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도 영화 속 대현과 지영이었다.

<82년생 김지영>

by 레빗구미




임신을 결정하고,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거치는 일련의 과정은 쉽지 않은 길이다. 결혼하고 임신을 결정하기 전, 나와 아내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두 주인공처럼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우리 둘 보단 주변 어른들이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영화 속 대현이 지영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하나만 낳는 건 어때요? 어차피 키울 거면 빨리 결정하는 게 낫잖아요?”

“어머, 자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 있으면 꽤 많이 바뀔 텐데요....”

“내가 최대한 도울게요. 빨리 와서 내가 최대한 자기 힘들지 않게 도울게요. 우리 그냥 해보자”


그 후에 임신과 출산은 꽤 힘든 과정이었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참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 직면해야 하는 육아의 과정은 완전히 다른 과정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아이가 우리의 예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나 아이는 엄마인 아내의 손길을 더 많이 찾았다. 달래지지 않는 아이가 엄마의 손으로 갈 때, 나는 그저 아이를 다독이는 아내의 모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영화 속 지영처럼 일 욕심이 많다. 사무실에 출근하던 아내는 고민 끝에 회사 대표와 이야기하여 재택근무로 모든 일을 커버하겠다는 협의를 이끌어냈다. 집에서 육아를 하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월급은 반으로 줄었다. 아내는 점점 지쳐갔다. 그 와중에 나는 회사 퇴근 후 최대한 빨리 집으로 왔다. 거의 뛰어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오면 한 겨울에도 땀이 흥건히 맺혔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아이를 보면 어느덧 아이가 자야 할 시간이다.


주인공 대현처럼 나도 아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미안함이 컸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지쳐 보이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경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마음속에 꽤나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임신 전 내가 노력하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육아는 생각보다 반반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힘들었고 그 부담은 모두 아내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친가의 도움을 조금 받았지만 오래 받을 수 없었고, 아이의 외가는 중국에 있었다. 그렇게 아내는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아내를 안았다. 그렇게 안아주기라도 해야 아내를 좀 더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아내는 중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하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내 한국에서의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 결국 나는 그런 길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100% 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오고 있다면, 나는 과감히 내 경력을 포기할 마음이 있다. 무엇보다 더 괴로운 건 아내가 힘들어하고 속상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니까. 영화 속 대현도 아내 지영을 위해 자신의 경력에 일부 불이익이 갈 수 있는 길을 택하려 한다. 그런 영화 속 장면들에서 나와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점들을 아주 세심하게 하나 한 살피면서 육아 문제, 직장 내 문제들과 하나하나 연결하는 영화는 결국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동감을 선사한다.


서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에게 그런 순간, 그런 기회들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육아 문제가 걸린다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여성들이 육아 후 경력을 살려 일하는 것엔 어려운 점이 많다. 지영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처럼 아내도 결국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직장에서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을 포기했다. 그렇게 포기하고서도 미련은 남는다. 그래서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잡히지 않는 기회에 손을 뻗어본다.


육아를 경험해보지 않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영화에 공감하는 정도가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육아의 길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것이다. 영화는 육아를 중심으로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지만 결국 모든 문제들은 사회적 인식과 통념이 변해야만 된다는 것을 영화는 공감이라는 도구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꽤 많이 울었다. 특히나 대현과 지영이 식탁에 마주 앉아 지영의 정신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 장면에서 대현은 숨겨왔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 대현의 눈물을 보고 나도 많은 눈물을 쏟았다. 아내에게 미안해서, 더 해줄 수가 없어서, 아무리 해도 만족시켜줄 수 없고 모자라 보이는 내 도움 때문에.


왜 육아의 문제에 부부만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는 걸까. 사회는 왜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걸까. 앞으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하고 싶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큰 기쁨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무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조금이라도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변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대현과 지영이 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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