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태어나서 다양한 맛을 배우고, 놀이를 배우면서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재미있는 무언가에 몰입한다. 아마도 평생 그런 배움은 계속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배우는 것을 즐길 때야 배우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점점 배우는 정보는 늘어나고 복잡성은 커진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즈음에 나는 그 배움이라는 큰 벽이 무서웠던 것 같다.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잠이 왔고, 학원이나 수업에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수능이라는 큰 벽은 여러모로 나에게는 버겁게 느껴졌다. 평생 받았던 교육이 마치 그 시험을 위한 거였던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그 부담감은 배움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는 부모님은 어땠을까. 내가 좋지 않은 성적표를 들고 집에 갔을 때, 그것을 보던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성적표를 받은 날 집에 들어갈까 다시 나갈까 한참을 서서 망설이는 그때, 부모님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버지는 스파르타식의 교육을 좋아하셨다. 학교나 학원의 선생님이 거칠게 공부를 시키고, 체벌을 하더라도 성적이 올랐으면 하는 그런 교육을 선호하셨다. 어머니도 그런 방식으로 나의 성적을 올리려 하셨지만, 아마도 좀 더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과외도 시켜보고, 학원도 보내보고, 집에서 하는 학습지 같은 것도 구독해 주셨다. 아마도 주변 다른 어머니들과 이야기하면서 혼자 고민을 꽤 하셨을 것이다. 어찌하면 아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질까. 어찌하면 아들의 성적이 오를 수 있을까.
어머니는 내가 고3이 되면서 성적이 변함이 없자 학원이나 다른 사교육을 권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달라면서 다른 것은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공부를 조금 더 잘했던 동생의 교육에 힘을 쏟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동생이 공부를 잘해서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여러 가지 교육을 시도해 보면서 마지막 1년은 부모의 강요가 아닌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하도록 놓아두신 것 같다. 어쩌면 고민 끝에 나에 대한 교육을 내려놓으신 그 방식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다른 아이의 엄마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어휴 이제 내년에는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좋은 데는 잘 안된다고 해서.."
"벌써 지원했어요? "
"올해부터 한 번 넣어보려고요. 좀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한국 나이로 4-5살인 아이의 엄마들이 아이 교육 문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듣고 있으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이는 어린이 집에서 그저 재미있게 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지금 다니는 어린이 집에서는 영어, 중국어 프로그램이 있고, 그림, 활동 교육이 있다. 집에 배운 교재를 돌려주기도 한다. 복습을 시키라는 의도일 것이다. 처음 가방 속에 담겨온 그 책들을 보고 아내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거 우리도 복습시켜야 할까요? 노래랑 간단한 단어들이긴 한데"
"에이. 벌써 이렇게 힘들게 해야 될까요? "
"다른 아이 부모들도 노래 들려주는 것 같은데..."
"그냥 같이 놀아주면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 관심도 없는데 굳이 강제로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가? 불안한데.."
"안 불안한 데요? 한국 부모들은 너무 걱정이 많아요. 그냥 아이랑 같이 놀아주자~"
아내는 한국 부모들의 걱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 교육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한국 부모들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여러 종류의 학원을 돌고 집으로 늦게 돌아오기도 한다. 4살인 아이에게 벌써부터 교육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대화의 결론이 났어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자리한다. 내가 선택한 지금의 교육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앞으로 아이가 가게 될 유치원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솔직히 아이가 점점 커서 고등교육을 받을 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특히나 곧 중국 교육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게 될 아이에게 한글과 한국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
아이는 한국 국적이지만, 중국사람이기도 하다. 중국 문화권에서 자라게 되면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넓어지겠지만, 한국에 대한 이해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 그것을 채워주고 싶은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를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아이도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이 있지만 나와는 또 다른 환경에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된다.
완전한 한국 사람인 나, 아빠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적인 관점이 다른 나의 아버지와는 정치/경제/역사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아이가 큰 이후에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될까.
아무래도 너무 이른 걱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중국도 한국처럼 아이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한국만큼의 열기는 아니다. 조금은 아이에게 여유를 준다. 그리고 걱정을 조금 덜한다. 아내가 자라온 환경, 그리고 아내의 특성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의 가족들이나 주변을 봐도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를 그렇게나 많이 하지는 않는다. 역시나 나의 걱정이 너무 멀리 나간 것 같다.
당장 바로 내년이면, 중국 유치원으로 아이를 보내게 된다. 그 이후에는 내 역할이 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아이를 재우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아이가 좋아하는 덤프트럭, 포클레인, 레미콘, 불도저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면 아이는 집중해서 끝까지 듣는다. 온전히 내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물론 여기저기 다양한 동화와 동영상을 짜짓기 한 내용이다. 내 방식의 아이 교육은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아이가 커가면 그것에 맞추어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부모님이 고민하고 선택한 것처럼 나와 아내도 같이 고민하고 선택해 나갈 것이다. 부모님이 나의 교육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다 가늠할 순 없다. 그런데 그 고민의 길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내일도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줄게. 덤프트럭이 너에게 찾아가는 이야기야. 기대해! 잘 자.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