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특별히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기나 특정 음식만 골라 먹기보다는 야채를 듬뿍 얹어 다른 음식과 먹는 걸 좋아했다. 야채 호빵을 먹고 쌈채소를 좋아했던 나였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싫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 눈 앞에 차려져 있다면 특별한 불만 없이 먹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뭐든지 잘 먹는 모습이 좋게 비춰졌던 것 같다. 우물우물, 우걱우걱 준비된 음식을 먹기 위해 입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머니도, 외할머니도, 할머니도 본인들이 준비했던 밥과 반찬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잘 먹는 나 자신에 대해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저 음식을 먹는 행위였고, 한참 자라던 학창 시절에는 그만큼 허기가 져서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전자의 힘 때문일 수도 있다. 아버지는 어떤 음식이든 다 잘 드셨다. 쩝쩝쩝 소리를 내시면서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가 먹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어느 순간 아버지처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잘 먹는다는 것이 내게 주는 느낌은 부끄러움이다. 아버지는 늘 무엇이든 잘 드셨지만, 주변의 상황과 상관없이 언제든 잘 드셨다. 어머니가 화나거나, 슬플 때도 아버지는 늘 식사는 잘 챙겨드셨다. 어머니가 기분에 따라 식사를 거르고, 대충 먹는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었다. 나나 동생이 아픈 상황에서도 본인의 식사는 거르지 않으셨다. 그러다 보니 늘 어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든 잘 먹는다는 것에 불만이 많으셨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그런 불만을 늘 듣기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요? 애가 이렇게 아픈데..."
"그래도 먹어야 나도 간호하지 않겠소?"
"쩝쩝대는 소리도 정말 듣기 싫어요!"
먹는 것도 상황에 따라 눈치를 봐야 한다고 느꼈다. 어떤 날은 허기짐을 참았고 빨리 먹고 싶은 날이 있어도 최대한 그 욕심을 억누르기도 했다.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먹는 모습에 신경을 썼다. 그러다 아내를 만나고, 장모님을 만나게 되면서 잘 먹는 내 모습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장모님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던 그때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내가 하는 행동뿐이었다. 특히 장모님이 직접 하신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예전에 나처럼 편하게 장모님의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그 먹는 모습은 장모님에게 꽤 좋은 인상을 남겼다.
"말은 못 하는데 정말 잘 먹어. 한국 사람인데 중국 요리도 잘 먹네!"
장모님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을 할 정도로 내가 잘 먹는 모습을 좋아하셨다. 내가 먹는 모습은 밉게 보이지는 않는 걸까. 늘 궁금했다. 어머니는 요리를 하고 내가 먹는 모습을 볼 때 아버지를 보는 것처럼 짜증이 나거나 밉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장모님은 본인 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먹는 모습이 밉상이지 않을까. 이미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가 만들어놓은 눈치의 덫에 빠져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것을 피하려는 내 의지가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 같은 것이었다.
아이는 달콤한 사탕과 젤리를 좋아한다. 밥과 음식을 좋아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주 잘 먹지는 않는다. 중국요리를 좀 더 잘 먹는 편인데, 아마도 장모님이 맛있게 만들어주는 요리 실력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 음식 중에서는 아주 잘 먹는 요리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아이 밥을 먹일 때 늘 힘이 든다. 그래도 아이가 밥과 고기를 입에 넣고 씹을 때면 마음이 놓인다. 참 이상한 느낌이다. 보통 내가 잘 먹는 모습에서 만족감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바쁘게 입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아유 쟤 먹는 입 좀 봐, 너무 이쁘지 않니?"
어머니는 아이가 무언가를 먹을 때, 늘 말씀하신다. 너무 이쁘다고.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몰래 주시고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계신다. 그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아이가 다 먹었는지, 잘 씹고 있는지 보고 입이 비어지면 다시 음식을 건넨다. 그리고는 나도 얼른 내 입에 음식을 채워 넣는다.
늘 내가 먹을 자격이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한 검열을 스스로 해왔다. 그런데 아이와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아이가 먹을 때 나도 배를 채운다. 검열을 하기보다는 아이의 배를 채우고, 내 배를 채우느라 정신없이 먹게 된다. 어쩌면 아이의 먹는 모습에 대한 안도감이 그런 자기 검열이나 수치심을 줄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든, 어떤 분위기든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따뜻함을 느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 어머니와 장모님은 모두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상황이든 어떤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아이 먹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그 따뜻한 안도감을 그들도 느낄 테니까.
오늘도 수저를 들고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다. 우물우물 음식을 씹으며 옆에 앉은 아이의 입을 본다. 아내의 출장으로 입맛이 없는 아이는 영 먹지 않는다. 그래도 몇 숟갈 더 권하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본다. 아이가 잘 먹지 않아도 그 모습이 미워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걱정이 될 뿐이다. 아마도 나의 먹는 모습을 보는 부모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아주 눈치 없이 잘 먹기만 하면 밉게 보이겠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대부분은 잘 먹는 모습이 좋은 것 같다. 어쩌면 맛집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함께 상대방의 먹는 모습을 보며 따뜻함을 느껴서 일 것이다.
나도 밥을 입안에 챙겨 넣으면서 아이에게 반찬과 밥이 담긴 한 숟가락을 건넨다.
"한 번만 더 먹어, 아빠가 이거 다 먹고 나면 또 맛있는 거 사줄게"
먹는 건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위다. 아이에게 계속 맛있는 무언가를 계속 챙겨 주고 싶다. 아이가 배부르게 만족감을 느끼면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