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

by 레빗구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좋은 컴퓨터를 사고 싶었다. 게임기로부터 시작된,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는 주로 전자제품에 집중되었다. 게임기가 나왔을 땐 게임기를 사고 싶어 부모님의 눈치를 봤고, 386 컴퓨터가 나왔을 때도 그 컴퓨터가 가지고 싶어 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컴퓨터와 핸드폰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어가는 시대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에겐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것을 다 누리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컸다. 아마 대부분 그때를 지내온 이들에게 그런 기억 즘은 있을 것이다.


대학교 시절 교수님 밑에서 조교 일을 몇 가지 하면서 한 달에 6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돈을 조금씩 모아 정말 사고 싶었던 작은 노트북을 중고로 구입했다. 태어나서 처음 내가 번 돈으로 사고 싶었던 물건을 샀다. 그때는 정말 무엇이든 앞으로 다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충만해있었다. 그 뒤로 졸업을 하고 학자금을 내 월급으로 갚고, 직장 생활 연차가 쌓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노트북을 하나 마련했다. 역시나 순전히 나의 노력으로 구입한 물건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가 원하는 것을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꽤 중요했다. 나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 내가 필요한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삶을 충만하게 한다는 것을 아마도 무언가를 사고받는 순간에 좀 더 명확히 알게 된 것 같다.


반면 아내는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사업을 하시는 장인어른으로 인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 부모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그 물건을 아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생활방식과 삶은 잊히지 않는 가보다. 아내는 종종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의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아내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던 환경에서 강제로 분리된다. 무엇을 살 때면 장모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래서 종종 장모님과 의견 충돌이 있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한국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을 택해 장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자유롭게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한 이후 나와 결혼을 했다. 부모님들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았던 결혼 생활 속에서 아내는 계속 이야기했다.


"자기야 나는 돈을 많이 벌거예요. 할 수 있어요."

"그래요? 월급만 받아선 큰돈은 못 버는데, 그래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잘 되겠죠?"

"아니에요. 분명히 우리 할 수 있어요!!"



늘 그때는 아내와 함께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출금을 갚아나갈지, 무엇을 살지를 함께 이야기했다. 그렇게 둘이 앉아 이야기를 하던 순간들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현재를 이야기하고, 또 미래를 이야기했던 차마 시던 순간들. 어쩌면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여유가 있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과거에 자신이 누리던 그 기억 때문인지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모으는데 관심이 많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육아 때문에 재택근무로 변경했을 때, 절반으로 줄어든 월급을 보고는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이 맡은 일에 아내만큼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직원을 없었다. 집에서 일을 해도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해야 할 일은 꼭 끝내고 자야 하는 성격이어서, 늘 피곤해했다. 그렇게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아내는 인터넷 수업을 듣고 사진 찍고 편집하는 방법, 영어 같은 것을 늘 챙겨했다. 그걸 보는 나는 늘 아내가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통 쉬지를 않았으니까.


지금, 아내는 중국 SNS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팔고 자기 홍보를 한다. 이쁘게 사진을 찍고, 교육을 받고 세일즈 하는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린다. 수입도 꽤 많이 늘어났다. SNS로 하는 일인 만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늘 일을 하고 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인지 어떤 때는 나의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보지 못한 사업가의 기질이 아내에게 보인다. 이제 어리숙하고 귀여운 아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노트북을 사고, 차도 사고 옷도 샀다. 아내는 기꺼이 자신이 번 돈을 이용해 나에게 여려가지를 주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반복되며 아내가 무언가를 사주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자기야 나 저 시계 하나만 사도 될까요?"

"또 사요? 자기가 너무 쉽게 사려는 거 아니에요? 저거 꽤 비싼데?"



내 마음속에 아차 하는 혼잣말이 스쳐갔다. 마치 내가 번 돈인 것 마냥 쉽게 사려고 했던 내 마음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때 문득 내가 내 힘으로 처음 샀던 중고 노트북이 떠올랐다. 얼마 안 되는 지금은 보잘것없는 노트북이었지만 내 힘으로 샀던 것이기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굉장히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그것. 지금은 내가 벌지 않은 돈으로 무언가를 아주 쉽게 아내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 말을 뱉고 나서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부끄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아내가 재차 살 건지 물었지만, 나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결혼 생활을 채우는 건 사랑이지만 돈도 건강도 모두 중요하다. 모든 것이 적절하게 유지될 때 행복감은 더 커지는 것 같다. 아마도 지금 나와 아내에게는 사랑의 단계를 넘어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평생 돈을 벌고 모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태도로 그 상황을 보고 있느냐다. 누가 버는 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돈을 버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얼마인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쓸 때 어떤 태도로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아내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예전처럼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잘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아내에게 무언가를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를 이번 나의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아내가 힘들게 번 그 돈을 너무 쉽게 내가 쓸 수 있는 돈으로 보지 않는 그 태도는 내가 평생 조심해야 할 마음이다. 내가 내 힘으로 무언가를 사던 그 마음을 기억하며.


아내는 여전히 바쁘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을 빼고는 아이를 보고 챙긴다. 잠을 재우는 것까지 내 몫이다. 잠자는 6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는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아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나마 있던 쉬는 시간이 지금은 더 없어졌다. 아내에게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취미이며,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나와는 다른 아내의 특성이자 그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아내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끌어가고 있다. 지금도 열심히 자판을 치고 있는 작은 아내의 어깨가 유난히 더욱 단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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