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죽음은 가까이 있다. 태어난 이후, 줄곧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누구나 늙거나 병들고 사고를 당해 세상과 이별하기도 한다. 또 일부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급하게 달려간다. 원체 내 속을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죽음을 가끔 생각한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사실 청소년 시절부터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허무한 생각이 들 때, 죽음이란 걸 늘 생각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는 스스로 죽음으로 달려갈 방법들을 생각하다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의 죽음보다는 나 자신의 죽음 이후가 더 궁금해졌다.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많이 슬퍼하실까? 동생은 어떨까? 친구들은 내 장례식장에 올까? 하지만 쉽게 죽음을 향해 발을 떼지는 못했다. 그럴만한 용기가 쉽게 생기지는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고 연애도 하면서 때론 극심한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죽음으로 달려가기보다는 그저 울면서 걸었다.
어머니의 유방암 선고와 수술은 내게 죽음에 대한 다른 관점을 생각하게 했다. 다른 가족이 죽으면 내 마음은 어떨까.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아직 어머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갑자기 내일부터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졌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인터넷을 보다 당근즙을 갈아먹으면 항암에 좋다는 말을 듣고 흙이 묻은 당근을 한 박스 사서 매일 씻고 갈아 즙을 만들었다. 매일매일 아침에 즙을 갈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누군가의 죽음이 만든 두려움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최대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자기는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요?"
"안돼요. 내가 먼저 죽을 거예요. 자기가 먼저 죽으면 안 돼요!!"
어느 날 아내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다. 아내는 이미 다른 가족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는 남겨진 사람의 상실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아내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죽음을 보느니 자신이 먼저 죽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아내의 말을 듣고 조금은 서운했다. 나도 남겨지면 엄청 힘든데, 내 생각도 좀 해주지.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내가 아내의 죽음을 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영화 <아무르>(2012)를 보면 나이 든 아내가 전신마비가 되어 남편이 간호하는 모습이 나온다. 부부가 그저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던 집에서 이제는 남편만이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간병한다. 아내가 움직일 수 없고 심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자 남편도 그것을 더 보고 있지는 못한다. 결국 남편은 아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결단을 한다. 남편은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런 선택에 아내는 고마워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남편은 기꺼이 아내를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죽음을 택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영화 <아무르>를 떠올린 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방의 죽음을 겪고 상실감을 느끼는 것 역시 큰 고통이다. 내가 죽은 이후의 모습을 가끔 상상하면 아내의 눈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같이 건강하게 살다 최대한 같이 죽음을 만나자. 만약 누군가 먼저 가야 한다면 아내였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아내의 죽음을 견뎌낼 자신은 없다. 아내가 없이 중국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것 또한 괴롭겠지만, 그래도 아내의 괴로움을 보는 것보다는 덜 괴롭겠지.
얼마 전 또 한 명의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죽음으로 달려갔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세상에서 이야기되고 씹혀지다 죽음을 택했다. 그 죽음을 보며 다시 내 주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점점 커가는 아이의 죽음은 생각하기 싫다. 그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는 세상의 좋은 면과 만나길 빌게 된다. 아무리 봐도 세상은 꽤 잔인하다. 아내의 죽음도 역시나 끔찍한 일이다. 아주 한참 먼 이야기지만 그것을 가끔 생각하는 건, 그것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이 듦을 느낄 때마다 더욱 그런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내가 그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 것이다. 언제나 같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존재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지금, 바로 지금 내 몸을 더 움직여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게 만든다. 바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 그리고 나의 죽음 전에 최대한 부지런히 서로를 마음에 담아야겠다.
지금이 바로 함께 할, 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