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모습 그대로의 사랑

by 레빗구미



아이가 아팠던 날은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태어난 지 17일이 되던 날 고열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그 시간 동안 그 작은 몸으로 우릴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아직 초점도 잘 잡지 못하는 눈으로 잠깐의 면회시간에 날 보며 울던 아이. 젖병을 물려준 후 열심히 빨고 있는 아이의 입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이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는다. 하루 두 번의 면회 시간에 방문했던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모두 그 광경을 잊긴 힘들 것이다. 너무나 가련하고 약해 보였던 그 아이가 지금은 너무도 건강한 네 살이 되었다.


그 당시 아이의 모습과 함께 떠오르는 건 아내와 약 복용에 대해 논쟁을 벌였던 일이다. 결핵 간호사로 인해 예방차원에서 결핵 약을 먹여야 할지 아니면 먹이지 않아야 할지 한참을 논쟁했었다. 나와 아내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의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우리가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아이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는 아직은 너무나 어린 아기였으니까.


이후에는 그렇게 큰 논쟁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최대한 병원을 가지 않고, 열이 많이 날 때는 병원에 갔다. 그리고 장염이나, 피부 문제, 다친 것 등은 병원에 가서 꼭 진료를 받았다. 이제는 아내와 어느 정도 어떤 때에 병원을 가고 약을 먹일지 합의점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크게 논쟁할 필요가 없었다.


얼마 전 아이와 실내 동물원에 놀러 가서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다가 아이의 엄지 손가락을 거북이가 물었다. 아이는 순간 당황했고, 손에선 피가 흘렀다. 닦고 보니 작은 상처였지만 아이는 꽤 겁에 질려 있었다. 직원이 해주는 간단한 소독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크게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살펴보니 아이의 손가락이 퉁퉁 부어있었다.


"자기야 당근이 손가락 좀 봐야. 너무 부었어요."

"어, 왜 이러지? 당근아 아프니?"

"아파요. 많이 아파요"

"밑에 피부과 얼른 가봐야겠다."


얼른 옷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열이나 거나 하진 않아서 연고와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아내는 약이 무슨 약인지를 간호사에게 확인하고 있었다.


"저기 혹시 이 약 무슨 약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항생제인가요?"

"네 바르는 약은 소독 성분이 있고요. 먹는 약은 항생제 성분이 들어가 있어요"

"꼭 먹어야 되나요?"

"다치고 물집이 생기고 있어서 먹어야 돼요. 상처는 꼭 먹어야 해요."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당연히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내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보통의 감기였다면 아내는 항생제를 받더라고 아이에게 먹이기까지 나와 한참을 논쟁했을 것이다. 아내는 항생제를 정말 최후의 순간에 사용하는 약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상처나 염증을 빠르게 치유시켜주긴 하지만 그만큼 내성이 생기기 쉬운 특성 때문에 가능하면 싸워 이기는 쪽을 택해서 자가 면역력을 키우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상처의 종류에 따라 잘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과 판단 역시 나와 아내의 몫이다.


아이는 한쪽 눈에 약간 사시가 있다. 외사시라고 부르는 이것은 아내도 조금 가지고 있다. 한쪽 눈이 약간 돌아가 있는데, 평소에는 느끼기 힘들지만 특정 순간에 간혹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때가 있다.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처음엔 몰랐지만 추후 주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았다. 큰 병원이어서 많이 기다렸고, 검사하는 과정도 아이에게 친화적이지는 않았다. 의사는 아이가 교정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능하면 아이 때 하는 것이 좋고,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 마음이 쿵 내려 않는다. 수술이라니.


beach-1867271_1920.jpg


가능하면 아이를 수술대에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눈에 안약을 넣고 하는 검사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나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꽤 잘 참아냈지만 그 순간순간에 두려움을 표출했다. 나와 아내의 표정은 굳어졌다. 2주 후에 다시 와서 감사를 받으라는 의사의 말에 다시 논쟁이 시작되었다.


"2주 후에 또 와야 할까요? 굳이 이렇게 자주 검사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도 와야죠. 혹시 더 나빠지지 않는지 추적검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의사 태도도 좀 봐요. 너무 무시하는 것 같고, 마음에 안 들어요. 난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외사시가 있지만 아무 문제없이 자랐는 걸요"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병원 의사들은 좀 그래요... 우리 좀 생각해봐요."


쉽게 결론 낼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우리는 조금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기로 했다. 나도 아내도 아이가 어릴 때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을 받게 하기는 싫었다. 평소의 아이는 전혀 문제없이 놀고 보고, 뛴다. 가끔 아이의 눈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원체 걱정이 많은 나는 마음속에 늘 많은 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걱정거리를 지고 다닌다. 하지만 아내는 잘될 거라 믿는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그 문제도 결국 잘 될 거라 믿는다. 당장 수술에 대한 결정을 하진 않았지만 특정 시점엔 하게 될 수도 있다. 혹은 그대로 성인이 되는 아이에게 그 결정을 미룰 수도 있다. 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을 보내며 여러 가지 정보들도 모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나와 아내는 계속 아이의 문제로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건강과 관련된 문제는 부모의 판단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아내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최종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야기를 하고, 논쟁을 해야 한다.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길로 갈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고민을 모른 채 아이는 우리의 손을 끌며 놀자고 한다.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의 모습과 검사받는 곳에서 겁에 질려 울먹거리는 모습이 교차된다. 사실 아이가 아픈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어쩌다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생긴 무언가를 교정해야 할 수도 있다. 영화 <증인>에는 정신지체 아이가 나온다. 어느 날 변호사가 묻는다. "지우가 저렇게 똑똑한데 정상적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거기에 아이 엄마는 정색하며 이렇게 답한다. "그건 지우가 아니죠."


작은 점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쌍꺼풀이 있는 아이, 약간의 외사시가 있는 아이, 얼굴이 동그란 아이, 점프를 좋아하는 아이, 그 모든 것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당근이'가 된다. 아이가 커가면서 바뀌는 것도 있을 것이고, 있는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건 아이가 된다.


지금의 아이를 그대로 인정하며, 아이가 아플 땐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아내와 다시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고, 그 모습은 우리를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할 것이다. 나란히 잠든 아이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지금 이 모습이라서 고마워요. 지금 이 모습이 좋아요. 가능하면 아프지 말아요. 두 사람 모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내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