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출장을 함께 하다

by 레빗구미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해외를 나간다는 것이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정말 특별한 날에, 계획을 세워서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며, 출국이었다.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용이었다. 늘 비용 걱정을 먼저 했고, 여행 계획을 세우려 정보를 모을 때마다 항공비와 숙박비를 보고는 얼른 창을 닫아버렸다. 아마도 어디론가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쓴 비용을 회복하는 것 자체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어쨌든 마음속의 두려움이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결혼한 이후 그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같이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으로 간다는 것의 의미는 내게는 조금 달라졌다. 특히나 아내의 나라인 중국으로 간다는 것은 마치 한국의 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느낌이 되어 버렸다. 중국에서도 몇몇 지역에 한정되지만,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면에서 해외라는 장벽이 사라진 느낌이다. 반대로 아내에게는 지금 한국에 있는 이 순간도 여행의 일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는 아내도 나도 평생 여행 아닌 여행을 하는 삶인지도 모른다.


비용적인 면에서의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월급의 일부를 모아 여행비로 쓰고, 비용이 모자라면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한다. 두려움이 커질지언정,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 식구가 늘어났어도 여행에 대한 가벼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생후 3개월도 안되어 비행기를 처음 탔던 아이는 이제 비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비행기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어느 정도는 안다.


아내는 출장이 부쩍 많아졌다. 북경으로, 상해로, 심천으로 주말을 이용해 4-5일씩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여느 출장 때처럼 아내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먼저 운을 띄운다.


"자기야, 혹시 내가 00일에 출장 가도 될까요? 주말엔 자기가 아이랑 놀아야 해요"

"그럼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다녀와요"

"고마워요!"


늘 이렇게 나에게 일정이 괜찮은지 먼저 물어본다. 정말 힘든 경우가 아니라면 늘 다녀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엄마가 없을 때 조금 우울해하긴 하지만, 나와 잘 놀고 잘 지낸다. 특별히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씻고, 잘 잔다. 그래서 둘이 시간을 보낼 때, 아내가 없다는 것에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니까.


"아니, 내가 갑자기 생각났는데요. 그러지 말고 이번에는 우리 다 같이 갈까요?"

"응? 어딜요? 북경에요?"

"네, 주말에 가는 거니까. 자기가 2일 정도 휴가 써서 같이 가요. 대신 나는 같이 못 다녀요. 미팅이 있어서요. 자기랑 당근이랑 알아서 놀러 다니세요~"

"오 그럼 밤에는 같이 있을 수 있겠네요!"


아내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좋았던 건,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장에 같이 가자는 아내의 말에 내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아내는 일하러 가는 것이지만, 비해기를 타고 북경으로 날아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흥분시켰다. 여기엔 과거와 같은 여행의 두려움 따위는 없다. 그저 아이와 그리고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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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늘 무엇을 할 때 아이에게도 미리 의사를 물어본다. 당연히 답은 정해져 있다.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신나 하는 아이에게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타고 가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자리에 잘 앉아서 갈 수 있는지 물어본다. 아이는 당연히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나 공항 가서 도넛 먹을 거야! 사주세요~"

"도넛? 무슨 도넛?"

"으응~ 도넛~ 저번에 먹었던 거~"

"아... 아빠랑 지난번 비행기 탈 때 먹었던 거 이야기하는 거야?"

"응!! 그거야!"


아이는 이제 조금 사소한 것도 기억한다.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내 없이 나와 아이만 출국하던 예전의 기억이 여전히 아이에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때 먹었던 도넛을 아이가 기억하고 나에게 사달라고 한다. 막상 사주면 다 먹지도 못하지만, 내가 사 온 도넛을 꺼내는 아이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그 모습에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같이 놀 때의 행복감을 본다. 아이의 기대감, 그리고 나의 기대감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이제 비행 경험이 꽤 많은 아이는 큰 보챔 없이 아주 잘 놀고 잔다. 덕분에 나와 아이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잠시 눈을 붙이거나 일을 한다. 그렇게 놀다 옆을 돌아보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 비행기 좌석에서 잠든 두 모녀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사진으로 남긴다.


북경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할 때, 로비에서 아이는 신나 하면서 내게 묻는다.


"아빠 여기 어디예요?"

"여기 호텔이야"

"여기가 호텔이에요? 나 여기서 자고 싶어요!"

"우리 여기서 잘 거야. 마미가 저거 하고 나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갈 거야"

"정말요? 우리 여기서 잘 거예요? 우와 신난다!!"


아마 호텔이 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냥 그 건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뛰며 자겠다는 아이와 방으로 올라가 한참을 놀았다. 호텔에선 마침 아이를 위해 텐트를 옆에 놓아준다. 아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북경에서 머무는 4일 동안, 나와 아이는 택시를 타고 키즈카페도 가고 점심도 먹고, 주변 거리도 산책했다. 쇼핑몰에 가서 장난감 가게도 구경했다. 이상하게 낯선 곳을 거닐어도 두려움이 들지 않았다. 짧은 중국어로 길을 묻고, 주문을 하고, 장난감을 구입했다. 키즈카페에서도 아이와 정말 신나게 놀았다. 중국 아이들과 같이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 옆에 있으면 중국 부모들이 말을 걸기도 한다.


"몇 살이에요?"

"아, 4살이에요"

"어머, 4살이요?? "


전혀 어색함이 없이 대화를 하고 돌아섰다. 단지 언어만 다를 뿐, 아이가 노는 모습, 식당의 모습, 거리의 모습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내가 중국 사람과 결혼을 한 이후, 자주 중국에 와서 일수도 있다. 어쩌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나에게 이미 제2의 나라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경험이 쌓여 두려움보다는 모험심이 더 커진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에 있어서는 좀 더 강심장이 된 걸까.


아내는 일하느라 우리가 호텔에 돌아오는 저녁시간에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그래도 같이 저녁을 먹고, 씻고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힘은 꽤 크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가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되고, 나는 나대로 아내가 옆에 있으니 편안하다.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와도 가족이 옆에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에 출장이 있으면 또 이런 식으로 같이 와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물론 더 좋아할 테고, 나와 아내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이제 중국을 간다는 것은 나에게 해외여행의 범주에서 제외될 것만 같다. 그래도 타국이지만, 아이에게는 한국도 중국도 모두 본인의 나라이다. 이렇게 자주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경험하고 나면 어디를 가든 자신의 나라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느끼는데, 아이는 더욱 그런 기분을 느낄 것이다.


비행기에 내려 짐을 기다릴 때, 아이에게 묻는다.


"우리 다음에 또 같이 갈까?"

"네! 나 또 바닷가 가서 수영할 거야!"

"응? 수영한다고? 바다 가고 싶어?"

"네! 바다에 풍덩 할 거예요! 오늘?"


아무래도, 다음엔 따뜻한 해변가로 여행을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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