 때 등. 모든 처음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짧은 순간들의 감정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새로운 경험을 계속 해왔다. 어쩌면 삶은 많은 처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그 처음들이 물론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처음보단 익숙함을 더 찾게 된 것 같다. 서투르고 새로운 것은 뒤로 미루고, 자주 사용하고 자주 가던 익숙한 것들만 찾았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내게 익숙한 것들만을 기억 속에 남기게 되었다. 물론 새로운 경험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하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국제결혼이라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도 어느덧 익숙해지면 그 생활에서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도 나서는 다시 모든 처음과 대면해야 한다. 나와 아내가 경험하는 그 처음은 꽤나 힘들지만 사랑스럽기도 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만난다는 경험 역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회사 워크숍으로 외부에서 밥을 먹을 때, 앞 테이블에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자신의 밥을 입으로 넣고, 미처 씹고 넘기기 전에 아이에게 밥을 건네고, 안 먹으려고 하는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다. 저렇게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들을 보면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육아에 마음이 짠해진다. 그렇게 한참을 주고받으며 밥을 먹다 보니 창문 밖으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저기 봐! 기차 지나간다! 신기하지?"
"우와~ 기차야? 엄청 빨라~ 나도 탈래"
순간 아이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기차에 집중하고 흥분한다. 아마도 화면으로만 봤을 기차의 모습에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른다. 기차가 다 지나가자 다시 식탁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렇게 흥분하는 아이 옆에서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같이 보게 되었다. 소리 지르는 아이 옆에서 아이 엄마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에게 저게 진짜 기차라고, 나중에 같이 타보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와 아이의 모습을 본다.
사실 지금까지 무수한 아이의 처음을 같이 경험했다.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한 날,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한 날, 아이와 처음 2인용 자전가를 탄 날 등, 많은 처음을 기록해 두었다. 일정표에 그 처음의 경험을 기록해두고 매년 반복 알림이 되도록 설정해 두었다. 매년 그 날이 되면 아이와 무언가를 처음 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아직 어린아이는 그 순간들을 금방 잊겠지만 몇몇 순간들은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 아이가 무언가를 처음 경험할 때 짓던 그 표정은 나와 아내의 기억 속에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당근아 우리 주말에 바다 보러 갈까?"
"바다? 그게 뭐예요?"
"물이 엄청 많은 데야. 지난번에 유튜브에서 봤잖아? 띠띠뽀 기차 타고 가자"
"우와 신난다~ 나 물에 풍덩 빠질 거야~"
어느 순간, 아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추운 겨울이 되기 전에 아이에게 넓은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물었고,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바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연차 휴가를 신청했다. 그렇게 아이 그리고 아내와 함께 동해 바다로 갔다. 바닷가에 가서 모래사장에 들어서면서 아이는 조금 겁이 나는지 주춤했다. 이내 내 손을 잡고 성큼성큼 파도가 치는 바닷가로 가던 아이는 금세 큰 바다를 보면서 뛰기 시작했다. 파랗고 맑았던 하늘만큼 아이의 얼굴에 맑은 웃음이 이어졌다. 파도와 도망치기 장난을 하고 물에 발도 적시는 아이는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그 옆에 그 모습을 보던 아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고, 내 얼굴에도 그 미소가 전달되었다.
나는 처음 바다를 보던 순간에 어땠을까.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다를 처음 봤을 때도 아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넓은 바다에 흥분하고,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장난쳤을 것이다. 아마도 그걸 보는 부모님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처음 기차를 탔고, 처음 바다를 보았다.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 첫 순간을 선물했다. 앞으로도 아이에게 수많은 처음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들에 결국 나와 아내가 집중하게 되는 건 결국 아이의 얼굴이다. 그렇게 우리도 아이의 미소를 선물로 받는다.
<바다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록>
https://www.instagram.com/p/B3f3LebFU74/?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